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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조직적 힘을 보여준 23일간의 대우조선 파워공 투쟁

noheflag 2021. 5. 5. 20:22

대우조선 파워공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해냈다. 정확히 말하면 근래 들어 정규직노동조합조차 못하고 있는 진정한 파업을 해냈다. 

 

불안한 시작, 서로의 울타리가 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자!(1주차)

 

3월 31일(수)부터 자발적인 작업거부를 시작한 파워공들은 바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결합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4월 1일(목) 조각공원에 모인 100여명의 파워공들에게 ‘2019년 대우조선, 3월 삼성중공업 파워공 투쟁 모두 노동조합이 책임질 수 없어 마무리를 제대로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제대로 해보자, 노동조합이 책임지고 하겠다.’고 설득했다. 두 번의 경험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너진다는 교훈을 주었기 때문에 그날 대부분의 파워공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는 못하는 파워공들이 많았다. 자칫 회사에서 알기라도 한다면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김형수지회장은 노동조합 가입서를 쓰고도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과거처럼 변변한 협상도 합의도 없이 마무리되는 투쟁이 아니라, 이번에는 반드시 금속노조가 도장업체들과 문서로 합의하고 투쟁을 마무리할 것이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파워공들은 조각공원에 처음 모인 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임금인상 투쟁을 결의한 순간부터 동료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2일(금) 노동조합 투쟁으로 공식화된 파워공 투쟁은 어제보다 더 많은 파워공들이 출투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날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도장부 9개 업체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공식 단체교섭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 파워공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다음날인 4월 2일(금) 서문 안 선각삼거리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출투를 시작했다.

 

우리가 파워 아이가! 형님, 동생 모여 봅시다!(2주차)

 

파워공들이 작업거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업체들의 협박은 시작됐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공문까지 보내니 압박은 더 심해져갔다. 대우조선 원청의 인사부와 협력사운영부도 파워공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하지만 아침 출투에 나오는 파워공들은 하루하루 더 늘어만 갔다. 

 

▲ 4월 7일 도장부 9개 업체가 교섭에 응하지 않자 바로 1도크에 진입해 집회를 하고 있는 파워공들

6일(화)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첫 교섭을 요청한 날, 한 업체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7일(수) 9개 업체들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바로 1도크 진입투쟁을 진행하고, 다음날엔 대우조선 원청사장 면담요구 투쟁, 1도크 골리앗 크레인 작업 중지 투쟁을 과감히 실행했다. 이는 생산을 멈추는 진정한 파업을 실행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사용주인 원청의 책임을 묻는 행위였다. 이후 투쟁이 마무리되는 2주간 도크 진입투쟁과 골리앗크레인 작업 중지 투쟁은 기본 전술이 되었다. 

 

▲ 4월 8일 대우조선 원청사장 면담투쟁과 1도크 골리앗크레인 작업 중지 투쟁이 결행됐다.

투쟁에 나선 파워공들은 더 많은 동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파워공들을 찾아 나섰다. 사실상 파업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도 부끄러웠는지 발각되는 족족 줄행랑치기 바빴다. 사실 이들도 어쩔 수 없는 처지이긴 했다. 업체관리자들이 집안형편이나 개인적 사정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회유하고 협박해 작업에 투입시켰기 때문이다. 파워공들은 이런 파렴치한 짓에 거세게 항의했고, 업체관리자들도 작업자를 더 이상 대놓고 투입시키지는 못했다. 대신 자신들이 일하는 것은 양해해달라는 정도였고, 딱 그 정도만 허용됐다. 
이미 투쟁을 끝내고 현장에 복귀한 삼성중공업 파워공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투쟁에서 나타난 약점을 알려주며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 노동조합을 믿고 끝까지 함께 해야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조언했다. 이는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대우조선 파워공들에게 큰 힘이 됐다. 
10일 토요일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파워공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여를 독려한 것도 아닌데 이날 열린 ‘대우조선-삼성중공업 파워노동자 단결 한마당’ 행사에 100여명이나 모였다. 그리고 이날 대우조선 스프레이, 터치업 노동자들도 참여해 월요일부터 파워공 투쟁에 함께 할 것임을 밝혔다. 이제 파워공 투쟁은 도장부 전체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다면 한다’, 외연을 확대해가는 파워공 투쟁(3주차)

▲ 파워공들이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깃발과 해고자인 지회장을 호위하며 서문으로 입장하고 있다. 4월 7일 경비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간 이후 매일 깃발을 든 지회장 입장이 통과의례였다.

