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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강부약의 대동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noheflag 2021. 10. 21. 11:23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재명의 정치철학은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억강부약은 말 그대로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뜻이고, 대동세상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일컫는다.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고려대 교육대학원의 김상돈 교수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은 보편적 인류애와 더불어 모두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각자의 덕성과 재능이 온전히 실현되는 모두를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들, 강자들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부를 독식하며, 약자들은 가난에 찌들어 짓눌리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재명과 같은 정치인이 말하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이라는 말만 들어도 꽤 그럴듯해 보인다. 더군다나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그가 한 일들을 보면 뭔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라 보인다. 이재명이 성남시장직과 경기도지사직을 수행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했다는 정책들, 가령 청년들을 위한 지원 정책, 재난지원금, 성남의료원 건립, 무상급식과 무상교복, 기본대출 등등 (이재명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일들을 했다.) 통해서 많은 이들이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을 짐작해보게 된다. 뭔지 모르지만 그가 그린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양반이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서 무슨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부와 권력이 보장되는 판검사를 마다하고 인권변호사라는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그의 마음 속에 그린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이란 대체 어떤 세상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억강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에서는 공장이나 토지, 차(트럭)와 배, 대형마트나 백화점, 이러저러한 장비와 설비 등의 ‘생산수단, 운송수단, 유통수단’을 가지고 있는 자들, 곧 자본가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이들 부자들이 ‘강자’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강자들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작은 가게(유통수단), 작은 공장, 작은 토지 등을 가지고 자기 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자들이 대체적으로 ‘약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억강-강자를 억누른다 것’은 어떤 뜻일까? 위에서 열거한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빼앗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재명은 혁명을 꿈꾸는 자일 것이다.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이재명은 자본주의 사회를 뒤엎고 부자들이 가진 재산을 몰수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가는 아니다. 이재명은 자본주의 사회를 그대로 둔 채로 그 사회를 조금 더 쓸만한, 조금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은 모든 이들이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빼앗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빼앗는 것이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사회의 성격에 따라 개인의 이익을 향할 수도 있지만 사회를 발전시키고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은 욕망,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이기적인 욕망, 더 정확히 말하면 이윤 욕망을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으로 정당화한다. 자신이 토대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자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들이며, 그들은 이윤을 위해(이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을 억압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 당연하며,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재명이 강자들-부자들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부자들의 자연스런 ‘욕망’인 ‘이윤추구’를 제지할 생각이 없다면 그가 어떻게 부자들을 억누르겠다는 것일까? 
이재명은 ‘억강’을 “강자의 힘에 의한 일탈과 횡포, 기회독점, 불공정한 구조를 통한 부당이익을 억제하는 것”, “불법의 합법화, 불합리한 예외 인정, 특례 특혜를 ~ 그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재명은 자본가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과 법 앞에서는 평등”을 주장한다. 이를 요약해 해석하면 ‘불법 저지르지 말고, 담합 하지도 말고, 뇌물 먹이지도 말고, 불공정거래(계약) 등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재명은 부정과 부패가 없는 대단히 건전한 자본주의를 바라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것은 당연한데 공정한 방식으로 억눌러야 한다는 이 논리는 대단히 모순적이다. 그래서 이재명의 ‘억강’은 실패할 운명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재명이 단군이래로 가장 성공적인 개발이라고 자부해왔던 대장동 개발은 뿌리까지 썩어 있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재명은 그 자신이 책임질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가 뇌물을 먹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불공정계약을 몰랐다고 할지라도 그가 져야 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억강정책이 암초에 부딪혀 조각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발밑까지 썩어 들어온 사회에 대해 그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 따라서 전혀 손쓸 수도 없었다는 것은 그가 바라는 ‘억강’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이재명의 억강정책은 좀 다를까?


여러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꽤 있어 보인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래서 더 큰 권력을 가지게 되면 대장동 개발과 달리 성공할 수 있을까? 
그가 대통령이 돼서 억강정책을 편다는 것은 성남시장이나 경기도지사로서 억강정책을 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총책임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강자들의 ‘자연스런’ 이윤추구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미 뿌리까지 썩어 들어간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부당하고 불공정한 수단들을 총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이윤추구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이는 반드시 대통령 이재명의 억강정책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때 대통령 이재명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뇌물과 특혜로 범벅된 대장동 개발에서처럼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을 지냐”라는 식으로 변명하면 될까? 대장동 개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껍데기만 남은 자신의 신념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부약


