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결국 누더기 되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그 약속은 이미 사라졌다
너무나 당연한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고(故)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故)이한빛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국회 본관 앞에서 27일차(1월 6일)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당신들의 자식을 중대재해로 먼저 보냈던 두 분의 무기한 단식농성은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얼마나 깊은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이미 깨버린 수많은 공약들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민주당도 9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낙연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당론에도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들끓는 여론에 떠밀려 12월 24일에서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법안소위에 올렸다. 하지만, 법안소위 논의는 어떻게 하면 기업의 부담을 줄일 것인가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12월 28일 내놓은 정부안에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났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민주당에서조차 선을 그을 정도였다.
교통사고보다 못한 산재사망사고 처벌
한해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가는 나라, 23년간 OECD산재사고 1위의 악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 노동자가 죽어도 교통사고보다 약한 처벌을 받는 나라, 원청의 대표는 절대 처벌받지 않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산재사고에 적용되는 법률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다. 하지만 이 법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노동부가 2018년 12월에 발간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서 이 사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검찰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간 산안법 위반 건에 대해 평균 78.8%를 기소했다. 상당히 높은 기소율을 보이고 있으나 위반사범의 대부분은 불구속 상태에서 약식명령(벌금)을 받을 뿐이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1심에서 징역형이나 금고형에 처해진 자는 재판을 받은 5,815명 중 단 33명(0.57%)에 불과하다. 벌금액수도 상당히 낮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평균 개인은 421만원, 법인은 448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최근 사례에서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2월 28일 정의당 류호정의원실에서 공개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선고 현황>에는 2015년부터 2020년 10월까지의 처리결과가 나와 있는데 재판을 받은 4,100명 중 단 24명(0.58%)만이 징역형이나 금고형에 처해졌다.
원청은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에게만 책임전가
처벌수위보다도 더 문제는 하급관리자나 안전관리 담당자 또는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 처벌받는다는 점이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도 원청 법인이나 대표가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경우(징역 0.9%, 금고 0.1%)는 극히 드물다.
처벌을 받은 자들 중 가장 많은 직책은 놀랍게도 지게차, 화물차 등의 운전기사다. 2, 3위가 현장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고 4위가 안전담당자다. 원청의 경우는 57위쯤 가야 원청본부장 단 1명이 있다. 즉, 산안법은 산재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책임자보다는 누가 사고와 더 가까운가에 따라 처벌이 이뤄진다.
2017년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던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의 경우도 1심에서는 원청의 책임자였던 조선소장(부사장) 등 안전보건 관리직 간부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크레인 운전수, 신호수, 현장반장 등 11명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후 작년 2월 2심에서야 원청 책임자 4명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됐다.
작년 4월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숨진 참사의 1심 선고가 작년 12월 29일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원청 건우 담당자와 감리단장에게만 징역과 금고형이 선고되었고,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는 TF팀장만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산재사고가 나면 원청은 말단 안전담당자만 처벌되고, 실질적 책임은 ‘시켜서 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다. 반면, 원청의 경영진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다.
누더기가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0만 명의 입법청원으로 대중적 의지를 모아나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원안은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다. 모든 경영자단체들이 사활을 걸고 ‘안 된다’를 외치고 있고 정부와 국회는 이들의 눈치를 보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초 원청 경영책임자의 위험방지의무를 강화하고, 다단계 하청으로 이어지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으며, 인허가 책임공무원의 관리감독 해태를 막아 사회적 참사를 줄이고자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는 사라져가고 있다.
매번 사회적 혼란을 줄이겠다며 내놓는 단계적 시행이 이번에도 등장했다. 50인 이상 100인 미만 2년 후 시행, 50인 미만 4년 후 시행이 기본 골격이 돼 버렸다. 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통계>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의 약 70%가 일하고 있는 사업장은 법이 제정되더라도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10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자는 전체(109,242명)의 약 84%에 달하고,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2,020명)의 약 71%에 달한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원청에서 발주처는 빠졌다. 이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한익스프레스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게 된다. 그리고 처벌대상인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이사’로 규정하면서 실질적 경영책임자가 안전담당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사고가 난 시점으로부터 5년 전까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행정청에서 3회 이상 확인했거나, 사고 현장을 훼손하는 등 진상조사와 수사 등을 방해한 사건의 경우 처벌하는 ‘인과관계추정조항’은 사실상 사라질 판이다.
누더기 법안을 막기 위해
정부와 여당은 오는 8일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야당인 국민의 힘에 협조를 요청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공수처법 등은 일사천리로 여당 혼자서 처리하더니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야당을 찾느냐는 김미숙씨의 호통은 이들에겐 메아리일 뿐이다.
매번 국회문턱조차 넘지 못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요구가 이번에는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정부와 국회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국회는 노동자의 편은 아니기에 법 제정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2년 전 고(故)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조차 위험작업 사내도급금지 제외업종이 너무 많고 원청의 처벌수위도 낮아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취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논의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큰 대중적 압력을 만들지 않는다면 쓰레기 정부안처럼 자본가들이 원하는 껍데기 법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단 한 명의 노동자도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누더기 법이 아닌 원안 그대로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커져야 한다.
윤용진
거대 양당은 기어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무용지물로 만들려 한다. 어제(6일) 열린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중대산업재해 대상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에서 ‘소상공인’ 및 학교를 제외하며 △발주, 임대를 제외한 용역을 준 업체만 법 적용을 받고 △인과관계 추정 조항 및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79.8%(2018년)을 차지하고, 전체 재해자와 사망자의 약 34%와 35%가 이들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강력한 요구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했다는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람도 아니란 말인가? 죽어도 되는 그런 존재들이란 말인가? 죽어도 되는 노동자는 단 한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