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일하고, 더 낮은 연금 받으라는 정부에 맞서 프랑스 노동자들이 세상을 멈췄다!
작년 12월 5일부터 프랑스 노동자들은 정부의 연금개악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34일째(1월 8일 현재) 이어진 파업은 역대 최장기간 파업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1995년에도 연금개악을 추진하는 정부에 맞서 3주 동안 파업을 벌여 정부를 무너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파업으로 멈춘 프랑스
12월 5일 하루에만 프랑스 전국에서 15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고속철도와 시외열차의 90%가 멈췄고, 파리 16개 지하철 노선 중 5개만 운행됐다.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으로 에어프랑스의 국내선은 30%가 취소됐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은 파리 내 8개 정유공장 중 7곳을 봉쇄했다고 밝혔다. 전기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프랑스 10여개 도시에서 전기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 오르세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등 유명 관광지가 문을 닫았다. 교사와 운송노동자를 비롯해 경찰, 변호사, 병원과 공항 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해 말 그대로 프랑스를 멈춰 세웠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철도와 지하철의 운행률은 조금 높아졌지만 여전히 30%~50%만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1월 9일 4차 연금개악 저지 결의대회를 앞두고 파업 참가 노동자의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정유·화학 노조들이 7일부터 파업을 선언해 프랑스 전역의 연료 공급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개혁? 개악!
프랑스 정부는 현재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연금제도를 포인트제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고령화로 인해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는 연금제도를 ‘개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정부가 ‘개혁’이라고 이름 붙이는 정책은 노동자들에게는 ‘개악’이라는 점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다르지 않다.
연금제도가 바뀌면 노동자들은 더 오래 일하고도 더 낮은 연금을 받게 된다. 프랑스에서 지난 10년 동안 정년이 60세에서 62세로 늘었는데, 정부의 개악안에 따르면 64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 64세 이전에 퇴직하면 더 낮은 연금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연금수령액 산정 기준도 변경돼 연금수령액이 줄어든다.
마크롱대통령은 연금개악에 반발하는 여론과 파업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자, 자신의 대통령 연금과 수당(월 2,500만원)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들은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라고 추켜세웠지만,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은 연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부자”라며 비아냥거렸다.
마크롱은 대통령 당선 이후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를 증명해왔다. 부유세 폐지, 저소득층의 주택보조금 삭감, 기업의 노동자 고용·해고 조건 완화, 공공 일자리 폐지 등 친자본, 반노동 정책으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유류세 인상으로 프랑스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노란조끼운동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노동자민주주의와 연대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렇게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연대에 있다.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제하고 중단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지만, 파업노동자들은 관료들의 통제를 거부하고 매일 총회를 통해 파업 지속을 결정하고 있다. 부문과 직종, 세대를 뛰어 넘는 연대로 파업의 힘을 키운다.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청년들과 학생들도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노란조끼운동도 이번 프랑스 파업에 결합하고 있다. 최장기간 파업을 넘어 승리의 조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연금개악으로 촉발된 파업이지만 마크롱정부의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불만을 가진 모든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프랑스 파업은 가난과 불평등, 자본의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선 투쟁이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프랑스 마크롱 정부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지만 그 실상은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기업에게 온갖 혜택을 주는 ‘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노동자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승리의 길을 한국 노동자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