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이 지핀 ‘사면’ 군불, 그리고 드러난 계급적 본성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감방에 수감 중인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은 ‘국민통합’을 사면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낙연은 문재인의 적극적 지지층들의 반대를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 건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낙연의 예상대로 친문 지지층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등에 칼을 제대로 꽂았다” “대통령하겠다는욕심 때문에 적폐들과 손잡았다” “민심과 역행하겠다면 사퇴하라” “이러려고 촛불 든 게 아니다” 등으로 사면에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당의 반응
국민의힘당의 나경원 전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이 너무 오랫동안(박근혜의 경우 4년째) 수감 중이라며, 사면논의가 너무 늦게 제기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당장에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사실 국민의힘당은 진즉부터 이명박근혜의 사면을 주장해 왔다. 다만 국민의힘당은 민주당이 ‘반성’ 운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찬반양론으로 갈라진 민주당, 그러나 같은 속내
민주당은 즉시 찬반 양론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민주당 내 찬성론자들과 반대론자들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사자의 반성과 여론의 찬성’을 전제로 사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박수현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운명이고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의 운명이기도 하다”고 함으로써 이명박근혜의 사면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실(운명)인 것처럼 주장했다. 이 정도면 사면에 관련해서 만큼은 국민의힘당과 완전히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내 반대론자 중 강경파의 한 사람인 안민석 의원은 이명박근혜의 사면을 “촛불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일갈하고서는, 이명박근혜에 대한 범죄, 특히 해외은익재산에 대해 밝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력한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안민석조차도 “사과와 반성을 전제로 국민들의 다수가 사면복권에 반대하지 않을 때 정치권은 국민의 명에 따라야 한다”면서 역시나 ‘여론의 찬성과 당사자들의 반성’을 전제로 사면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정청래 의원도 “용서와 관용은 가해자의 몫도 정부의 몫도 아니다. 오로지 피해자와 국민의 몫”이라며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 두 전직 대통령이 “제대로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사면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여론의 찬성과 당사자들의 반성’을 전제로 ‘용서와 관용’을 베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의 유보, 그러나 같은 본질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로 이낙연과 경쟁하고 있는 이재명 지사는 “대통령의 결정에 따르겠다” “행위에 대한 책임, 반성과 사죄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치유와 통합이 없다”면서 다소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사면’에는 ‘당사자의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을 좀 더 고상하게(?) 하고 있을 뿐, 원칙적으로 사면에 찬성하고 있다.
이재명은 그동안 “적폐청산을 위해 박근혜 ~ 등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사면불가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속임수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 이재명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시험대 앞에서 자신의 지배계급으로서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들의 선택 이전에 이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인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낙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낙연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이들은 ‘사면’ 카드로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중도보수층들을 다시 끌어들여야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꿍꿍이는 제각각이지만 말이다.
민주당의 사면 기준, ‘여론의 찬성과 당사자들의 반성’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일 긴급최고위 직후 “이낙연 대표의 발언은 ‘국민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전체의 입장으로 사면의 ‘대전제-기준’은 ‘여론의 찬성과 당사자들의 반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 대전제가 충족되면 사면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일단 선긋기, 그러나 역시나 같은 속내
청와대의 반응도 민주당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아직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때가 아니다” “아직 건의가 오지 않았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법상 형이 확정되어야 사면할 수 있기 때문)”는 말 등으로 사면에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는 “때가 되면” “건의가 오면” “형이 확정되면” 사면할 수도 있다고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사면불가”을 분명하게 천명하지 않음으로써 사면의 여지를 크게 열어두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은 문재인의 속내는 다를까?
그들 모두는 지배계급의 한 식구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당이든 지배자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사면에 찬성하고 있다. 박근혜는 세금을 도둑질해쳐먹었고, 각종 잇권에 개입하고 뇌물을 받아쳐먹었고, 재산을 해외에 빼돌렸고, 그래서 탄핵됐다. 이명박은 사대강 개발과 자원외교 그리고 방산납품 비리로 엄청난 세금을 도둑질해 해외로 빼돌리렸다. 여기에 비교하면 몇몇 뇌물수수와 120억짜리 다스 공금횡령 따위는 새발의 피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노조를 약화시키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억압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그들의 삶을 고통과 빈곤으로 내몰았지만, 이것이 자본가계급의 이윤확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이며, 바로 그것이 그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들을 똑같이 자신의 존재근거로 삼는 이들의 형제자매들이 ‘사면’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그리고 ‘국민통합’을 명분 삼아 부패와 비리의 @덩어리들의 ‘사면’을 기도하면서 ‘용서와 관용’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이려 하고 있다. 한 언론사는 “이(이낙연) 대표가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론이 무르익으면 문대통령이 결단하는 식으로 당청이 역할을 분담했을 공산이 크다”고 정확하게 꼬집었다.
용서하지 않는 훌륭한 미덕
광주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업었던 김대중은 총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광주시민 수천 명을 죽인 전두환을 사면했다. 문재인이 김대중의 뒤를 이어 ‘당사자의 반성과 여론의 찬성’이라는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는 ‘적절한 때’에. 이명박과 박근혜를 사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놀랄 일은 전혀 아니다. 다만 그들이 한배를 탄 지배계급의 한 식구들이라는 것이 증명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는 이들까지도 용서하지 않은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훌륭한 ‘미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