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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5천 원에 저당 잡힌 전기노동자의 죽음

noheflag 2022. 1. 13. 13:28

 

지난해 11월5일 여주시의 한 신축 오피스텔 전봇대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던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씨가 2만2천볼트의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전봇대에 30분간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지만,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어 19일만인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 사고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다 최근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이 노동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주먹구구식으로 위험한 작업을 지시한 하청업체와 무책임한 한전에 대한 공분이 일었다. 

 

13만 5천 원


고압 전기작업 시에는 ‘활선차(고소절연 작업차)’를 사용해야 한다. 활선차를 사용하면 감전의 위험이 현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김다운 노동자는 일반 트럭을 타고 작업했다. 심지어 장갑도 절연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착용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하청업체는 사망사고의 핑계를 얘기하다 그 이유를 드러냈다. 하청업체는 김다운 노동자의 사망 사고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별로 남는 게 없는 13만 5천 원짜리 단순 공사였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1톤 일반 스카이차를 1시간 대여하는데도 20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한전은 13만5천원으로 공사를 하라고 단가를 후려친 것이다. 하청업체는 당시 활선차를 다 사용하고 있어서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13만 5천원짜리 단순공사를 하니 활선차를 추가로 대여해서 쓰는 것이 아까웠을 것이고, 절연장비를 지급하는 것도 비용이라 했을 것이다. 
안전하게 작업할 환경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사고의 책임을 개인의 부주의를 떠넘기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는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신축 건물에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일임에도 한전은 13만5천원으로 그 가치를 후려치고, 하청업체는 노동자의 목숨을 갈아 넣었고, 결국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 작업은 또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의 안전규정상 2인1조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작업자는 홀로 현장에 투입됐다. 지상감시자도 없이 홀로 전봇대를 올랐다. 한전에서 빠르게 상황을 인지하면 해당 전기를 끌 수 있는데도 전기는 차단되지 않았고, 사고 후에도 30분간 전기가 흘렀다. 1인 작업의 위험성은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 이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아직까지 2인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음이 또 확인되었다. 
김다운 노동자가 하던 업무는 원래 한전 정규직노동자가 하던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1년 4월 갑자기 하청업체로 넘겨졌다. 한전은 정규직이 하던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청노동자에게 넘긴 것이다. 그러면서 13만5천원으로 그 작업을 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나마 정규직이었다면 2인 1조 작업은 이뤄졌을 것이고, 활선차 사용과 절연장갑 지급은 되었을텐데, 하청업체로 외주화되면서 안전규정은 사라졌다. 유가족이 “왜 혼자 보냈냐”는 질문에 하청업체는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13만5천원짜리 작업에 2인 작업을 어떻게 하냐고 얘기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전, 죽음의 사업장 


한국전력은 공공기관 최대의 산재다발사업장이다. 2015년부터 감전으로 숨진 노동자만 47명에 이른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한전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해왔다. 하지만 산재사망사고는 반복되었다. 
이번에도 한전은 김다운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하고 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다. 11월에 발생한 사고가 1월이 되어야 알려지게 되었다. 언론에까지 보도되어 한전의 문제가 부각되자 1월 9일 감전·끼임·추락 등 3대 주요 재해별 안전 대책을 강화하겠다며 특별 대책을 발표했다. ▲추락사를 막기 위해 작업자가 전봇대에 직접 오르는 작업을 금지하고 ▲감전사 근절을 위해 작업자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전력선에서 떨어뜨리는 '전력선 접촉(직접활선)' 작업을 퇴출하며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작업 특수차량에 '밀림 방지장치'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이전부터 사망사고 발생하면 대책이라고 내놨지만 지켜지지 않거나 말로만 이뤄지는 대책이었고, 핵심적 문제인 위험의 외주화는 꺼내지도 않은 허울뿐인 대책이었다. 

진짜 이유를 모르는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노동자 탓이다. 이번에도 한전은 사고 직후 유가족에게 ‘눈에 뭐가 씌였는지 커버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작업자가 의욕이 앞선 것 같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 산재사고의 원인을 모르는 것일까? 산재사고를 막을 방법을 모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원래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긴 것만 봐도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직접고용해서 하면 하청업체에 비해 안전규정을 더 지켜야 하고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외주화한 것이다. 2인 1조 작업이 안 된 것, 활선차를 이용하지 않은 것, 절연장갑을 쓰지 않은 것은 모두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다. 더 적은 비용으로 일을 하기 위해 두 명이 할 일을 한사람에게 시키고, 각종 안전장비 비용을 절감하려 위험한 노동을 강요한 것이다. 한전은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이 더 쉽고 책임을 지지 않도록 업무를 외주화했다.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한전을 비롯한 기업들은 진짜 원인을 못 본 척하고 형식적인 대책으로 립서비스한다.

한전 사장 처벌받나? 


중대재해처벌법이 22년 1월 27일 시행된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한전은 피해갈 꼼수를 가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에 해당하는 도급인은 처벌대상이지만 건설공사 발주자의 책임은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한전은 1월 9일 사망사고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도 끝끝내 자신들은 도급인이 아니라 발주자일 뿐이라고 발뺌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 책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 그래야 안타까운 산재사망사고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미 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누더기가 된 상황이고 책임자들은 미꾸라지처럼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결국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이번 김다운 노동자의 죽음도 한전의 원하청업체가 무마시키고 덮으려 한 것을 유가족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하고 싸웠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한전 사장이 직접 언론에 사과까지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21년에만 81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도, 책임을 묻는 것도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유가족과 동료들의 피눈물 어린 투쟁이 없다면 죽음은 묻히고 잊혀진다. 22년 또다른 김다운, 또다른 김용균을 만들지 말자. 가진자들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모는 사회를 그냥 두어선 안된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