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공동후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진보당·녹색당정의당’ 등 5개 당이 민주노총과 함께 ‘불평등체제 타파를 위한 대선 공동대응기구(이하 대선공동기구)’를 구성하고, 12월 말까지 대선후보단일화를 위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선공동기구에서 12월 말까지 후보 단일화 방식을 결정하게 되면, 1월 내에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경선방식을 두고 서로 간 약간의 이견이 존재한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선거인단과 여론조사결과’를 5:5로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우고 있는 ‘민중경선 운동본부’는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당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경선 방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대선공동기구가 후보단일화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다. 6개 세력들이 후보단일화 방식에 합의하지 못해 끝내 공동후보를 선출하지 못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 그럴 여지를 조금은 키운다.
대선공동기구에 참여한 6개 세력들이 내거는 강령적 목표가 다른 것도 넘어서야 할 벽이다. 부문주의적 운동세력인 녹색당. 자본주의 내의 개혁을 추구하는 정의당, 진보당, 민중경선선거본부. 그리고 사회변혁과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노동당과 사회변혁노동자당(이후 변혁당). 비슷한 성향의 세력들 사이에도 정치적 차이가 존재한다. 지지기반 역시 겹치기도 하지만, 약간씩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자본가들)의 정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과는 독립적인 노동자민중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공통의 대의가 6개 세력을 공동기구로 엮고 있기 때문에 각 당의 종파적 이해를 넘어서 이들이 단결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경선에 참여할 후보로는 민중경선 운동본부의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진보당의 김재연, 정의당의 심상정, 그리고 이미 통합하기로 한 노동당과 변혁당에서 선출한 후보(변혁당의 이백윤, 노동당의 이갑용박성철 중 1인) 등 4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은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크고 작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 세력들이 후보단일화에 성공해서 민주노동당 이후로 사그러들었던 독립적인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되길 기대해 본다.
부르주아 양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전술?
그동안 노동자민중들이 ‘자신들의 당’이라고 느끼는 노동자민중의 당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많은 대중들이 부르주아 정당, 특히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빠져들곤 했다. 대중들의 이런 상황 때문에 부르주아 양당과는 독립적인 정당건설을 목표로 하는 운동세력조차도 민주당에 의지하는 선거전술에 매몰되곤 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정권교체를 위해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학생운동조직까지 생겨났다. 이것은 민주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거의 미친 짓처럼 보이는 이런 ‘용기있는 결단?’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전망을 상실한 운동’이 부르주아 정치에 포섭되는 일, 극우로 전도되는 일 역시 때때로 일어난다.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 노동자민중의 정당운동을 했던 이들 중에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으로 전향한 자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유시민, 임종석, 조국, 김문수 등등. 진보적혁명적 운동세력이 ‘개혁’에 대한, 그리고 ‘변혁과 혁명’에 대한 ‘전망을 상실’해서 그 반대편(부르주아 양당-민주당이나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정권교체를 위해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사회운동세력이나 노동자운동 세력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진보나 변혁, 혁명을 표방하는 세력들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이 점에서 확실히 ‘전국학생행진(이후 행진)’의 전도는 뜻밖이다.
‘행진’의 우경화는 그들이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상실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양당 체제의 틀 내에서는 민주당이 아니면 국민의힘이라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운동의 후광을 입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권력을 다시 이명박근혜의 후예들에게 내맡기면 더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은 확실히 어처구니없는 현실인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상실해서 부르주아 양당의 틀에 붙들린 자들의 필연적인 선택인 셈이다.
‘행진’의 경우는 확실히 뜻밖이지만, 노동자민중 운동에서 민주당과 공조하거나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전술을 구사했던 세력들은 늘 있어 왔다. 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은 민주당과 협력해서 의회진출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민주당의 2중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일부 사회주의 혁명세력에서도 노동자 대중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총선이나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전술적 견해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의 연장선에서 이재명이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 후보라며 이재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다시 천명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전 위원장들 중의 몇 명 역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각양각색의 민주당에 의지하는 선거 ‘전술’에도 ‘행진’이 국민의힘의 윤석열을 지지하자고 했던 것과 같은 ‘상황 논리’가 작동한다.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힘이 대단히 미약하고, 따라서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실천에서 국민의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부르주아 정당인 민주당에 의지하는 전술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에게 ‘민주당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타협?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는 독자적인 노동자민중의 정치정당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운동하는 정치세력이 부르주아 정당을 지지하는 전술을 쓰는 것은 극복하기 대단히 어려운 모순이다. 오히려 그런 전술은 노동자민중들을 부르주아 양당 체제의 한계 속에 가둘 위험이 크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부르주아 정당에 의지하지 않는 방식(전술)으로, 부르주아 정당과는 분명히 독립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정당건설)를 목표로 하는 운동을 밀어가는 것만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는다.
