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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계약직 노동자의 산재 신청기

해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가 2천 명을 넘어서는 끔찍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는 사회이다. 업무상 질환이라고 인정받은 노동자도 1만 5천 명 정도이다.  노동자가 죽고 다치기 전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는 사회여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한국노총이 있는 대기업 사업장으로 사실상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다. 그 과정을 인터뷰 형태로 소개한다.

 

▲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 고용노동부


 

Q. 어떤 제품, 어떤 공정에서 일하셨나요?

A. 냉장고를 만드는 라인에서 일했어요. ‘캡 제거’공정이라고 해서 냉장고 내부 뒤편 밑쪽에 기계실 이라고 있어요. 냉매랑 여러 부품들이 있는데 부품들을 연결하려면 파이프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게 이물질이나 먼지가 들어가지 말라고 고무 뚜껑 같은 걸로 덮여서 와요. 그걸 제거하고 정리해요. 힘을 많이 줘야 빠져요. 대략 15초로 도는데 파이프가 냉장고 한 대에 15개정도니까 1초에 캡 한 개를 뽑아야 해요. 밸브 달린 모델이 오면 밸브 끼우고 파이프 캡을 7개 뽑아요.

Q. 어떤 질병이라고 판정이 났나요?

A. ‘방아쇠 수지 증후군(손가락 힘줄에 생긴 종창으로 인해 손가락을 움직일 때 힘줄이 마찰을 받아 딱 소리가 나면서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라는 병명이에요. 제일 혹사당했던 중지가 접히지를 않았어요.

Q. 계약 만료가 된 이후에 산재 신청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전에는 할 생각을 못하셨나요? 

A. 계약 특징이 2년하고 하루 전날에 그만두게 만들어요. 그동안에 2-3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을 하는데 아프다고 하면 연장시켜주지 않을 거잖아요.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으라는데 입원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계속 사람이 부족하다고 관리자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동료들 눈치도 보이더라고요. 계약 만료 전에도 한 번씩 손가락이 안 접히고 아프다고 했어요.

Q. 조반장들 반응이 어땠어요?

A. 각각 말을 했어요. ‘산재인거 같으니 신청을 해야겠다’고요. 그랬더니 ‘안 될걸?’이러고 말더라고요. 이렇게 산재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없었을 테니 뭐가 뭔지 그 사람들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런데도 신청을 하셨잖아요?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후임이 그 고생을 또 반복해야 하잖아요. 중지 말고 다른 손가락을 쓰라고 했대요. 후임도 계약직이거든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데 힘든 공정이다 보니 정규직들이 기피하니까 계약직들한테만 맡겨요. 저랑 똑같은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미안하더라고요. 진짜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산재 신청을 언제 하셨어요?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나요?

A. 계약은 5월 8일에 끝났고요. 6월 3일에 산재 신청을 했어요. 일단 산재신청병원에서 수술을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신청을 했고요. 창원 근로복지공단에 접수가 되었고 얼마 전에 현장 검증을 다녀왔어요. 어이없는 일도 겪었죠. 진술서나 기타 서류들이 다 넘어간 상태이고요, 부산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에 넘어갔어요. 심의 의뢰를 해놓은 상태라 향후 회의 개최장소나 일시를 알려준다고 하네요. 아마 저도 참석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아까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이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A. 현장 검증 하는 날 아침에 같이 일했던 동생들한테 연락이 오는 거에요. 아침 조회시간에 반장이 ‘00이가 현장검증에 오는데 아는 체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대요. 유치하잖아요. 현장 검증하는 내내 조반장들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아는 척도 안했어요.

Q. 현장 검증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A. 일단 하던 일들을 감독관이 보고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간 거죠. ‘반복적인 일이고 그래서 손에 무리가 가는 거다’라고 하니까 회사가 ‘아프다고 안하고 힘들다고만 했다,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하더라고요. 힘들다, 아프다는 말은 당연히 했죠. 조치랍시고 라인에 업체 사람을 앞에 세워서 작업을 하게 했는데 그건 제대로 된 조치가 아니에요. 이미 손가락은 접히지 않는 상태였고요. 그러면 그 자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안 하잖아요. 회사는 업체 사람을 들였다고 그걸 조치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사고는 벌어졌잖아요. 조치를 취해준다고 벌어진 산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산재로 인정받아야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 했어요.
  아, 왜 계약 중에 수술을 못했냐고 근로복지공단 감독관이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쪼개기 계약이 나왔어요. 문제점들을 알고 있더라고요. 설명을 하니 그건 인사과 담당이니 모른다고 현장 담당자가 말했어요. 내 계약서는 그 사람들이 불러주는 대로 썼는데 말이죠. 
  그리고 진술서라고 건강상태 확인하는 문서가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안 아프다고 적거든요. 그걸 증거라고 하지만 거기에 아프다고 솔직하게 적는 노동자가 어디 있나요. 잘리는데. 그걸 증거라고 하는 게 웃긴 거에요. 그래놓고 저한테 근로복지공단 감독관이 뭐라는 줄 아세요? 계약 길게 해달라고 말해보지 그랬냐고. 그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나요? 공단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더라고요. 황당했어요.

Q. 산재신청에 대한 회사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요?


A. ‘기분 더러워’ 이거에요. 보통 정신력으로는 힘들더라고요. 사람을 얼마나 소모품으로 생각했는지 제대로 알았어요.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공정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정규직들이 계약직들보다 더 참아요.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보호해주는 장치가 하나도 없어요. 회사 반응이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 신청하자고 했는데 잘한 거 같아요. 회사 보험료가 많이 올라가고 이미지에 타격이 가니까 자꾸 모른다고 회피하는데 ... 하길 잘했죠.

Q. 앞으로 산재 신청을 하려는 사람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하려면 증거를 미리 많이 모아놔야 한다, 참고 일하면 몸만 아프다, 다음에 일하는 사람한테 피해가 간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신청을 꼭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고 싶네요.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을 찾으면 찾을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산재를 신청하려면 당사자가 의지를 가지고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계약직이 산재를 신청하기란 더욱 어렵다. 승인이 나더라도 산재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있는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 스스로 산재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업장에서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계약직 노동자의 협착사고, 정규직 노동자의 손가락 부상 등이 일어났지만 조용히 묻히고 넘어갔다. 
  노동자 건강에 위해를 가하면서 기업의 이윤을 충족시키는 모순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다 다치고 죽은 노동자들에게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