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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산재, 반복되는 죽음 -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산재사망사고에 부쳐

noheflag 2021. 10. 21. 11:36

지난 9월 28일, 세탁기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감전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노동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으로 8년 동안 수리를 해온 경력 있는 노동자다. 하지만 베테랑 노동자도 산재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가?


가전제품이 대형화되면서 한 명의 노동자가 작업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많아졌다. 좁은 베란다에 손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공간을 이용해 2층으로 쌓아놓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려서 수리를 진행하다 보면 감전, 끼임, 추락 등 위험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번 사고도 폭이 약 1.5미터인 테라스 구석에 설치된 세탁기를 수리하기 위해 세탁기 뒤쪽 콘센트를 빼야 했고, 콘센트를 빼기 위해 세탁기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세탁기 뒤 급수 밸브가 파손돼 물이 튀면서 감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가전제품의 사용이 늘고, 이상기후로 인해 에어컨 사용량이 늘면서 가전제품의 수리 및 점검이 많아져 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가전제품의 기능이 많아지고 대형화된 것 역시 수리시간이 더 늘어나는 조건이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확진자 방문으로 인한 센터 휴업, 백신접종 휴가로 인한 인원 공백 등으로 노동자들의 업무 피로도는 더욱 확대되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강도 강화는 노동자들을 산재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실적압박이 만든 참극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원충원, 2인1조 근무, 안전장비 제공, 안전작업 표준마련 등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나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은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해내도록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왔다.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은 노동자들이 하루 몇 건 처리했는지, 한 번의 방문으로 수리를 완료했는지를 계속 확인하고 실적을 공개하고 압박해왔다. 하루 10건 이상을 처리하면 돈을 주고, 배정된 업무량을 쳐내지 못하면 매일 문자로 독촉하고 사유서를 작성토록 했다. 실적에 따라 등급표를 매기고 이는 호봉과 진급에 영향을 미쳤다. 임금, 승진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노동자들은 업무시간 이후에도 재방문을 해서 수리를 완료해야 했고 업무량을 채우기 위해 위험해도 무리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던 것이다. 
사고가 난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4월부터 폭증된 물량으로 수리해야 할 일이 밀려 있었다. 사고 당일에도 이 노동자는 배정받은 8건의 업무 중 오전에 2건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당일 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은 이 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동료들은 증언한다.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은 시간대별로 노동자들의 처리 현황을 공개하여 실적을 압박해왔다 . 또한 처리력 패스티벌 같은 이벤트를 열어 목표건수 처리시 팀별이나 개인으로 시상을 하는 등 노동강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정규직이 되었지만 달라지지 않는 현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실적에 따른 임금격차, 공구와 차량비용 등의 개인 전가, 고객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압박, 위험한 작업환경 등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파괴 공작, 업체폐업, 열사투쟁 등 5년간의 힘겨운 싸움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임금도 건당 수수료제에서 월급제로 전환되었고, 차량 및 공구와 유류비 지급 등 조건도 나아졌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사측은 노동자들을 실적으로 경쟁시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실적을 매일 공개하며 개인을 압박할 뿐만 아니라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실적에 따라 승급 및 호봉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경쟁 시스템은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갈등, 개인 간의 갈등을 더욱 확대, 강화하고 있다. 이는 안전문제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사고처럼 실적에 대한 압박이 안전하지 않는 조건에서도 업무를 처리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땜질식 처방


또한 안전문제에 대한 사측의 땜질식 처방 역시 문제를 키웠다. 에어컨 실외기 낙하 사망사고가 이슈화가 되자 에어컨 수리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2인1조 작업을 의무화하는 등 안전강화조치를 취했으나 에어컨 실외기 수리에 국한된 조치였을 뿐 전반적인 안전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노후주택에서부터 공장, 야외시설 등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제품을 다루지만 안전작업표준은 존재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절연장갑과 절연안전화 등 기초적인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이번과 같은 사고가 언제든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산재, 산재, 산재...


하루라도 부고를 듣지 않은 날이 있을까 싶을 만큼 산재사망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조선소나 건설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외벽을 청소하러 갔던 20대 노동자가, 요트에 붙은 따개비를 따야했던 고3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11일 용혜인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노동재해로 사망한 수가 1만 195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7.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노동후진국에서 웬 ILO사무총장?


최근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여성 최초의 ILO 사무총장’이니 ‘노동선진국의 위상을 더 확고히 할 기회’라느니 호들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선진국’은커녕 국제적인 ‘노동후진국’이다. 알려진 것처럼 OECD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의 산재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ILO가 요구하는 핵심협약의 비준을 30년이나 하지 못하다 올해 4월 압력에 밀려 허점투성인 채로 겨우 통과시키기도 했다. 헌법에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노조할 권리가 제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집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수배가 내려지고 구속까지 되는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최근 국제노총(ITUC)이 발표한 2021년 글로벌 노동권지수에서 한국은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부여받았다. 심지어 조사발표가 시작된 후 한 번도 최하위 등급을 벗어난 적이 없다. 당연한 결과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경화 전장관이 용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혹시라도 강경화가  ILO 사무총장이 되면 상황이 나아질까? 아니다. 오히려 반노동자적인 정부에 친노동이라는 가면을 덧씌울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을 노동선진국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하여


이 사회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부를 소유한 자본가들과 자본가를 비호하는 정부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생각이 없다. 누가 다치고 죽든 간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노동자 죽음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 한다. 이슈가 사그라들고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린다. 그것이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당장 내일의 나의 생존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 동료의 생명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실천,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만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