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470번째 살인, 다단계 하청구조가 사람을 죽인다
7월 13일(화) 새벽 5시 30분경 현대중공업 도장1공장 13번 셀(블라스팅 공장) 지붕의 철제슬레이트 교체 작업중 하청노동자 정**씨가 25m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올해 들어 세 번째고,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470번째 죽음이다.
2월 5일 정규직노동자가 대조립부 안전통로를 지나다 미끄러진 철판에 머리가 협착되어 사망했다. 5월 8일 단기업체 내 물량팀 소속 하청노동자가 원유운반선 탱크 약 20m상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리고 2개월 만에 또다시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안전벨트도 소용없었다
추락사한 재해자는 안전벨트를 생명줄에 체결했지만 생명줄이 끊어지면서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철제 슬레이트 지붕 밑에 판넬이 있기는 했으나 재해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뚫려버렸다. 노후된 슬레이트를 한 장씩 분리해야 함에도 한꺼번에 제거하고 새로운 슬레이트로 교체하다보니 언제나 추락의 위험이 도사렸다.
현대중공업지부에서 사고원인을 조사하면서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추락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교육일지, 일일작업지시서, 위험성 평가, 표준작업지도서 등을 요구했으나 어느 것 하나 제출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식의 위험작업이 의례 진행되었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에서 추락사고가 날 때마다 노동조합에서는 추락방호망 설치를 요구했었다. 설령 추락한다해도 마지막 목숨만은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안전시설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법위반이 아니라면서 제대로 설치한 적이 없다. 오히려, 동일한 작업을 한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에서 지부대의원들이 강력히 요구해 추락방호망이 설치된 사례가 있을 뿐이다.
또한, 25m가 넘는 초고소작업시에는 수평 생명줄 외에 수직생명줄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는 수직생명줄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수평생명줄도 처짐방지 조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생명줄 재질도 법적 기준자체가 없어 날카로운 철제 슬레이트 끝단부에 쓸려 파단될 수 있는 나일론 줄이었다.
다단계 하청구조가 만든 죽음의 그림자
이 날 추락해 사망한 하청노동자는 “현대중공업(원청)-선그린(주)(1차 하청)-성우산업개발(주)(2차 하청)-연주건설(물량팀장, 피해노동자)”3단계나 거치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맨 아래에 있었다. 하청의 하청, 그리고 또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건설현장과 조선소에는 너무나 흔한 일이다. 이런 다단계 하청구조는 이번만이 아니라 이미 너무나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5월 8일 추락사한 하청노동자는 현대중공업이 물량팀을 양성화하겠다며 작년부터 만들고 있는 단기프로젝트업체 소속 물량팀원이었다. 고인은 프로젝트업체 자체가 합법화된 물량팀인데 그 안에 또다시 물량팀이 존재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일을 했다. 안전교육도 입사시 한번 빼고는 받아본 적이 없었고,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다 떨어진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
이에 앞서 3월 2일에도 현대중공업이 세진중공업의 보온 샵을 임대해 제작하던 LPG 탱크의 보온작업 중 안전대걸이 훅이 이탈되면서 강00씨가 22m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 하청노동자도 “현대중공업(도급)-강림인슈(1차 하청)-씨엠인슈(2차 하청)-DH인슈(물량팀, 피해노동자)” 3단계의 도급을 받아 일하던 하청노동자였다.
이 세 건의 추락사고의 피해자는 모두 다단계 하청노동자였다. 단계가 내려갈수록 도급단가는 내려가고 이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빨리 공사를 마무리해야만 한다. 안전장비와 시설, 안전교육, 안전감시자 등 원청이 중대재해를 막겠다며 내놓은 수많은 대책들은 다단계 하청구조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최소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규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이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노동자의 죽음이 일상이다. 2016년 구조조정이 한참일 때 12명의 원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 정규직을 포함해 지금까지 23명이 일하다 퇴근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갈까. 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이 하청으로 넘어가고 이 하청은 다시 물량팀에게 일을 주는 구조에서 사고가 안 나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아무리 많은 안전대책을 마련한다해도 저임금과 쳐내는 물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구조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본공의 경우 사실상 최저임금수준이다. 물량팀으로 일해야만 몇 만원 더 받을 수 있다. 당장 먹고살기가 팍팍한 하청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를 이용하는 것이 원청인 현대중공업이다. 사람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노동강도에 비해 적은 임금을 주고도 많은 일을 시킬 수 있고 언제든 필요에 따라 해고와 고용이 가능한 다단계 하청구조를 활용해야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돈이 우선인 구조 때문에 해결될 수가 없다. 아마도 현대중공업에서는 또 다른 노동자가 일하다 퇴근하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날지 모른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안전한 공장을 만들기만 기다린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돌아가신 바로 그날 오후에 선행의장부 소속 정규직 노동자가 셀타장 E블록 5.3m에서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동일사고가 원하청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다는 사실만큼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정부도 노동부도 노동자의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목숨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단결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안전한 공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