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뺌하더니 덥석 물어버린 두산인프라코어
지난 9월 28일 현대중공업지주는 두산인프라코어 예비입찰 참여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현대중공업지주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설에 대해 부정해왔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 때처럼 산업은행의 지원을 등에 업고 180도 입장을 바꿔 인수전에 참여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현대중공업 4사분할, 물적분할과 연결되어 실질적 현금지출 없이 대주주일가의 경영승계까지 가능하도록 함께 판을 짠 곳이 산업은행이다. 이번에도 산업은행은 자회자이자 투자전문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를 앞세워 현대중공업그룹에게 싼값에 두산인프라코어를 안겨주려고 한다.
조선도 건설장비도 현중자본의 독점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은 21%에 달한다. LNG운반선의 경우는 60%에 달하게 된다. 한마디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경쟁상대가 거의 없는 거대조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현실화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국내 건설기계(산업차량 포함)시장에서 50% 이상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중대형굴삭기는 70% 이상)을 확보하게 되고, 글로벌 점유율도 5.5%로 세계 5위에 올라선다.
시장점유율 50% 이상이 되면 ‘독점규제·공정거래 법률’에 의해 독점으로 간주된다. 즉, 뻔히 독점적 지위로 올라설 것이 분명한 현대중공업지주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국책은행의 자회사인 구조조정전문회사가 주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이끌고 있는 곳은 산업은행의 100%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다. KDB인베스트먼트는 작년 이동걸산업은행장이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만든 투자전문회사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부실회사를 넘겨받아 구조조정으로 기업가치를 올린 뒤 되파는 것이 주 업무다.
산업은행은 KDB인베스트먼트가 별도의 회사로 자체 판단으로 운영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지휘감독하에 있는 회사임이 분명하다. 부실회사도 아닌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현대중공업지주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것 자체가 이를 반증한다. 기업을 싼값에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투자회사가 인수주체와 함께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는 산업은행의 압력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중자본에 또다시 ‘특혜’ 주는 산업은행
산업은행은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인수에서 현대중공업에 엄청난 특혜를 줬다. 2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인수대금을 주식으로 받아주며 실질적인 현금손실은 없도록 만들어 주고 경영권까지 고스란히 보장해줬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6일자 이데일리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KDB인베스트먼트 관계자의 인터뷰가 실렸다.
“현대중공업지주도 인수전 참여를 많이 망설였지만, 우리가 꾸준히 설득해 최종 결심을 끌어냈다”
…
“현대중공업그룹은 경영권 확보 문제 등 때문에 민간 사모펀드 운용사를 선뜻 투자 파트너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죠. 우리는 산업은행 자회사여서 신뢰할 수 있고 구조조정의 이해도도 높다는 점을 적극 강조했습니다.”
KDB인베가 재무적 투자자(FI)로서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 투자가의 투자금을 조달해 현대중공업지주의 인수 부담을 줄이고 경영권을 보장한 것이 현대중공업 측이 두산인프라 입찰 불참에서 참여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 10월 6일, 이데일리
핵심은 KDB인베스트먼트가 최대 1조원에 달하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자금을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아 분담해주고 경영권까지 확보해주겠으니 인수하라고 설득했다는 뜻이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주는 격이다.
게다가 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가 소송에 휘말리며 발행할지도 모를 최대 1조원대의 우발채권 문제도 두산그룹측에서 소송 패소시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번 두산인프라코어 예비입찰에는 MBK파트너스,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등 대형 사모펀드(투기자본)가 참여했다. 수십조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투기자본들이 뛰어들었지만, 결국 산업은행이 개입해 있고 유일하게 동종제조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지주가 최종인수자로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실 두산인프라코어는 현대건설기계보다 규모가 큰 회사다. 2020년 상반기 순매출(두산밥캣 제외) 기준 1.5배가 넘는다. 두 회사 모두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에서는 그 차이가 3배에 달한다. 건설장비에 들어가는 엔진도 독자생산하고, K2전차에 들어가는 파워팩을 생산하는 방산부문까지 갖고 있다. 물론 이번 매각에선 알짜 자회사인 두산밥캣은 빠졌지만 유통망, 공급망, 연구개발부문 등 현대건설기계 자본의 입장에선 글로벌 건설장비회사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입장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선 그리 환영할만한 일이 못된다. 두 회사가 현대중공업지주 자회사로 편입되면 당장은 아니지만 오래지 않아 하나의 회사로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 자재구매, 유통망, 공급망, 연구개발 등 직접생산을 제외한 부문 먼저 통합을 추진할 것이고 차츰 생산부문도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두 회사의 합병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동반되는 구조조정이 문제다. 중복부문을 합치면서 노동자들은 ‘유휴인력’이란 이름으로 가차 없이 내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독자경영을 한다해도 중복부문의 조정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멀쩡한 회사가 모회사의 부실로 팔려나갈 처지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노동자들은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건설기계는 인수자의 입장이니 아무문제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자본의 집중은 그 자체로 나쁠 것은 없다. 노동자들에게 문제의 핵심은 고용과 노동조건을 사수하는 것에 있다. 노동자들은 어느 회사에 속하느냐에 상관없이 합병과정에서 자본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할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악화에 맞서 단결해 싸워야 한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