파워공 투쟁이 3주차에 접어들면서 투쟁 외연이 확대됐다. 12일 월요일 금속노조 김호규위원장이 직접 거제로 내려와 ‘거제, 울산, 목포 2500명 모든 파워노동자’를 조직할 것임을 천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제 대우조선 파워공만이 아니라 전국 주요 조선소의 모든 파워노동자를 금속노조가 조직해 투쟁하겠다는 상징적 기자회견이었다. 그동안 금속노조는 조선소하청조직화를 전략사업으로 상정하고 수년을 노력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대우조선 파워공 투쟁이 솟구쳐 오르면서 이제야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됐다. 

 

▲ 4월 12일 금속노조 김호규위원장과 파워공들이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파워공들은 더 넓은 지역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1, 2도크 야드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힘껏 외쳤다. 약속대로 스프레이, 터치업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스프레이도, 터치업도 함께한다!’는 피켓을 든 도장부 하청노동자들의 대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 파워공들이 1, 2도크 야드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는 하청노동자들의 응원과 지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하청노동자들은 투쟁하는 파워공들의 눈과 귀가 되었다. 현장의 하청노동자들은 파워공들에게 도둑작업을 제보하고 사측의 동향을 알려주었다. 이 때문에 누가 어디서 도둑작업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업체관리자들이 직접 파워그라인더와 스프레이를 해야만 했다. 몰래 동원된 미숙련 대체인력은 관리자의 안전모를 쓰고 불안에 떨며 도둑작업을 해야만 했다. 대우조선 원청은 정규직을 동원해 스프레이 작업을 하려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도둑작업을 막기 위해 야간 순찰까지 하는 파워공들을 피하기 위해 경비들이 사측의 눈이 되었다. 경비들은 순찰조가 오면 도둑작업자들에게 연락해 숨어 있게 하고, 순찰조가 빠지면 다시 일하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파워공과 사측의 숨박꼭질은 계속됐다.
십수년의 숙련도를 쌓은 파워공들과 스프레이 사수들이 빠져버리자 작업품질은 그야 말로 엉망이었다. 그렇게 품질을 강조하던 원청도, 선주들도 진수일정을 맞추기 위해 그냥 눈감아 버렸다. 이대로라면 이후 선박의 도장품질은 최악일 것이 분명했다. 

 

▲ 파워그라인더는 숙련도가 중요한 작업이다. 좌측은 기존 파워공들이 작업한 것이고 우측은 미숙련 대체인력이 작업한 것으로 육안으로도 그 차이가 분명하다.

대우조선 원청은 파워공들의 투쟁에 아연실색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노동조합으로 뭉쳤기 때문이고, 결코 쉽게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13일(화) 대우조선 부사장 박두선 명의의 담화문이 뿌려졌다. ‘2만 명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일터’를 파워공들이 위협하고 있다며, ‘고소•고발•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도장부 9개 업체 대표들이 ‘노동조합과는 교섭하지 않겠다’, ‘임금인상은 해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이유가 원청에 있다는 사실을 박두선 부사장은 스스로 인정한 꼴이었다. 

 

▲ 4월 13일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부사장의 담화문. 2017년부터 4년간 2조 2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어렵다며 임금을 삭감하고, 불공정하도급으로 공정위로부터 2018년 108억, 2020년 153억의 과징금을 받은 대우조선이 불법을 운운하고 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파워공들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14일 수요일 또다시 지원센터를 항의방문했다. 일주일 전에는 사무직과 경찰에 의해 사장을 만날 수 없었는데, 이 날은 차벽이 가로막았다. 대우조선 원청이 세운 이 차벽을 파워공들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세웠다는 의미로 ‘거머리 산성’이라 불렀다. 

 

▲ 4월 14일 원청 사장을 만나기 위해 지원센터로 찾아갔던 파워공들은 이번엔 차벽에 가로막혔다.

15일(목) 파워공의 행진은 2도크로 이어졌다. 지난주 1도크 바닥까지 내려갔던 파워공들이 이번에는 관리자들의 저지를 뚫고 2도크를 점거했다. 금요일인 16일엔 힘차게 투쟁 중인 대우조선 파워공을 응원하기 위해 곳곳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모였다. 전라도 영암의 전남조선하청지회, 울산의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창원의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구미의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새벽부터 출발해 아침출투를 함께 했다. 5개 지회 조합원들은 야드를 순회하고 대우조선 밖으로 나온 파워공들과 함께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우조선 인근 옥포 시내를 행진했다. 

