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서 게시한 카드뉴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카드뉴스에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비교하며 누구에게 진료를 받겠냐는 내용이 담겼다.
의사의 자질은 입시성적?
학교 성적이 높았던 의사는 유능하고, 그렇지 않은 의사는 무능하다는 주장이다. 의사들은 입시 성적이 의사로서의 능력으로 직결된다고 여기고 있다. 이 주장은 매우 편협하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적인 의료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의사의 자질은 임상 실력과 소명의식이라고 얘기되어진다. 임상실력은 암기력, 전문지식 즉 공부하는 실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4~5년간의 수련과정을 거치는 것은 임상 경험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판단능력과 손재주 또한 필요할 것이다. 기술적인 임상실력과 함께 환자와 생명을 우선시하는 인성, 소명의식 또한 의사의 중요한 자질이다.
의사협회의 성적 자질론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적과 특권을 따지는 이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단지 자격증 발급을 위한 형식적 절차일 뿐이다.
의사들의 편협한 의식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그 대가로 의대에 진학하여 높은 수입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노력’에 따른 매우 공정한 결과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과연 ‘공정’한가? 2018년 한국장학재단 자료에 의하면, 서울 주요 대학 의대생 중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9~10분위(월소득 900/1,200만 원 이상)에 속한 학생이 55%에 이른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아니면 의대에 진학하기 매우 어렵다. 고액의 사교육 없이 높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교육현실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돈이 있어야 높은 성적을 받기 쉽고, 돈이 있어야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가 될 수 있다. 노력만으로는 의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의학, 의술은 개인의 산물인가? 그렇지 않다. 당장 의대에서 배우는 해부학 실습은 어떤가? 실제 시신을 가지고 하는데, 이 시신은 의학 발전을 위해 스스로 기증한 환자들의 몸이다. 질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의사와 환자가 직접 치료하고 치료받으며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온 역사적 결과물이다. 환자 없는 의사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의학과 의술은 뛰어난 개인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정립한 의학과 의술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누려야할 공공재이며 공동의 자산이다. [의학만이 아니라 과학, 기술을 비롯한 인류의 문명은 권력을 가진 일부가 독점할 수 없으며 인류 협력의 산물이다.] 이런 역사의식 없는 의사들이 주장하는 ‘공정함’이란 얼마나 편협한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괴물
의사협회의 편협한 가치관은 누가 만들었나? 입시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교육시스템이 주범이다. 주위 동료를 밟고 일어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개인의 이득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교육한다.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는 말 그대로 ‘자본’, ‘이윤’ 등 개인의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삶을 함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교육, 의료, 주거 등 삶의 필수적인 부분을 공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개인이 책임지게 한다. 그런 사회에서 교육받고 살아온 의사들의 생각은 어떠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의식은 단지 의사들만의 문제인가? 우리 역시 사회 전체의 이익 보다 나만의 이기적 이득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우선시하지 않고 일부 자본가들의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의사파업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협회’와 같은 괴물들은 다른 이름을 달고 등장할 것이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