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부동산 위기, 헝다 사태
9월 말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헝다가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위해 빌려 쓴 채무의 이자를 못 갚을 상황이 되면서 실제 파산이 예상됐다.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관심이 쏠렸다. 부동산에 쌓인 천문학적인 거품이 중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계 자본가들은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 상황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으려 하지만,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 한국 등 전세계로 거품붕괴가 확산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중국 부동산업체 100강 중 하나인 화양녠도 디폴트(채무불이행)을 공시했다. 헝다는 당장 자회사 지분을 팔아 이자는 갚았다고 하지만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원금 44조원을 메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헝다그룹
헝다그룹은 중국 3대 부동산 건설사 중 하나로, 2021년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 중 122위를(SK가 129위) 기록한 거대기업이다. 헝다의 쉬 회장은 한때 알리바바의 마윈, 텅쉰의 마화텅과 더불어 중국 3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동산투기, 거품경제의 주범으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헝다는 부동산개발로 덩치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전기차, 헬스케어, 스포츠 등에 진출하면서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추진했다. 결국 불어난 부채는 350조원에 이르렀다. 헝다는 부채를 기반으로 ‘모래성’을 쌓은 것이다. ‘부채도 자산’이라는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빠지려 하는 시기가 되면 모래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갑자기?
헝다의 위기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2019년부터 중국 정부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금융까지 위기가 확대될 것을 우려해 부동산 대출을 규제했다. 지난해 8월에는 부동산 기업에 △순부채율을 100% 이하로 낮추고 △유동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을 1배 이상으로 늘리고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율을 70% 이하까지 낮추는 등 ‘세 가지 레드라인’을 지시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의 규제조치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을 만큼 거품의 크기는 크고 위기의 깊이는 깊다.
빚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을 신청한 부동산 기업이 헝다만은 아니다. 중국 인민법원공고망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모두 308곳이다. 하루 평균 1개 꼴로 파산한 셈이다. 여기엔 중대형 부동산 기업도 일부 포함됐다.
왜 이런 일이?
부동산 부문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의 29%를 차지한다. 부동산 건설은 중국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 중 하나였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낮은 대출이자로 부동산 시장은 계속 확대해왔다. 미국,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중국에서도 똑같이 진행됐다. 부동산 수요가 증가하자 주택의 가격은 상승했다. 건설업의 호황으로 전세계 구리생산의 50% 이상을 중국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부동산회사만 9만개가 난립한 상황이다. 십수년간 중국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중국 부동산 회사들은 그간 호황 속에 큰 빚을 내서 각종 개발사업에 뛰어 들었고, 은행들은 아낌없이 대출을 해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업계 총 부채액은 18조4000억 위안(약 3387조원)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8%에 달한다. 여기에 권력자들이 중국 부동산개발회사와 유착하여 특혜를 남발했다. 뇌물로 아파트 100채를 받는 공무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중국은 토지소유가 국가에 있고, 매매할 수 없다. 다만 주택의 사용권은 판매할 수 있고 민간의 경우 70년간 사용권을 소유할 수 있다. 토지 개발과 사용권을 둘러싸고 권력자들과 부동산회사의 유착이 심각하다. 부동산회사는 아파트부지를 정부로부터 싸게 공급받아 아파트를 지어 개인들에게 비싸게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빈부격차
대도시 집값은 매년 10% 이상 올라 현재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는 세계에서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보다도 높다. 세계 집값 상위 10개 지역 중 5곳이 중국에 있는데 베이징, 선전, 상하이, 항저우, 홍콩이다. 베이징, 선전, 상하이 등 주요도시의 집값은 대부분 평당 3000만원을 넘어선다. 광둥성 선전시 아파트 가격은 주민 평균 연봉의 57배에 달하며, 베이징시 역시 55배에 이른다. 이는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던 일본 도쿄도의 1990년대 버블(평균 연봉의 18배)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노동자들은 대도시 집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비싼 월세를 내거나 도시외곽으로 밀려난다.
