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구요?
텔레비전에서 방영중인 <사랑의 불시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고발당했다. 우연한 사고로 북에 가게 된 남한 여성과 이를 돌봐준 북한 군인이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드라마인데 북한 군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고발한 자유기독당은 국가보안법 7조 1항 ‘찬양고무죄’를 근거로 주적인 북한을 찬양하고 미화했다며 담당 방송국과 담당PD를 고발했다.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8년 <오늘밤 김제동>역시 김정은을 칭송하는 인터뷰를 여과 없이 내보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했다.
죽은 국가보안법? 여전히 살아있는 국가보안법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을 꼭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고,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는 오늘 날, 국가보안법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우리 옆에 살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강연에서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되어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이 국회의원이 소속된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일은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된 이들은 40여명이 넘고 7명 이상이 구속되었다. 2018년에는 대북사업을 벌였던 사업가가 간첩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다. 지난 1월 30일 대법원은 전교조 교사 4명에 대해 이적표현물 소지를 이유로 유죄를 확정했다. 같은 날 파주시의원을 비롯한 민중당 활동가 3명에 대해서도 미국을 반대하는 노래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확정지었다.
북한이 문제? 질서유지가 핵심!
북한에 대해 찬양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과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지배계급의 질서에 맞서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전태일평전>이나 <태백산맥>과 같은 책을 포함하여 사회과학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셀 수도 없다.
2017년에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노동자의 책> 대표이자 철도노조 조합원인 이진영씨의 경우 <제국주의론>, <무엇을 할 것인가>, <러시아혁명사>, <자본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같이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들과 민주노총 및 철도노조 유인물이 모두 이적표현물이라며 압수당했다. 게다가 인혁당, 사노맹 등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정치조직에 대한 탄압은 해방연대, 사노련 등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정치단체에 대한 탄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라고 자유로운 건 아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국가전복세력’ 운운하는 지배계급에게 국가보안법은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몰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억압수단이다. 김문수 전경기도지사는 지난 1월 20일 자신의 sns에 한국사회가 이미 주사파, 좌파연합에 넘어갔다며 민주노총, 언론노조, 전교조 역시 붉은 혁명 사상에 물들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소위 ‘북풍’이라 불리는 종북몰이, 사상검증은 더욱 거세진다. 자신들의 지배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모두 ‘붉은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몰고, 이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익보수들이 있는 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끊임없이 제한당할 게 분명하다.
누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이 존재했던 70년 동안 엄청난 수의 노동자, 지식인, 활동가들이 구속과 수배, 폭력과 억압에 시달려왔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삶이 파탄난 수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이나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조국 등 민주당 류의 정치인들 역시 국가보안법은 이제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자마자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부분적인 개정 시도도 있었지만 보수야당의 강한 반발 앞에서 뒷걸음질 치거나 눈을 감아버렸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상의 자유보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이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보수세력과도 연합하여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필요한 일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썩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마음까지도 통제하려는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한다. 자본주의를 박살내는 투쟁과 국가보안법을 끝장내는 투쟁은 연결되어 있다. 민주당 수준의 민주주의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독재시절로 돌아가려고 발악하는 수구 보수 세력과 자신의 약속조차 내팽개치는 무력한 민주당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길로 함께 가자.
권보연
국가보안법이란?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이 모태가 되어 만들어진 법이다. 1925년에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은 일제 통치하에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는 자신을 위협하는 반대세력을 제거하고자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렸다. 미국정 당시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인구가 70%나 되고, 4·3 제주항쟁과 여순항쟁 등이 일어나면서 이승만 정부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민국 형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1948년 내란상태를 명분으로 국가보안법부터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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