두 개의 풍경
코로나가 휩쓸고 간 세상이 이제는 홍수 때문에 난리다. 입추가 지나도록 이어지는 장마와 폭우로 8일까지 사망 30명, 실종 12명, 부상은 8명에 이재민도 3천 4백여 세대, 5천 9백여 명에 이른다. 시설 피해는 모두 9천 4백여 건으로 주택 2천 5백여 채가 물에 잠겼고, 도로와 교량 피해는 2천 7백여 건, 농경지 9천여 헥타르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매일 지역을 돌아가며 호우주의보와 호우경보가 뜨고, 피해를 알리는 속보가 이어지고 있지만 계속되는 비에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편에서는 코로나와 장마 때문에 여름휴가를 호캉스, 백캉스, 아캉스(호텔, 백화점, 아울렛+바캉스)로 보낸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마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다. 폭우가 내리던 날, 부잣집 박사장네는 캠핑을 떠나고 유리창 너머 비오는 날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아들의 인디언텐트조차 비에 안전하다. 반면 박사장네에서 도망치듯 쫓겨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기택가족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흙탕물을 막으려 온갖 살림살이까지 동원해서 발버둥쳐도 밀려드는 흙탕물에 잠겨버린 동네, 그리고 역시나 물바다가 된 자신의 반지하집이다.
기후변화로 가속화되는 위기
역대급 장마, 기습적 폭우 등 지금의 재해를 특별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문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말,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 발간하고 전문가 120여 명의 참여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를 보면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은 계속 진행 중이다.
한국의 여름철 강수량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고, 하루 1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는 횟수도 늘어났다. 폭염 역시 횟수와 강도, 지속기간이 늘어나고 있고, 폭염일수 역시 현재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말이면 35.5일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는 동식물 등 생태계 변화와 더불어 식량 문제, 홍수와 가뭄 등으로 인한 재해 등 다양한 문제를 몰고 올 것이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피해는 불평등하다
폭우, 폭염, 태풍, 지진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등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재해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재난으로 인한 피해 정도는 빈부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과 능력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반지하에서 사는 가구가 25만 8천여 가구에 이른다. 침수의 우려를 안고 지하, 저지대에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코로나를 걱정하면서도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아파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사람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에 의존해 여름을 견디는 이들도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2018년에 온열질환자는 4,500여 명이나 됐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야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이거나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재난이 두려운 사람 VS 재난이 기회인 사람
재난 이후에도 가난한 이들은 재건과정에서 소외되어 자신의 집, 일터, 농지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들은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악화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지 못해 결국 재난의 피해자가 된다. 2017년에 발생한 포항지진 사태만 보더라도 804가구 2,030명의 이재민에 대한 배상 및 보상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체육관에서 생활하던 96가구 중 62가구가 2년이 지난 작년 12월에야 임대아파트로 이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주가 2년밖에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매월 10만원이 넘는 관리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 주민은 이주를 거부하고 체육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 번의 재난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일상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부유한 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거주한다.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들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들이 가진 정보력은 재난이 발생되기도 전에, 혹은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가장 먼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재난으로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이주 및 재건축 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고 들어놓은 보험 등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다쳐도 먹고 살 걱정 없이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재난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소득의 변화를 겪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 재난은 불편한 일 정도로 인식된다.
심지어 이들에게 재난은 ‘복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이익을 벌어들일 기회로 인식되기도 한다. 새로 건설되는 기반시설들, 고장나서 새로 구매되는 가전제품들과 자동차들, 낡은 주택과 마을은 재건을 통해 몸값을 올려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진의 피해가 엄청났던 아이티에선 전세계에서 성금과 구호물품이 전달되었지만 지진 복구와 재건 명목으로 외국기업들의 호주머니만 채웠을 뿐이다. 사람들이 살던 지역은 복구가 불가능한 땅으로 선포되어 원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땅을 잃어버리게 된 반면 가진 자들은 토지를 탈취할 기회를 획득한 것이다. 재난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 재난은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기후위기, 재난상황을 누가 더 확대, 강화하고 있느냐다. 지진에 안전한 집을 짓는 것, 불연성 자재를 이용한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진 자들은 이미 이러한 기술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다. 심지어 핵폭탄에도 안전한 지하벙커까지 마련해둔 이들도 있다. 이번 홍수에 섬진강 둑이 터져 마을들이 잠긴 것처럼 낙후한 댐이나 제방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지만 제대로 된 안전진단이나 적절한 수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서는 국내 농업용 저수지의 70퍼센트가 1945년 이전에 만들어져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홍수를 막을 수는 없지만, 홍수로 인한 피해는 줄일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채 계속 방치되고 있다.
