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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선,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정치적 전망을 만들어야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1972년 수준으로 돌려놨다. 2009년에 미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경제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어 구직을 포기하는 노동자들이 늘면서 마치 실업률이 낮아지는 것 같은 착시효과가 있었을 뿐, 실제 고용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밑바닥을 맴돌았다. 미국의 중소규모 기업가들은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산층들도 소득감소와 고용불안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산업과 미국민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우익들이 성장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이민자들에 대한 추방 정책, 인종성소수자 차별 정책, 공공복지 삭감 정책 등은 이런 상황을 반영했고 그를 대통령에 밀어 올렸다.

 

▲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미국인들. 지금 미국에는 식량배급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36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트럼프의 극우정치의 토대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의 정책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코로나19로 미국의 경제 상황이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그는 더욱 극단적인 우익적 방식과 정책에 의지해 사회경제적 위기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포악해진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려 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에 반대해 시위하는 흑인들(상당수 백인들도 포함해서)을 안티파(극좌파)로 몰아세우며,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자경단, 파시스트, 몰락해가고 있는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 그리고 불만에 가득 찬 일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규합해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려 했다. 코로나19 방역의 실패, 그에 따른 실업률의 급증(실질 실업률 27%)은 오히려 보수 우익들이 더욱 준동해 결집하는 토대가 됐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트럼프의 정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비록 재집권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무려 7000만 표 넘게 획득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와 코로나19, 그리고 인종문제 등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트럼프식 방책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바이든에게로 결집했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코로나19로 경제가 더욱 악화되는 가운데, 생존 조건이 실업자들과 가난한 노동자들뿐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식량배급을 받아야 할 만큼 척박해지면서 미국 사회가 불만을 가진 두 세력으로 양분되는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은 다를까?

확실히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지 못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에게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마땅찮은 것이었다. 무역장벽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더 어려운 조건에서 중국, 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의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은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기부자들로부터 2억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후원받았다. 이것은 트럼프가 받은 선거자금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당선된 바이든이 이 부자들과 기업가들의 이윤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정부에서도 정부예산의 상당부분이 기업들에게 흘러들어가 그들의 이윤을 보전해 줄 것이다. 임금이 줄고, 실업률이 치솟고, 식량배급에 의존해 생명을 잇는 가난한 이들이 점점 늘어가도 말이다. 부자들과 기업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미국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 바이든은 코로나를 막겠다면서도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의 노동자들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까? 미국의 상당수 노동자들이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게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56%는 “바이든이 좋아서가 아니라 트럼프가 싫어서”라고 말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체제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반트럼프 정서로 표현된 노동자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민주당의 바이든에게 쏠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바이든의 선거 정책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거의 없다. “존경받는 미국”이라든지, “위대한 미국”이라든지, “문명국가로 돌아가자”든지 하는 모호한 구호들로 反트럼프 정서에 호소했을 뿐이다. 
그러나 ‘존경받는 위대한 문명국’ 미국에서 지금 노동자들은 1972년 수준의 임금과,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실업률,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 여성차별, 낙태불법화, 이민자 추방 등으로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의 부자들은 정부지원에 힘입어 그리고 코로나19를 핑계 삼은 해고와 임금삭감 등으로 노동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것이 바이든이 말하는 ‘존경받는 위대한 문명국’의 실체다. 이런 야만 상태는 트럼프가 만들어 놓은 것일까? 트럼프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결코 부자들의 이윤을 침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이 선거공약대로 부자증세를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은 고스란히 그리고 더 부풀려져서 정부보조금 형태로 부자들에게 다시 흘러들어갈 것이다. 바이든은 부자들의 이윤을 침해하기는커녕 그들의 이윤확대를 위해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들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의 지배체제를 유지보전하기 위해서 바이든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을 더욱 왼쪽으로(트럼프가 말하는 안티파 쪽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더욱 우경화되는 세력과 다른 한편에서는 이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저항하는 세력으로 양분되는 상태에 끼어 바이든이 좌충우돌하는 처지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부자국민을 위한 나라

바이든은 50년 정치인생 동안 부자들에게 충성해 왔다. 제국주의적 약탈전쟁을 지지했고, 인종차별주의적 법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전국민 단일의료보험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민간 의료보험회사와 의료제약회사로부터 막대한 선거후원금을 챙겼다. 그는 노동자들의 생존과 건강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 의료제약회사의 이윤을 우선해 행동하고 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되면서, “‘위대한 나라’를 이끌도록 미국이 나를 선택해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 모든 ‘미국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위대한 나라 미국의 국민들 중에 노동자들은 없다. 거기에는 ‘부자국민’들을 위한 ‘나라’만 있다. 

선거는 끝났지만 대립과 충돌은 새롭게 시작될 것

치열했던 미국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하더라도 이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통치기간 내내, 그리고 선거기간 내내 지속되었던 미국 사회의 혼란과 폭력충돌을 미국의 지배자들이 더 이상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립양상은 사회경제적 위기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든을 정점에 앉힌 미국의 지배자들이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그 대립양상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이 대립의 근본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계급 곧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위기의 부침에 따라 사회세력들의 대립의 양상이 누그러질 수도 증폭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쟁이 지속되는 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이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립이 당분간 우익과 좌익이라는 모호한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정치적 전망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성장할 때면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새로운 대립국면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라는 자본가 정당들에 의존하지 않는, 그리고 선거에 의존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투쟁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의 성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트럼프 식의 공포정치에도 바이든 식의 속임수정치에도 휘둘리지 않고 노동자들의 생존과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미래의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다. 물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세력의 성장은 의식적인 노력과 투쟁을 필요로 한다. 아직 작지만 그런 전망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세력이 미국에도 있다. 
2008년 이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광장투쟁의 형태로든 현장투쟁의 형태로든 생존을 위해 싸워왔다. 코로나19로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노동자들의 비공인 파업들이 더욱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면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도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이 투쟁들에 기반해서만 노동자들은 공포와 불만으로 양분되는 야만적인 체제를 넘어서는 독립적인 정치적 전망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