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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noheflag 2021. 8. 12. 17:00

“저는 8월 16일(광복절 대체공휴일)에 쉬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입니다.”

 


‘국민들에게 사라진 빨간 날을 돌려드리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대체공휴일법이 통과되면서 8월 15일 광복절을 비롯한, 개천절, 한글날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5인 미만사업장은 근로기준법과의 충돌을 이유로 제외되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유급휴가를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차별과 부당대우를 당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문제가 대체공휴일 적용 제외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가장 절실하나 적용 제외된 노동자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이지만 이 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에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법임에도 오히려 이들은 법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수는 121만 개로 전체 사업장(184만 개)의 65.76%에 이른다. 노동자 수는 503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약16%를 차지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의점, 식당,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비롯하여 통신, 판매업, 도소매업, 건설업, 중소영세 사업장, 교육서비스업체 등이 대체로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현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을 적용받지 않아 주52시간보다 더 오래 일을 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연장, 야간, 휴일에 일해도 가산 수당을 받을 수 없고, 연차도 유급휴가도 없다. 빨간 날이라고 쉬지도 못하고, 여름휴가도, 명절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아파도, 경조사가 생겨도 어쩔 수 없이 일할 수밖에 없다. 휴업수당 의무도 없기 때문에 회사의 귀책사유로 휴업을 해도 무급으로 쉬어야 하고, 의무교육도, 안전규정도 제외되어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거나 산재위험도 더 높다.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말이 안되는 이유로 해고당해도 구제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 그러다보니 괴롭힘을 당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을 수밖에 없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자르면 잘릴 수밖에 없다. 상시적인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 1월에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전체 재해자의 33.3%(2만 2,694명), 산재 사망자의 35%(231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오는 데도 말이다(2020년 9월 기준). 
2년 전 통과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1년간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건 중 5인 미만 사업장 신고는 전체의 33.2%를 차지했다. ‘가족같은 분위기’라는 명분하에 막말을 듣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법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편법으로 이익을 보려는 자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건은 반대로 사업주들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된다. 그러다보니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이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방법도 다양하다. 서류상으로 업체를 여러 개로 쪼개 ‘사업장 분리’를 하거나, 본사가 가짜 하청업체를 여러 개 만들어 도급 형태로 일을 주고 각 사업장에는 개인사업자로 위장한 노동자들을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사업주가 직원들을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개인사업자)’로 만들어 4대 보험 대신, 사업소득세 3.3%를 원천징수하여 상시근로자수를 줄이는 꼼수를 쓰는 경우도 많다. 

피해는 노동자들의 몫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사업주의 경영사정’과 ‘지불능력’을 근거로 자본가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고, 경제가 악화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모른 체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법이 만들어놓은 예외지대를 활용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들이 악랄하고 교묘하게 확대되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몫이다.
실제로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실직과 소득감소, 산재 미처리 등의 피해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28.7%가 실직을 경험했는데 300인 이상 사업장(11.1%)보다 2.6배 높은 수치이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의 절반이 넘는 직원(50.6%)이 소득 감소를 경험했고, 실직자의 72.5%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근로기준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에 대한 예외 없는 근로기준법 적용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 할 것 없이 노동자라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을 권리, 적절하게 일하고 적절하게 쉴 수 있는 권리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같은 노동자인데 함께 누리지 못하는 권리는 누군가에게는 특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어 결국 모두의 권리를 위협하게 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자들을 차별해온 구조적 문제를 이제부터라도 바꾸어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을 편가르고 권리를 차별하는 현실에 맞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가 말이 아닌 단결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