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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해고생활, 이제는 끝내야 한다 ㅡ 때린 놈이 성내는 게 정상인가?

noheflag 2021. 11. 18. 23:15

2005년 - 16년 해고생활의 시작


2005년 4월에 노동부는 한국지엠(당시 GM대우)에 일하던 843명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한국지엠은 현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다. 2005년 4월 16일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많은 이들이 가입했고, 나도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상황이라 처음엔 노조가입에 망설였지만 함께 일하던 대의원 형님이 노조가입해서 함께하자고 설득해서 함께 하자고 나섰다. 그러나 회사는 업체를 폐업하고 계약직조합원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탄압했다. 일자리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계속 일하겠다고 했는데도 회사는 해고했다. 억울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회사가 힘이 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불합리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16년 해고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의 탄압으로 600명에 달하던 조합원이 2명으로 줄었다. 창원에 혼자남아 7년을 버텼다. 불법파견 범죄자 닉 라일리 엄벌하라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공장 앞에서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선전전을 했다. 그러던 중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닉 라일리 전 사장에 대해 700만원 벌금을 확정했다. 불법파견은 범죄라고 비정규직 정규직전환하라고 요구한지 8년만에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우리의 주장이 맞았고, 회사가 범죄자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그러나 나는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3년 – 다시 노조를 재건하고 투쟁이 시작되다


다시 노조를 현장에서 재건하려 뛰어다녔다. 5명이 모여 현장에서 노조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5명의 조합원이 버티고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조합원이 13명, 2015년에는 50명으로 늘었다. 2016년에는 150명으로 늘어났다. 어렵지만 버티고 싸우면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노조를 재건하고 유지, 확대하느라 내 개인의 복직은 뒤로 미뤄두었다.  

회사는 매년 조합원이 많은 업체를 폐업하여 노조를 깨려고 했지만, 조합원들이 똘똘뭉쳐 막아냈다. 2016년에는 비정규직들이 생산을 멈추는 투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2017년 말 회사는 조합원이 많은 공정을 인소싱하며 탄압했고 50여명이 해고되었다. 정규직노조 지회장이 금속노조 결정도 어기면서 이를 합의해주었다.  

▲ 2018년 4월 17일, 한국지엠 부평, 군산, 창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해고자 복직, 총고용 보장, 불법파견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노숙농성 돌입
▲ 2018년 7월 9일부터 한국지엠 본관 사장실에서 해고자 복직과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내걸고 진짜 사장 면담 투쟁에 돌입한 한국지엠 비정규직 3지회 조합원들


2018년 정부청사 농성, 사장실 농성, 노동부 창원지청 농성을 했다. 투쟁으로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일부 조합원들이 복직되었다. 이 때도 개인의 복직보다 조합원들의 복직이 우선이었다. 
2020년 1월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대부분이 해고되었고, 조합원들도 대부분 해고되었다. 한국지엠 최종 부사장은 창원, 부평공장 구분없이 일자리가 발생하면 조합원들을 우선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지엠지부 김성갑 지부장이 이를 책임질 것을 확약하며 눈물을 머금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복직의 길이 열리다


2021년 11월 1일자로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퇴직자가 발생하여 일자리가 생겼다. 복직의 대상과 순서는 회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결정해왔고, 자체 기준에 따라 이번엔 내가 복직하기로 되었다. 16년만에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무 문제 없이 복직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한국지엠 원청이 복직을 가로막고 나왔다. 복직을 가로막는 이유가 황당했다. ‘불법파견 소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직이 안된다고 어거지를 쓰고 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2년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가능했다. 2년이 안된 계약직은 소송하기 어려웠다.)

2005년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을 회사가 따랐으면 해고되지도, 16년을 공장밖에서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또다시 복직을 막고 있다. 때린 놈이 맞은 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따지는 황당한 상황이다.

투쟁없이 복직없다!

▲ 11/1 BCM 라인 선전전


자본은 항상 그렇다. 자신들이 불리하면 약속도 쉽게 깬다. 복직을 위해선 투쟁의 힘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내 개인의 복직을 건 첫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다. 11/1 BCM 라인을 찾아가 OJT를 받았다. 라인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출퇴근 선전전, 현장순회도 진행했다. 창원과 부평의 조합원들이 내 일처럼 함께 해주었다. 혼자라면 할 수 없었던 투쟁들을 함께라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본관 앞에서 발언을 하는데, 동지들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지엠 수석부사장의 방한 대응 투쟁 


현장에서 복직 투쟁을 알리는 와중에 스티븐 키퍼 지엠 수석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언론에서는 한국지엠에 전기차 생산계획을 가져올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자 복직과 불법파견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홍보관 캐노피 옥상에 농성을 들어갔다. 키퍼 부사장 방문기간 동안 지엠에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홍보관 위 아래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키퍼가 부평공장을 방문하는 날 키퍼를 쫓아가며 항의투쟁을 진행했다. 키퍼가 탄 차 밑으로 들어가고 피켓을 들이대며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회사에서 부평 비정규직지회에 50M 접근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고, 기만적이게도 법원은 이를 하루만에 처리해주었다. 황당한 상황이었다. 금요일 키퍼가 부평공장으로 다시 돌아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급히 확인하고, 이번에는 창원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나섰다. 가처분 통보문을 들이대며 집회와 선전전을 하지 말라며 협박하는 사측 노무팀에게 “우리는 부평이 아니라 창원 노동자들이다. 가처분은 부평에게 한 것 아니냐”고 하자 당황하며 뒤돌아서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워보였다. 자본은 완벽하지도 깨지 못할 벽도 아니다. 빈틈을 찾고, 그 벽에 균열을 만든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지엠은 기자간담회에서 입장을 밝혔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전기차를 한국에 25년까지 10종을 출시하는데, 전량 수입하겠단다. 신차도 투입하는데 수입이다. 한국지엠을 자동차 생산공장이 아니라 수입차 판매업체로 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땀흘려 일궈놓은 일터를 지엠이 계속 축소시키고 망치고 있다. 키퍼 부사장의 방문은 지엠에 대한 호소, 읍소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현장으로 돌아간다!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16년을 싸워왔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사실도 있다. 투쟁없이 쟁취없다는 것이다. 사측은 내가 복직하면 불법파견 리스크가 커져서 복직이 안된다는 핑계를 댄다. 금속노조 해고자대회에서 밝혔다. “복직을 시켜서 발생하는 리스크와 복직을 시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리스크 뭐가 더 큰지 보여주겠다!” 사측이 복직 약속을 이행하도록 투쟁할 것이다.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