자본주의 사회의 썩은 뿌리를 통째로 돌려내지 않는 한 이재명의 ‘억강’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면 ‘부약’은 어떨까? 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보여준 ‘부약’정책들은 확실히 남다른 면이 없지 않다. 홍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에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지할 때, 이재명은 역으로 성남의료원을 건립해 공공의료를 확충하려 했다. 청년들의 면접수당을 지원하고, 청년 노동자 통장 지원을 확대하고, 아동 돌봄 정책도 확대하고, 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재난지원금도 더 많이 지급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저리로 대출도 해주는 등,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일을 해냈다. 이런 치적은 확실히 이재명과 다른 정치인을 구별시켜 준다. 이것은 이재명의 치적이 어마어마해서라기보다는 이재명이 사리사욕을 앞세우지 않고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라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정책을 펴나갔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정치인들은 어느 누구도 이 정도 추진력을 가지고 결단력 있게 일을 해내지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강자들과 결탁해서 사리사욕만을 추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이 달리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부약’은 가난을 없앨 수 있을까? ‘대동세상-함께 잘 사는 세상’이라면 거기에는 가난한 이들이 없어져야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부약’정책들이 가난을 몰아내는 정책인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재명의 부약정책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계기나 힘을 얻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그가 실행한 부약정책은 가난을 몰아내는 정책이라기보다는 가난의 고통을 조금 덜어주는 정책이라고 해야 옳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부약’의 핵심이다. 

대통령 이재명의 부약정책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그의 '부약'의 의미가 달라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과 부자들이 나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재명이 성남시장을 하면서,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보여주었던 부약정책들이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실행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철의 법칙인 빈익빈부익부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강력한 빈곤퇴치 수단이 되어줄까?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실행하겠다는 세 가지 부약정책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어서 보여줄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이 그것이다. 

먼저 이재명의 기본소득 정책을 살펴보면, 2023년에는 만 19~29세 청년에게 125만원을, 그 외 국민에게 연 25만원을 지급하고, 2024년 이후에는 청년에게 연 200만원, 나머지 국민에게 연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돼 있다. 한 해 5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재명은 이 재원을 토지보유세와 탄소세를 부과하고, 세금환급을 줄여서 마련하겠다고 한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이재명은 기본주택 100만호를 보급하겠다고 한다. 기본주택은 공공임대주택으로서 건설원가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이다. 주택공간도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이 평균 40㎡이하인 것을 109㎡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8% 수준인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을 10%까지 높이겠다고 한다. 이재명의 기본주택 정책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조차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이재명은 연 30조원 규모의 주택도시기금과 입주민 보증금, 사업주체들의 투자금, 공사채 발행 등을 제시하면서 “현금으로 기본주택을 짓는게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이재명은 재원마련을 위해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고도 한다. 기본주택을 위해서 정부의 빚을 늘리고 부자들에게 부담을 더 지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은 국민 누구나 500만∼1000만원 한도의 기본저축제도를 도입해 예금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설정하게 해주고, 이를 1000만원 규모의 기본대출 재원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것이 이재명의 기본대출이다. 이미 가계대출이 17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이재명의 기본대출 정책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에 대해 이재명은 기업들이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고도 대부분 갚지 않았다고 반비판한다. 이재명의 지적은 반박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계부채 비율이 대단히 높은 상태에서 기본대출이 금융위험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기본시리즈가 실현될 수 있는가 여부는 역시 재원에 달려 있다. 이재명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부자들은 벌써부터 “돈은 어디서 날 거냐?”, “그건 유토피아다”, “비현실적이다”라고 비난하면서 이재명의 기본시리즈에 반대하고 있다. 
부자들이 반대는 늘상 있어 왔던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도 없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 자신의 기본시리즈 정책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반대를 뚫고서 말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경제가 쇠퇴하고 있고, 이윤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려는 이재명의 시도에 자본가들은 더욱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여기서 이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해야 하는 대통령 이재명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기본 정책들을 슬금슬금 후퇴시킬 것인가?

확실히 이재명의 기본시리즈 정책들은 ‘부약’이라는 그의 신념을 실현시키는 수단들이다. 그러나 그것의 실현이 결코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자본주의 경제불황의 압력, 자본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어찌해서 그 정책들을 어느 정도 실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난한 이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할 수도 없다. 그냥 그 고통을 조금 덜어줄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그 정도라도 어디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정도로는 결코 ‘대동세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동세상?


이재명은 ‘대동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재명이 바라는 대동세상의 운영원리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의 이준석과 윤석열도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이런 사회운영 원리를 이재명과 공유한다. 사실 많은 건전한 자본주의자들이 이런 사회운영 원리를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는 균등하지 않고, 경쟁도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고 부자들이 경쟁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부자들이 부를 대물림하고 반대로 가난한 이들은 가난을 대물림한다.  
그런데 이재명이 바라는 대로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면 가난을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 경쟁의 규칙을 공정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이재명이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그의 대동세상에서도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은 가난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대동세상에서도 여전히 부자들은 부자로 남을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가난뱅이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부자들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을 지배할 것이다. 이재명 덕분에 가난의 고통을 조금 덜어가면서 말이다. 이재명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재명이라는 환상


지금 이재명이 누리는 지지는 이런 환상에 기초해 있다. 이런 환상이 깨지는 것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소하고 하찮은 개혁조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 변화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이재명의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