일부 세력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과정에서 ‘불가피한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나 그들과의 ‘공조’를 합리화한다. 우리도 ‘불가피한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서 싸운다. 그렇지만 ‘종종’ ‘힘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타협’해야 하는 경우에 직면한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타협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렇게 타협할 때 자본가들과 정부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거나 ‘협력적으로’ ‘공조’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불가피한’ 이유는 절대로 지지해서는 안 되는’ ‘강도(자본가)’들과의 타협이기 때문인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비록 힘이 모자라서 당장에는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본가정부와 노동자들의 이해가 ‘적대적’이라는 것을 투쟁의 경험에서 배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민주당이나 국밈의힘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더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 정부가 국민의힘 정부에 비해 훨씬 더 기만적인 술수를 잘 쓴다는 것도 잘 안다. 문재인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해놓고 다시 빼앗아 가는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잘 안다. 문재인이 주52시간제를 도입하겠다고,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탄력근로제 등 온갖 예외조항으로 노동시간을 도리어 늘리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만을 삭감하려 했던 것을 노동자들은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들의 염원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속을 줄 알면서도 여전히 개혁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서 다수의 노동자민중들이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계속해서 민주당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지하자고 말하는 대신에 작더라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경험을 축적하고 결실을 내는 것이다. 대선공동기구의 단일후보는 양대 부르주아 정당 후보들에 실망감과 환멸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민중들에게 다른 ‘현실상황세계’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부여해줄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작지만 소중한 이런 경험을 통해서 부르주아 양당지배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단일후보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곧 노동자민중이 자신들의 당이라고 느끼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정당조직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경험을 통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더 큰 전망을 향해 전진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비록 한계 투성이고,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이는 대선공동기구의 노동자민중의 대선후보 단일화 시도는 부르주아 정당에 의지하는 전술을 극복할 기회를 갖게 할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투쟁을 ‘고무확대’하는 것
그러나 선거에서의 후보전술만으로 다수 대중들이 곧바로 독립적인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선거에서 노동자민중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힘을 느끼기 어렵다. 후보전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자신들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그것이 정당으로 조직되는 근본적인 힘은 선거공간에서의 투표행위보다는 집단적 투쟁의 경험에서 나온다. 민주노동당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 속에서 솟아났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민중의 독자후보 전술은 노동자민중의 대중투쟁을 고무하고 확대하는 것에 복무해야 한다.
대중투쟁이 없는 선거판에서야 당연히 부르주아 정당이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수 노동자들은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론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면 그런 노동자들의 현실에 공감해야 한다며, 부르주아 정당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대중투쟁의 고무되어야 하고 확대되어야 한다. 역으로 노동자민중의 공동후보는 대중투쟁을 고무하고 확대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전술이 성공할 수 있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망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길
우리는 6개 세력이 대선공동대응을 넘어서 하나의 정당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데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한상균 선본 등은 자본주의 사회를 그대로 둔 채로 그것을 개혁하는 것, 그것을 수선해 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주의 경제가 불황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수선해 쓰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재명 수준의 개혁정책조차 자본가들의 압력을 받아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장기화된 불황에 놓인 자본주의 사회가 개혁의 가능성을 다 소진해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노동당과 변혁당은 사회변혁과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대단히 모호하다. 우리는 그들의 모호한 사회주의로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을 생존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만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목표를 분명히 하는 혁명적노동자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운동이, 지금 국면에서는 노동자민중의 공동의 대선후보전술이 성공하고 확대되기를 바란다. 노동자민중들에게 그런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부여해줄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계급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혁명정당건설의 도약대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운동을 지지할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