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재도약, 조선업 일자리 상생협약」은 자본가 퍼주기, 미끼상품 나열
새로울 것 없었던 ‘일자리 상생협약’
지난 10일 현대중공업 본관에서 안경덕 고용노동부장관,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정천석 울산동구청장, 한영석 현대중공업대표이사, 양충생(현대중)·전영길(미포조선) 사내협력사연합회장 6명이 참석해 「K-조선 재도약, 조선업 일자리 상생협약」 체결식을 가졌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 업황 회복의 기회를 살려 그간 감소한 조선업 일자리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정부, 자치단체,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의 중소기업들과 근로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고용노동부의 발표와는 다르게 실효성 있는 지원책은 없었다. 고용노동부와 지자체는 2016년 이후 혹독한 조선업 구조조정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연장하거나 기존 청년일자리 대책을 협약에 끼워 넣으며 구색을 맞추려 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거의 비용부담을 하지 않으면서 ‘정규직 채용’과 같은 미끼만 내놨다.
정규직 채용? 희망고문 족쇄!
이른바 ‘상생협약’식 이후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7년만에 정규직 채용 재개’라는 문구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줬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2015년 이후 중단됐던 정규직 채용과 협력업체 노동자 정규직 채용을 다시 시작한다는 기사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이전 기술연수원을 수료하고 협력사로 입사한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정 기간 근속을 유지하면 정규직 채용 시 지원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채용규모가 워낙 작고 협력사 대표의 추천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정규직 지원 기회는 ‘희망고문’이라는 족쇄가 되었다. 이번 정규직 채용 재개도 같은 방식이라면 정규직의 부푼 꿈을 품고 입사한 젊은 하청노동자들은 원청과 업체 대표의 눈치를 보느라 노예처럼 착취당하다 퇴사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끼워 넣은 대책과 실효성 없는 지원책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의 지원책도 거의 대부분 이미 시행되거나 준비하고 있던 정책이었다. 고용노동부와 울산시가 조선업 내일채움공제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청년 내일채움공제와 유사한 제도로 2년간 근속을 유지해야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일자리로의 이직을 막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연수생 훈련장려금은 이미 2019년 현대중공업이 기술연수생 모집을 2년 만에 재개하면서 내놨던 지원책이다. 청년 주거지원은 울산시가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종합 대책] 중 하나다. 조선업 신규취업자 이주정착비와 조선업 고용유지장려금은 동구청이 「울산광역시 동구 일자리 창출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내년부터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용유지장려금은 울산시가 마련한 조선업 경영안정자금(조선업 별도 경영안정자금, 조선업 특례보증)과 마찬가지로 4대보험이 체납된 경우 신청이 불가한 정책자금이다.
조선업 인력수급 시스템 강화도 협약에 들어가 있는데 이미 실효성 없음이 확인됐다. 9월과 10월에 있었던 채용박람회에서 실제 취업한 하청노동자는 3명과 10여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대부분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상태다.
4대 보험 체납 대책이 분할 납부라!
조선업은 2016년부터 정부차원에서 4대보험 납부유예와 체납처분유예 제도를 적용받으면서 4대 보험 체납액이 해결 불가능한 수준까지 누적됐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분할 납부를 제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관장하는 고용산재보험 체납은 3년 동안 분할 납부하고,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하는 국민연금건강보험 체납은 2년 동안 분할 납부 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적으로 사업주의 편의를 봐주는 대책인데도 4대 보험 체납액이 상당한 하청업체들은 이조차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미 현대중공업 협력사들의 4대 보험 체납액은 10월말 기준 250개 사업장 460억 원이고, 현대미포조선은 50개 사업장 40억 원이다. 이 중 190개 사업장은 이미 폐업했고, 체납액은 150억 원에 달한다. 사업체별로 정확한 체납액은 알 수 없으나 이정도 숫자와 누적액이면 거의 모든 하청업체들이 4대 보험을 체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 어이없는 것은 하청노동자들의 급여에서는 매달 4대보험이 공제되고 있음에도 보험료가 체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청업체들은 아무리 많은 4대 보험료를 체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설령, 체납처분유예가 종료되더라도 폐업하면 그만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신규인력 모집을 위한 미끼
현대중공업은 내년 5천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는 유인책만 내놨다. 일자리 상생협약 중 현대중공업은 적정 수준의 단가 인상과 하청노동자 임금인상, 복지 개선 등을 제시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4대 보험요율 인상 등을 감안한 단가’ 인상을 하겠다는데 구체적인 인상폭은 제시하지 않았다.
하청노동자 임금인상은 구체적인 내용 없고, 복지 개선은 작년에 설립된 공동근로복지기금(2020년 현대중공업 30억원, 116개 사내 생산부문 협력사 1억1000만원, 정부지원 21억1000만원으로 총 52억2000만원의 공동근로복지기금 설립)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업체폐업과 평균근속이 짧은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에 비춰보면 자녀학자금, 주택마련대출의 혜택을 볼 수 있는 하청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물량팀노동자나 프로젝트협력사(1년 미만 단기업체)의 경우는 지금도 모든 후생복지가 없기 때문에 ‘복지 개선’은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현대중공업이 지금까지 부담한 비용은 30억 원이 전부고, 앞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도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을 최대한 활용해 최소 수준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실패가 예정된 조선업 인력 확보 정책
일시적인 지원금이나 극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복지 혜택으로 필요 인력을 유인하겠다는 발상은 실패할 것이 뻔하다. 설령 새로운 인력이 조선업으로 유입된다해도 다단계하청 고용구조에서 비롯되는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위험한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빠져나갈 것이 뻔하다.
조선업에서 일하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건설업이나 플랜트로 빠져나간 하청노동자들은 다시는 조선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비록 고용은 불안하나 조선업보다 짧은 노동시간, 높은 임금, 낮은 노동강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정규등록업체는 물론 최근 증가하고 있는 프로젝트협력사(단기업체)도 적자를 견디다 못해 수시로 폐업하고 있다. 10월에는 기린테크, 11월에는 송림산업이 임금체불과 함께 폐업했고, 12월에는 프로젝트협력사인 선호기업의 대표가 임금 전액을 체불하고 잠적했다.
정부와 지자체, 현대중공업이 시끌벅적하게 ‘조선업 일자리 상생협약’을 체결했다며 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동안 빼앗기면서도 갈 곳이 없거나 일자리를 잃을까봐 견디기만 했던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은 물량증가와 함께 임금인상, 복지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을 제외하고 아직은 구체적인 조직화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가들이 대폭적인 양보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폭발할 것이 뻔하다. 그때가 되면 조선업 자본가들은 ‘혹독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