 

▲ 4월 15일 파워공들은 관리자들의 저지를 뚫고 2도크를 점거했다.

 

결사항전,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동지들(4주차)

 

주말을 보내고 19일(월) 투쟁 4주차가 시작됐다. 출투 후 1도크에서 집회를 한 뒤 다시 지원센터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대우조선 원청은 파워공들이 온다는 소식에 거머리산성(차벽)을 쌓고 출입문을 봉쇄했다. 이 자리에서 김형수지회장과 유최안사무장 그리고 파워공 대표 2명이 삭발을 하며 결의를 다졌다. 파워공들은 부부젤라를 부며 힘껏 외쳤다. “(교섭에)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투쟁!” 

 

▲ 4월 19일 원청사장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지원센터는 또다시 차벽으로 막혀있었다. 이 자리에서 지회장과 사무장, 파워공 대표 2명이 삭발을 하고 결의를 다졌다.

20일(화) 드디어 도장부 9개 업체가 모두 교섭에 나왔다. 오전에 몇 차례 정회를 하며 이어진 교섭에서 퇴직적치금 폐지, 단기계약 폐지, 블랙리스트 철폐는 합의됐지만 핵심요구인 임금인상은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파워공들은 오후에 1도크 진입을 결행했다. 시간만 끌려는 업체들과 뒤에서 이를 조종하는 원청에게 이미 공언한 24일 1도크 진수를 반드시 막겠다는 결의를 보여줬다.
그러나 도크 게이트는 철제 쓰레기통으로 막혀있었고, 원청이 동원한 직반장들이 폭력적으로 막아섰다.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들은 회사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것처럼 막무가내였다. 일부러 충돌을 조장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저곳에서 충돌장면을 촬영하고 있었고, 하청지회와 파워공이 정규직을 폭행한다는 선정적인 내용과 함께 정규직들에게 유포됐다. 정작 목을 조르고 때리고 밀치는 자들의 태반이 직반장들이었는데도 말이다.

 

▲ 19일(월) 서문 경비실 유리창에 민노협 대의원 일동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바로 하루 전 현장조직 대우조선민주노동자협의회(민노협)이 유인물과 대자보를 발행했다. 민노협은 “하청지회의 이기적인 불법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며 “대우조선지회 조합원들과 구성원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금속노조가 불법을 부추기고 노노갈등을 부채질한다며 ‘금속노조 탈퇴’를 거론하기도 했다. 현장조직 유인물인지 사측유인물인지 헷갈리는 민노협 대의원 명의로 발행된 이 대자보는 서문 경비실 유리창에도 떡하니 붙어 있었다.  
21일(수), 대우조선 원청은 전날 파워공에 의해 뚫린 1도크 게이트를 더 무거운 온갖 자재들로 쌓아 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날부터 정규직 직반장들과 사무직관리자, 업체관리자까지 동원하여 1도크의 모든 출입구를 막았다. 교섭은 이날도 계속 이어졌지만 임금인상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진전이 없었다. 이제는 끝장을 봐야만 했다. 

 

▲ 4월 21일 철재 쓰레기통과 각종 자재들로 1도크 게이트를 봉쇄하고 있는 관리자들

“우리는 우리가 결의한 대로 진수를 막아서라도 끝장투쟁 하겠다. 끌려 나올 수도 있지만 스스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동지들의 결의를 믿고 끝까지 함께 싸우자!”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지침이 떨어지자 파워공들은 질서정연하게 1도크 옆 야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파워공들은 이날부터 1도크 야드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이 밥도 먹지 못한 채 철야노숙농성이 시작됐다. 

 

▲ 4월 21일부터 파워공들은 1도크 바로 옆 야드에서 철야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원청에 의해 동원된 관리자들이 500여명이 넘었다. 경찰도 2개 중대가 상주하고 있었다. 비닐 한장에 의지한 채 밤을 꼬박새운 파워공들은 22일에도 자리를 지켰다. 500명이 넘는 관리자들도 여전히 1도크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진수예정인 선박에서 쓰레기통, 전기판넬 등을 타워크레인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도크에 물을 채우기 위한 사전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파워공들은 즉시 대오를 갖추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김형수지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의 결전을 준비한 듯 마지막 발언을 했다. 