주거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다. 결혼적령기 중국 남성 수는 여성보다 약 3500만명이나 많은데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결혼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집을 사기 위해 한국에선 ‘영끌’을 하지만 중국은 6개의 지갑을 모은다. ‘6개의 지갑’이란 자녀의 부모 2명과 친가와 외가 조부모 각각 2명 등 총 6명의 재산을 합치는 것을 의미한다. 집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평범한 집안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이 6개의 지갑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에선 집을 구하기 위해 집안 전체의 재산을 끌어모아야 하지만, 반대쪽에선 사치가 넘쳐난다. 중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1조원 가량에 이르는데, 아파트 4개 단지만한 부지의 저택에 호수와 운동장까지 딸려 있다. 각 도시에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주택도 많은데 이들은 모두 부자들의 몫이다.
거품은 꺼지기 마련
중국 부동산은 현재 과잉공급 상태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9월 말 지방도시를 위주로 중국 전역에 빈집이 9000만 채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높아진 집값에 주요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의 3~4선 도시에 진출했고, 무계획적으로 아파트를 지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규제까지 겹쳐지면서 주택거래가 축소되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부동산회사들은 집이 안 팔려 유동성 문제가 생기자 원가보다 낮은 헐값에 주택을 팔아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베이징은 2017년 최고점을 기록한 뒤 3년 만에 주택 가격이 15% 떨어졌다. 칭다오와 톈진 등 주요 도시들은 2년 사이 20% 이상, 허베이성 랑팡시는 무려 46% 급락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주요 1선 도시의 집값은 아직도 높은 수준이지만 3~4선 도시의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최고가 대비 40% 가까이 하락해 분양가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폭락을 막기 위해 지방정부들은 신축 주택의 경우 등록된 가격의 85% 아래로는 팔 수 없도록 제한령을 내렸다. 부동산 시멘트사업으로 중국경제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중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기에 벌이는 고육지책이다.
전세계의 거대한 거품
부채는 자산인가? 회계장부 상 부채는 분명 자산이지만,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빚일 뿐이다. 부채를 재산인 양 여기다 보면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거품은 결국 막차를 탄 이들이 큰 피해를 입고 끝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거품경제 위에 서 있고, 이를 부추긴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2009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졌으나, 중국 경제는 9.4%나 성장했다. 그 뒤로도 2019년까지 중국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6%로 매우 높았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기업 부채가 대폭 증가했다. 2008년 GDP 대비 94%였던 기업의 부채비율이 2020년에는 161%로 높아졌다. 2020년 중국의 기업 부채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였고, 신흥국 기업 부채 중 71%나 차지했다.
중국만의 얘기인가? 미국의 경우에는 정부 부채가 크게 늘었다. 2020년 4차례에 걸쳐 GDP의 17%에 해당하는 3조6000억 달러를 지출했고, 올해 3월에도 1조9000억 달러에 이르는 경기 부양책을 추가로 집행했다. 이에 따라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도 2007년 61%에서 2020년에는 131%까지 급증했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2020년 GDP 대비 기업 부채비율이 110%로 1997년 외환위기 수준(107%)을 넘어섰고, 가계 부채는 GDP의 103%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2007년 14조5962억 달러였던 세계 부채가 2020년에는 30조4563억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부채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증가하는 현상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최대의 그리고 가장 최악의 거품경제를 직접 보고 있다.
세계 주요 언론사들과 투자회사들은 “중국의 헝다 사태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와 다르다. 찻잔 속의 태풍처럼 중국 안에서 끝날 것”이라고 한다. 당장 미국 금융위기처럼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경제위기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이라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빚을 통한 거품경제의 확산, 무계획적인 경제운영은 결국 활황의 정점에서 거대한 위기와 공황으로 치닫는다. 자본주의는 숙명처럼 이 과정을 반복한다. 1929년 세계대공황,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의 교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위기의식보다 이윤으로 거품 목욕을 하는 것이 전세계 부자들에겐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자본주의
‘사회주의’ 국가라 얘기하는 중국은 오히려 더 자본주의 원리에 따른다. 돈을 가진 이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는다. 중국의 빈부격차는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세계적이다. 상위 10%(1511만5천위안)의 평균 자산이 하위 20%(41만4천위안) 자산의 36.5배나 됐다. 특히 하위 40%가 전체 자산의 8.8%를 차지한 반면, 상위 20%는 63%를 점유하고 있다. 2020년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자회의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6억 명이 넘는 인구가 월 소득이 1000위안(약 17만원) 미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수가 가난한 반면 부자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다.
이윤 추구를 위해 무계획적으로 경제가 운영되는 사회, 국가가 경제를 통제한다고 말하지만, 특권층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 중국은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일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하게 운영되는 중국은 결국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반복하는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