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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열사 분신 50년, 그러나 달라진 것 없는 청년노동자의 삶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라고 외친 후 분신한 전태일 열시가 돌아가신지 50년이 지났다.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 준수 외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걸음들을 모아내기 위한 시도들이 부단히 이루어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96,97년의 투쟁들은 노동자들의 힘으로 사회를 놀라게 했다.
  한편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의 힘을 보고 놀란 나머지 여러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노동자들을 고용형태 별로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비정규직’이다. 그렇게 노동자 분열정책들이 사회에서 점점 굳어지고, 새롭게 노동시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청년들은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부와 자본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늘어나게 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의 약 40퍼센트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높았다. 그리고 연령대가 낮고, 직장 규모가 작고, 임금이 적을수록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사회적으로 열악한 계층일수록 노동조건이 더 힘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노동시장에 뛰어든 비정규직 청년들의 사례를 몇가지 소개한다.

 

사례1
 
부산 신항만에서 근무하던 청년의 이야기이다. 이 청년은 2020년 6월 4일부터 2020년 7월 9일까지 일했다. 인터넷 공고를 보고 하청업체 직원으로 들어갔다. 항만에 있는 화물 정비일을 했는데 공장 안에 추레라가 있고 그 안에 컨테이너를 옮기는 일을 보조하거나, SC사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다른 노동자들을 보조했다. 
형식적인 안전교육과 "일하면서 알려줄게"라는 말로 바로 일에 투입되었으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막막함에 힘들었다고 한다. 이 일은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인데 회사가 급하니까 일단 뽑은 것이었다. 구내식당은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와서 먹거나 알아서 해결해야 했었는데 월급에 식대가 포함되어 있어서 밥값을 끼니마다 지불해야 했었다. 통근버스도 운행하지 않았고 따로 교통비를 지급하지도 않았다. 
이런 내용들은 계약서에 적혀있지도 않았고 구두로 언급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계약서 1부를 받은 적도 없었고 월급명세서를 따로 주지도 않았다.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업무를 하다가 팔꿈치를 찍혔지만 아무런 조치를 받지도 못했고, 산업재해가 뭔지 몰라 그냥 방치하다가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일은 6일 단위로 돌아갔는데 주간 2일, 야간 2일, 휴일 2일로 근무했으며 주말은 따로 없었다. 연본은 세후 2,400만 원이 채 안 되었다고 한다. 그만두고 나서 인근 지역 제조업 촉탁직으로 일하고 있다.
사례2
 
 장애 아동을 교육하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이다. 
이번 코로나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의 일이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원장이 어린이집 재정 사업이 어렵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이해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일을 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월급을 모두 받지는 못했다. 월급이 160만원인데 그 중 50만원은 원장이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신 옆 선생님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서 기록으로 남지 않게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라에서 주는 수당(처우개선비)을 잘 챙기라고 했다고 한다. 내년에 상황이 나아지면 이런 조건을 바꿔주겠다고 구두 약속을 한 상태라고 한다. 
퇴근시간은 지켜지지 않았고,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사례3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에서 근무했고 이제 다른 직종으로 옮긴 청년의 이야기이다.
 2016년 당시 기준으로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추가로 일하는 시간에 대한 수당은 없었고 언급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일하는 내내 쉬는 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했다. 월급은 150만원~160만원을 받았다. 
5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여러 곳의 어린이집을 전전했었는데 한번은 폐원 조치되어서 강제로 해고가 되었지만 아무도 그 이후를 책임져주지 않아서 한동안 실업상태로 보내야했다. 해고통지서를 물론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또 한번은 자신이 일하는 부서에 미리 신입을 뽑아놓고 다른 부서로 갈 수 있겠냐며 은근히 해고에 대한 압박을 했다고 한다. 
그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자진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년을 채우지 못해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였다. 그 이후 어린이집에서 최종적으로 일을 그만뒀고 지금은 계약직으로 지역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사례4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같은 라인에서 일을 하지만 사람들의 고용형태가 다 다르다. 정규직과 촉탁직, 업체 정규직, 업체 계약직이 각자 일을 한다. 모두다 똑같이 원청 관리자에게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고용 형태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는다. 업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쪼개놓은 상여금도 없었고, 명절에 나오는 회사 선물도 받지 못할뿐더러, 특근날 정규직은 다 받아가는 간식도 대놓고 주지 않는다. 코로나를 핑계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원청과 직접 계약한 정규직과 촉탁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이 친회사 경향이라 제대로 활동하지 않으니 노동자들의 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노동시간은 얼마나 유연한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뀌는 생산계획 때문에 퇴근시간이 늘 바뀐다. 해고도 소리 소문없이 이루어지며 정년퇴직자 자리는 계약직들로 메워진다. 
이 계약직 또한 2-3개월 쪼개기 계약으로 고용이 불안하며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법적 제도 때문에 2년하고 딱 하루 전날 계약을 만료시킨다. 그 다음은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늘어나는 동안 노동자들의 처우는 나빠지기만 했다. 이제는 가난한 청년세대를 ‘n포 세대’라고 부른다. 연애, 결혼, 출산, 양육 등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동자들 조건이 안좋아지는 만큼 비례해서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을 할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노동자들이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본가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그렇다고 기업이든 정부든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이미 저비용 고효율로 지배계급의 이윤을 보장하는 비정규직들이 안착되어 있고, 정규직과 이간질까지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져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청년들이 불안정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방법은 내 옆의 동료노동자들과 한 목소리로 고용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는 정규직들도 이들의 차별에 눈감지 말고 같이 싸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의 처지가 하향평준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더 나은 처지로 바뀔 수 있다.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고용형태가 다른 노동자들이 아니라 착취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내놓는 수많은 대책이 아니라 청년들이 나서야 진짜 해결이 가능하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