 

▲ 원청이 동원한 관리자(좌)들이 파워공들(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우조선지회 조합원들이다. 하청노동자 투쟁을 막는 방패막이로 내몰린 정규직도, 이들과 대치해야만 하는 하청노동자도 원해서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하청 단결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투쟁이 무모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무권리 상태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살아 왔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빼앗기며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고,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살려면 투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주위에 있는 정규직 사람들과도 함께 살려고 싸우는 거다. 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늦은 밤 금속노조 경남지부 홍지욱지부장과 대우조선지회 신상기지회장의 중재로 일당 2만원 인상을 포기하고 이미 합의된 안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23일간의 파워공 투쟁은 마무리 됐다. 투쟁을 이끌었던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지도부는 핵심요구였던 일당 2만원 인상을 포기했다는 자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대부분의 파워공들은 지도부를 탓하지는 않았다. 투쟁 과정을 끝까지 함께한 동지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지도부의 헌신과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최초의 집단 합의서

 

대우조선 파워공들은 도장부 9개 업체와 동일한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퇴직적치금 폐지 ▲단기계약 폐지 ▲설•추석•하기 휴가비 지급 ▲블랙리스트 철폐’다. 

 

▲ 4월 23일 오전 도장부 9개업체와 파워공 노동자대표들은 동일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비록, 이번 합의에서는 ‘일당 2만원 인상’이라는 핵심 요구가 빠졌지만 합의서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금껏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대부분의 투쟁은 산발적이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다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장부 모든 업체와 공식합의서를 체결했다. 물론, 노동조합이 합의 주체가 되지 못한 한계가 있으나 애초에 절차를 밟아 진행한 임단협 투쟁이 아니었기에 공식적인 합의서를 만든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다. 
또한, 제각각이던 도장부 파워공의 노동조건을 통일시키면서 이후 좀 더 쉽게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이번 합의를 적용받는 파워공들은 업체가 다르더라도 5월 1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1년간 근로계약이 통일된다. 일당, 잔업수당, 설·추석•하기 휴가비 또한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블랙리스트 철폐를 공식적으로 확답 받았다. 엄연한 불법인 블랙리스트는 지난 2019년 파워공 투쟁 후에도 문제가 됐었다. 당시 투쟁에 앞장섰던 파워공 중 일부는 대우조선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면 원하청에 찍히고 다시는 그곳에서 일할 수 없다는 공포가 하청노동자들을 짓눌러 왔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철폐는 중요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물론, 순진하게 원하청이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블랙리스트가 공식적으로 없다는 점을 확약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새로 쓴 대우조선 파워공들은 이제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정도의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파워공들의 다음 투쟁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끝까지 자리를 함께 지켰던 스프레이와 터치업 노동자들, 언제나 응원하고 파워공들의 승리를 바랬던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파워공들에게 보냈던 김형수지회장의 글로 대신한다. 


“우리가 함께 한 23일간의 파업투쟁은 대우조선 원청을 떨게 만들고, 하청사장들이 더 이상은 하청노동자를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길 수 없게 만든 강력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임금 1-2만원인상 요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투쟁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라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하청노동자의 처지와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던 하청노동자들의 쌓인 분노가 임금인상이라는 요구로 터져 나온 생존권 투쟁이자, 하청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반영된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의 강력한 무기가 우리의 마음과 손에 쥐어졌기에 가능했던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분노가 폭발했고 절규에 가까운 외침들이 온 야드에 울려 퍼졌습니다. 임금쟁취를 넘어 우리 하청노동자의 삶을 바꾸자라는 우리들의 결의가 요동치는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투쟁을 통해 파워그라인더, 스프레이, 터치업이 하나 되어 함께 투쟁해야겠다는, 그리고 전국의 파워공을 모두 노동조합으로 모아낸다는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망과 아쉬움은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고, 비판과 질책은 깊게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되새겨서 한걸음 한걸음 더욱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더 강력하고 더 큰 조직 만들어 가겠습니다. 하루하루가 감동이었던 23일간의 파업투쟁을 가슴에 새기고 제2의 투쟁, 더 큰 투쟁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투쟁!”

▲ 4월 26일 월요일, 서문에서 23일간의 투쟁을 마무리하고 첫 출근하는 날 노동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 파워공 노동자대표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