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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는 죽었으나 책임질 사람이 없다?

현대차 2차 하청노동자의 죽음

1월 3일(일) 현대차 울산 1공장에서 2차 보전하청노동자가 베일러 머신(프레스 작업 후 발생하는 철판 스크랩을 큐브형태로 압축해주는 장비) 리드에 압착되어 사망했다. 보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마스터시스템 소속 노동자 3명은 업체 부장의 지시를 받고 가동 중인 베일러 머신 3기를 각각 1명씩 맡아 청소했다. 하지만 그중 1명은 13시 27분경 베일러 머신 위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1공장은 12월 19일부터 라인공사로 휴무 중이었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지만 1공장 프레스 장비는 한창 돌아가고 있었다. 정상가동일인 4일(월)을 앞둔 시점이라 미리 차체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다(1공장 프레스부서는 장비가 없는 4, 5공장까지 차체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휴무기간에도 가동되고 있었다).


명백한 증거에도 사실을 부정하는 현대차

공장가동을 준비하기 위해 프레스작업장 청소는 이미 전날(2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임원이 온다는 이유로 다시 정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작업지시는 마스터시스템 모 부장으로부터 조장에게 내려졌다. 현대차 사측은 이 부분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과 인터넷언론들은 현대차 사측의 ‘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반박자료를 그대로 옮기며  현대차 사측을 대변하고 있다.  
마스터시스템 모 부장의 작업지시 내용은 이렇다. 
“현대자동차 프레스부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난번 스크랩 낙하와 관련 가이드 보강공사를 했다. 오늘 한 14시경 현대자동차 안전팀과 중역들이 작업된 것을 확인하러 방문한다고 한다. 베일러 장비의 지저분한 것들을 정리해달라고 부탁받았다. 14시경에 온다고 하니 그 안에 정리해 달라”
이는 조장이 받은 작업지시 녹취 중 일부다. 그러나 현대차는 “… 4일 첫 가동을 앞두고 관계자들이 단순 점검에 나설 예정이었을 뿐, ‘중역’이 방문할 계획은 없었다”며 “휴일 후 시운전·청소 등 일상적인 사전 점검작업은 이미 사전에 예정됐던 것으로 일상적인 업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장비가 돌아가는데도 왜 청소를 했을까

베일러 머신이 있는 곳은 지상에서 4~5m 아래에 위치해 있다. 기계가 움직일 때는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가동 중 청소작업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 날 3명의 노동자들은 이곳을 청소했다. 현대차는 작업자가 작업지침을 어기고 “규정된 작업 범위를 벗어나” 청소를 했다고 주장한다. 즉, 작업자 잘못으로 사망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해당 작업은 2017년 2차 외주하청인 마스터시스템으로 넘겨졌다. 이후 마스터시스템의 노동자들은 장비가 돌아가는 작업장에서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2차 하청이 생산장비를 멈추고 청소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동을 멈출 수 없어 돌아가는 컨베이어 밑에 합판을 깔고 기어들어가 기름칠을 해야만 했던 마스터시스템 노동자들에게 베일러 머신이라고 달랐을 리 없다. 역시나 평소에도 가동 중인 베일러 머신 피트를 청소해야만 했다고 마스터시스템 노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는 베일러 머신 피트 청소를 정규직노동자가 해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해당공정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큐브로 만들어진 스크랩 덩어리를 자석호이스트를 이용해 밖으로 빼내는 작업만 한다고 말한다. 즉, 청소 업무는 2차 하청노동자의 몫이었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하청노동자의 처지는 어느 곳을 가거나 비슷하다. 

“1월 2일과 3일 작업에 대해 발행된 ‘안전작업허가서’와 ‘공사전 위험성평가표’에도 작업인원을 6명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작업인원일 뿐이었다. 프레스1부를 담당하는 마스터씨스템 노동자는 4명 뿐이다. 절대 6명이 작업을 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존재하지도 않는 2명이 있는 것처럼] ‘6명이 하는 작업’이라고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놓고 실제로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을 혼자서 해야 했다. 2인1조로 작업할 수 있도록 인원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해도 매번 돌아오는 답변은 ‘도급비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1차, 2차 하청업체로 외주화시키는 과정에 안전을 위한 노동자의 요구는 묵살돼 왔다. ”

- 1월 4일 금속노조 기자회견문 중



사건 은폐, 책임전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사망사고가 나자 현대차는 재빠르게 책임전가를 위한 조작에 나섰다. 마스터시스템 관리자는 원청 현대차 관계자들과 함께 임의로 작성된 경위서를 들고 와 재해자 최초발견자인 조장에게 사인을 강요했다. 이 경위서는 작업지시 주체를 밝히지 않고 관리감독 권한이 조장에게 모두 부여된 것처럼 조작됐다. 다행히 당사자는 사인을 거부했다. 

▲ 사측이 임의로 작성해 사인을 요구한 <사고 경위서>

앞서 밝힌 녹취에는 분명 ‘현대자동차 프레스부서’에서 작업지시를 한 것으로 나온다. 임원이 온다는 이유로 하청에 하청인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그런 적 없다, 전부 작업자 잘못이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지만 작업중지는 단 하루만 내려졌고, 바로 다음 날인 5일(화)부터 공장은 쌩쌩 돌아가고 있다. 현장에선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놈은 없다”는 불신이 가득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실질적인 관리감독 지위가 있는 원청이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이유를 이번 사고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위험의 외주화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원청과 책임자가 처벌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장에서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 1월 4일(월)부터 소수의 1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이 2차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공식 직함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피해자 과실로 몰아가는 현대차 사측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