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3주기를 추모하며『김용균이라는 빛』을 읽고
어김없이 12월은 돌아온다. 2018년 12월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했던 김용균의 기일도 돌아온다. 추모의 마음으로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김용균이라는 빛』을 펼쳐보았다. 이 책은 1,2권으로 나눠지는데 <1-기록과 기억>, <2-장면과 순간> 이렇게 구성되어져 있다. 앞 표지에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김용균 동지가 웃고 있는 모형이 놓여있다.
3년 전 사고 당시에는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뒤덮였지만 돌이켜 살펴보니 이 사건은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의 총집합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청년 실업, 산업재해, 산재 이후 유가족과 동료들의 트라우마, 원청 사용자 처벌미비 등이 그것이다. ‘김용균’이라는 이십대 청년의 죽음으로 그런 중대한 문제들이 드러났고, 온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드러난 문제점들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막중한 사회적 책무를 지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비극의 시작
이 책에서는 비극의 시작으로 전기산업의 민영화를 들고 있다. IMF 구제금융 때 산업을 분할하고 민영화한 것이 김용균 산재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 계획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낳았고 이를 계기로 민주노조가 세워지게 되었다. 발전노조는 파업과 투쟁으로 당장의 민영화는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노조파괴를 자행하는 한편 계속해서 민영자본 발전을 확대 추진했다. 그 결과 2003년 한전 자회사인 한전산업 개발이 자유총연맹에 매각됐다. 자유총연맹은 한전산업개발 주식의 51%를 사들였다. 이후 2009년에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발전소들은 5개의 회사로 쪼개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지고, 일이 훨씬 위험해졌다. 외주용역화가 확대되어, 8000여 명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이들 대부분은 경상정비, 청소, 경비, 시설관리, 연료환경설비 운전을 맡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라는 정책을 꺼내들었다. 이를 계기로 공공운수노조는 전력산업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새로 조직된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정규직화 투쟁을 시작했다. 김용균 노동자가 들었던, 결국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던 ‘문재인 대통령님,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도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용균은 ‘이윤을 위해 기획된 민영화와 분할경쟁 체제가 만든 희생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28년만에 산안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김용균의 죽음 이후 시민 대책위는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기 위한 산업재해 안전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 이전부터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 산재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던 중 2016년 구의역 김군 산재 사건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금지로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를 법제화하기 위해 산안법의 ‘유해 및 위험 업무 도급 금지’ 도입을 추진했으나 입법화되지는 않고 있었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인 2017년에도 중대산업재해 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안법 전면 개정을 위한 예고안을 발표했으나 한계점이 많았다. 이 입법안에는 사고성 재해는 포함되지 않았과, 산재 사망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하한선도 삭제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김용균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입법요구 투쟁이 본격화됐다.
김용균 어머님을 비롯한 산재 피해자 당사자와 가족들이 구심적 역할을 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결국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각 정당 대표들을 면담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의를 계속 지켜보면서 법 개정을 촉구한 결과였다. 제한된 범위지만 도급금지 조항이 들어가고 원청이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었다.
이 책에서는 산안법 개정이 언론을 타고 개정된 것을 두고 성과라고 칭하면서도 한계점이 많고, 그래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인정한다. 개정된 산안법은 그러나 ‘김용균 법’이라는 이름 붙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발전소 업무가 도급금지 대상에서 빠졌고, 처벌의 하한선(하한형)도 빠진 채였다. 시민 대책위가 강하게 주장한 중대재해 처벌법은 당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 책이 법 개정 부분은 서술하고 있지만 현장에 어떻게 적용하고 변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법은 출발점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적 변화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불합리한 업무, 위험한 업무를 요구받았을 경우 거부하거나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 책은 다루고 있지 않다. 이것은 남겨진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달라진 것 없는 현실
김용균이 사망한지 3년이 지났지만 발전소 노동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산업안전 보건법이 전면 개정되고 산재 유가족들이 단식까지 해서 중대재해처벌법도 2020년 초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장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5조 6천억원을 들여서 발전소마다 안전 대책을 세웠다고 하는데도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아니, 죽음을 감수하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전히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장이 바뀌지 않았으니 또 언제든 산재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발전소 노동자들은 말한다. 발전소뿐만 아니다. 김용균 죽음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다. 나이와 성별, 산업과 직종을 따지지 않고 산재는 매일 발생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 반대를 외치며 정규직 전환 투쟁을 했던 발전소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진행 중이다. 3년이 지난 지금도 1심 재판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진상조사는 명확한 것이 없고 책임자 또한 없다. 사고 당시에는 거대한 여론의 압박에 한국 서부발전의 잘못이라며 인정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계속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유가족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달라진 사람들
<1-기록과 기억> 4부를 보면 ‘투쟁과 기억의 목소리’라는 부분이 있다. 김용균의 유가족인 어머니, 당시 태안 의료원장, 동료들, 자식을 먼저 잃었던 유가족 등 그 사건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사회가 얼마나 불합리하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고 했던 김용균의 어머니는 투사가 되었다. 김용균을 처음 발견했던 노동자는 김용균에게 미안하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그때를 잊지 않겠다며 책자나 유인물을 모아두고 있다고 한다. 더 나이들어서 거동이 불편할 때 읽으려고 남겨두었다고 한다. 김용균 또래의 노동자들은 인터뷰에서 사고가 일어나고서야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정규직화의 중요성 등을 깨달았다고 세상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려고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했던 동료 김용균을 떠올리며 현장 안을 더 많이 바꿔내기 위해 나아갈 것이라 다짐ㅎ라기도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이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일하다보면 사고는 날 수 있다. 그러나 최대한 이것을 방지해야 한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 인재로 불리는 사고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시설을 정비하고, 체계를 바꾸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없어야 한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고 있는 법 조항은 누군가의 목숨으로 적힌 것이다’라고.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책 제목처럼 앞서 빛이 된 사람들 덕택이다. 사람이 죽어도 변하지 않는 이 무서운 현실 속에서 묵묵히 투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애쓰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인간의 존엄이 다치지 않게 나아가는 길에 ‘김용균이라는 빛’이 계속 비춰줄 것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