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돌풍 - 새로운 청년 정치인이 아닌 젊은 꼰대 엘리트주의자의 등장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의 돌풍이 거세다. 이준석은 5월 26~27일 여론조사 방식으로 치러진 예비경선에서 4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1위로 통과했다. 2030세대 남성을 중심으로 전 세대에서 고른 지지를 얻었다. 이준석은 6월 11일 본선을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도 50%에 육박할 정도로 지지세를 확대하며 대세를 굳히고 있다. 막판 변수가 없다면 통상 50대 이상, 3선 이상의 국회의원 경험을 가진 자들이 독식하다시피 해온 거대정당에서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 당대표가 탄생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준석이 몰고 온 돌풍에 대해 다양한 논평과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1985년생으로 36살인 이 정치인이 정치권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며 치켜세운다.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호 지지도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나이로만 본다면 청년에 해당하는 이준석이 사회, 경제, 정치에서 소외된 20~30대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SNS와 같이 청년세대에게 익숙한 방식을 활용한 뛰어난 소통 능력도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요인이다. 본인 스스로도 청년층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공정한 경쟁, 능력주의
이준석은 당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능력주의에 근거한 공정한 경쟁을 주장했다. 실력만 있으면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공정한 경쟁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준석은 2019년에 낸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젊은 세대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엉덩이 밑에 깔린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아젠다(의제)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며 그 대안으로 ‘공정사회’를 주장했다. 여기에 청년층이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권에서 내놓은 능력주의를 극복하겠다고 포장된 수많은 정책과 제도들이 결국 부모의 배경, 소위 말하는 ‘빽’이 작용하는 불공정한 결과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국 전 민정수석의 자녀입시비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했던 청년층이 돌아섰다. 겉으로는 공정한 기회를 외치던 자들이 알고 보니 적폐라 불리던 기존의 기득권과 별 차이가 없다는 배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준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은 흙수저 출신으로 오로지 실력만으로 입시경쟁에서 승리해 좋은 학교에 진학했고, 기득권 세력이 득세하는 정치권에 들어와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공정사회’를 만들 적임자라 자부한다. 취직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될 정도로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세대가 같은 처지에서 성공한 듯 보이는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준석은 본인이 자랑하는 것처럼 능력과 공정한 경쟁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본인이 노력한 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금융회사 고위직 출신에 국회의원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아버지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대학 1학년 때 국회의원실 인턴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하필 그 아버지의 친구(유승민)는 당시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여당대표인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어서 26살의 나이에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얻었다. 이 모든 성취가 온전히 공정한 경쟁에서 본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혐오조장, 폭탄 돌리기
본인의 출중한 능력에 자아도취한 이준석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성, 지역, 장애인에 대한 할당제는 특혜이자 역차별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준석의 주장은 이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투쟁해 온 모든 과정을 폄하하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배려를 특혜로 둔갑시키고, 나머지를 역차별 받는 피해자로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혐오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이준석의 핵심 지지층은 이대남(20대 남자)이다. 과거와 달리 성평등은 이미 충분히 이뤄졌음에도 여성할당제로 자신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불만과 분노에 편승한다. 이 자는 여성혐오, 성착취 범죄가 사실은 ‘개별 범죄를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규정하며 여성이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이미 심각한 젠더갈등 속에 뛰어들어 갈등을 더 증폭시키고 분열을 조장한다.
높은 실업률과 줄어드는 일자리, 최저임금에 묶여버린 낮은 임금, 평생을 일해도 불가능한 내집 마련, 노후대책은커녕 당장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등 청년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윤추구에 눈이 먼 자본주의사회 자체가 만들어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년세대 문제에 대해 손을 놓을 수도 없다.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를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사회를 향해 분노를 폭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정치인은 이 분노를 사회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하도록 만든다. 기존의 정치권은 이 분노를 정규직 노동자, 조직된 노동자를 향하도록 했다면 이준석은 다른 성을 향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만 새로울 뿐이다.
분열을 넘어 단결로
결국 이준석은 생물학적 나이로만 청년일 뿐, 기성 정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고 제도권 정치의 중심에 선다고 해서 청년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정치인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여성인지, 청년인지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 청년과 장년으로 분열하고 반목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자들에게만 이로울 뿐이다. 노동자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청년세대, 여성이 겪는 문제를 노동운동의 의제로 삼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신규취업을 늘리고 실업률을 낮추라고 요구하자. 생활임금을 요구해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쟁취하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로 남녀 간의 차별,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해소하자. 이것이 노동자만이 할 수 있는 청년세대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안이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