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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빗나간 대안

noheflag 2021. 8. 12. 17:14

지난 6월 18일 금속노조와 완성차 3사 지부가 청와대 앞에서 ‘정년연장 입법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시기에 맞춰 최대 65세로 연장해 달라'는 내용이다. 법제정과 별도로 임단협에서도 현대차지부에서 ‘국민연금 수령 직전 해인 64세까지 회사에 재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정년을 만 64세로 연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 게시판에는 ‘정년연장 반대’ 청원도 올라와 있다. “정년연장은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청년실업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년연장 문제를 세대갈등 문제로 몰아간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정년연장을 제기하는 것은 노년생존권의 문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년연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정년연장 문제가 노년층만의 문제인가? 20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인가? 정년연장 반대 입장을 낸 MZ세대 현장직이라는 청원인도 60세 퇴직 이후부터 5년 동안 대책이 없다. 부모가 자본가이거나 건물주가 아닌 이상 생계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한 노인문제


한국은 고령 인구의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크다. 65세 노인의 한 달 생활비는 식료품비와 의료비, 통신비 등 최소 129만 3천 원은 필요한데, 은퇴를 앞둔 51세에서 60세 사이 국민연금 가입자 가운데 월 130만 원 이상 연금 수급이 가능한 경우는 8.41%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러니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는 OECD 평균(14.8%)의 약 3배 수준이다. 
세계에서 10번째로 잘사는 나라라고 언론에서 떠들지만 이는 자본가들의 얘기일뿐, 노동자들의 처지는 밑바닥이다. 정년연장 요구가 터져나온 이유는 노동자들의 노년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하나의 방편으로 제기된 것이다.

 

정년연장이 적절한 대안일까?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연령은 50살 언저리다. 실제 ‘현재 직장에 법정 정년까지 근무한 직원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노동자들도 39.4%에 불과했다. 
법으로 정해진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60세 법정 정년이 지켜지는 직장은 공무원과 공기업, 그리고 노조가 강한 대기업 등 일부에 그친다. 정년연장을 법제화한다고 다수 노동자들이 노년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년연장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전체 노동자의 노년생존권 보장이라는 취지에 걸맞지 않은 해법이다.

정년연장의 속내는?


노동자들이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이유는 생존권문제다.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의 생계를 기존 일자리에서 일함으로써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도 정년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다. 정부와 자본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저출산으로 노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8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게 되면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른다. 자본가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년연장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정년연장으로 고령층을 노동현장으로 다시 밀어넣어 복지비용은 줄이고 근로소득세 등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노인빈곤의 책임도 개인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된다. 
자본가들도 말로는 정년연장으로 노동경직성이 강화되고, 비용이 늘어난다며 앓는 소리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임금피크제를 확대하여 노동자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직무급제를 도입하여 저임금 일자리를 확대하려 한다.

정년연장은 세대갈등?


자본가언론은 정년연장 요구를 세대갈등으로 몰고가면서 노-노 갈등을 부추긴다. 그런데 정년연장을 하는 만큼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청년노동자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는가?  ‘고령층 고용이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경제학자들 내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다. 청년층과 고령층이 하는 일이 다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은퇴하는 연령은 72.3세다.(2018년 기준, OECD 1위) 65세 정년연장이 시행중이지 않음에도 고령층 상당수가 일하고 있다는 점은 정년연장 문제가 세대갈등의 쟁점이 아님을 보여준다.

좋은 일자리 줄이기


그런데 왜 정년연장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노년과 청년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만들어지면,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이 지켜지는 일부 대기업, 공기업의 상대적으로 나은 일자리마저 자본가들은 줄이려 애쓴다. 현대차의 경우 생산직이 매년 2,000명씩 5년간 1만명이 정년퇴직할 예정이다. 그런데 현대차 자본은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다. 일부 공정은 자동화하여 일자리를 줄이고 있고, 일부 공정은 공장밖에 외주화하여 하청, 비정규직의 질낮은 일자리로 대체한다. 이를 자본가들은 ‘비용절감, 생산성 향상’이라 부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갈 수 있게 된다. 자본가들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마음도 없으면서, 민주노총, 현대차 늙은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정년연장 요구한다며 비난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정규직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소한 정년퇴직자들이 일하던  기존 일자리는 지켜지기를 원한다.
 

책임을 자본가에게


노동자들이 정년연장을 내거는 것은 노년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년 이후의 생존권을 ‘정년연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년연장’을 내걸고 노동자들의 노후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결국 세대갈등, 일자리경쟁으로 왜곡된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저임금 노인일자리로 노동자들을 밀어넣으려 할 것이다. 
20대부터 60세까지 길게는 40년 넘게 노동자들은 뼈빠지게 노동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젊을 때부터 부려먹고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간다. 그런데 노후를 책임지기 싫어서 다시 고령노동으로 밀어넣으려 한다. ‘노인 빈곤’을 ‘고령 노동’으로 책임을 떠넘긴다. 책임을 자본가들이 지도록 해야한다. 65세까지 일하도록 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65세로 늦추고 있는 국민연금 지급시기를 오히려 다시 당기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연금지급액을 늘리도록 해야한다. 국민연금이 부족하다고? 그것은 자본가들의 곳간에서 꺼내 채워야한다.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쌓아올린 부를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년퇴직한 일자리는 청년노동자들이 채용되도록 하고, 질좋은 일자리를 유지, 확대할 것을 주장해야 한다. 정년연장으로 문제를 피해가지 말고, 노년생존권을 정부와 자본이 책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