부자들이 사는 곳과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에 지출되는 정부재정은 규모부터 다르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심지어 안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돈이 오히려 소수 자본가들을 배불리는데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시골마다 나무를 베어버리고 세워지는 태양열발전소와 산을 깎아내고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개발부지는 산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개발의 이윤은 에너지업체와 건설업체들이 가져가고, 그로 인한 피해는 마을 주민들이 겪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자연을 개발해온 인간의 기술력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술들 역시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사적이윤을 위한 경쟁과 만성적인 사회적 무책임을 본성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안전보다 이윤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낮은 등급의 자재를 쓰거나 부실시공을 해도 처벌은 미미하다.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고가 나면 그제서야 예견된 인재 운운하며 난리를 피운다. 하지만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된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 그러나...
지난 6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위기가 확대되자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고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위기 극복에는 성공했지만, 그럴 때마다 소득격차가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리해고가 아닌 일자리 지키기,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코로나 이후 대량 실업사태는 현실이 되었다. 고용보험 업종별 가입자는 제조업의 경우 6월에만 5만 9천 명이 줄었다. 반면 실업급여 지급액은 최근 두 달 연속 1조원을 넘었다. 6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10만 6,000명으로 전년대비 약 3만 명, 39.9%나 증가했다. 게다가 7월 22일 인크루트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의 68%가 해고 및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고 답했다. 또한 코로나 이후 해고된 인원이 30%에 달했으며, 이들의 2/3가 부당해고나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치에서 확인되듯이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위기 상황에서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로 이미 위기상황에 놓인 가난한 이들 중 일부는 이번 홍수 사태로 더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재난이 벌어진 순간에는 온갖 언론과 정부,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며 사회안전망 확보, 대책마련 수립 같은 것들을 떠들어댄다. 하지만 호들갑은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한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계속 확대 심화되는 경제위기, 환경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 모두를 지속적인 위험으로 내모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금지하고, 소수가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필요에 입각해 사회를 운영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는 한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인류의 안전은 계속 위협받을 것이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다른 선택은 없다.
권보연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다. <재난불평등>이라는 책을 쓴 호주의 과학자 존C.머터이다. 그는 재난은 자연적 사건이지만 경제적·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는 재난은 자연적이다.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 그는 재난의 사망자수와 소득수준 간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똑같은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더 가난한 나라,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가 생긴다고 한다. 일례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약 1도 상승하면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017년 방글라데시에서는 장마와 그에 따른 홍수로 최소 1,200명이 사망하고 4,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작년에는 사이클론 '이다이'가 남부 아프리카를 강타해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모잠비크의 베이라시 90%가 파괴돼 주민 50만 명의 생존이 위협을 받았다. 중국 역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폭우로 5,5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한화로 약 24조 6,700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입었다.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전례 없는 가뭄과 폭풍으로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여름 기온이 51도까지 상승하며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페루는 거대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마을이 물에 잠길 위험에 놓여있고, 방글라데시의 섬들 또한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면서 자신이 살아온 섬을 떠나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상기후, 기온상승의 주범인 탄소를 배출하는 것은 누구인가? 부유한 10%가 전 세계 탄소배출양의 절반을 배출하며 부의 50%를 독점하고 있다. 불과 100개의 기업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가난한 국가인 모잠비크는 이상기후로 인해 2019년 한 해에만 전례 없는 사이클론을 두 번이나 겪으며 32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부담해야만 했다. 유엔은 지난 20년 간 기후에 따른 재해로 피해를 본 인구만 42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 세계 피해액은 2030년까지 약 3~7천억 달러에 달할 전망인데 이 피해의 대부분은 가난한 나라,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