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원자력 발전의 진짜 대안은 노동자들이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다

noheflag 2022. 1. 22. 14:32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친환경적인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정책 초안을 발표했다. EU 집행위의 초안에 대해 EU 회원국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고 있다. 전력생산의 7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를 필두로 폴란드·핀란드·체코 등은 EU 집행위의 초안을 반기는 반면, 독일·오스트리아·덴마크 등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EU 집행위가 새로운 녹색분류체계를 EU 의회에 상정할 경우 EU 사법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에서도 EU 집행위의 새로운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대해 격론이 벌이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원전을 확대하고, 수출할 길이 열리기를 바라면서 EU 집행위의 새로운 녹색분류체계를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EU 집행위가 위험천만한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려 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의 우력 대선후보들도 여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에서 한발 물러나 ‘감(減)원전’을 표방했다. ‘감(減)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을 계승하면서도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폐기하기로 했던 신한울 3·4호기 건설계획도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여지를 뒀다. 반면 윤석열은 ‘복(復)원전’을, 안철수는 ‘탈(脫) 탈(脫)원전’을 표방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핵발전 없이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다시 고개 드는 원자력 발전


원자력 발전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원전사고의 위험이나 핵폐기물의 위험을 처리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서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위험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하고도 전력 생산에서 충분히 경제성을 갖출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아래서 살펴보겠지만 EU 집행위에서도 그리고 EU 집행위의 초안에 찬성하는 EU 회원국들도 그럴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는 것 같다. 
1986년의 체르노빌,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이 인류와 자연생태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세계적으로 반(反)핵 여론이 확산됐고, 원전산업이 쇠퇴기를 맞는 듯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부도 2060년까지 원전을 ‘제로(Zero)화’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핵발전을 유지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EU에서도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 역시 반핵 여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확대정책을 계속해 왔다. 무엇 때문에 핵발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가? 
EU 집행위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면서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자금과 부지를 갖춰야 하고, 이마저도 2045년까지 건설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편으로 이것은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EU 회원국들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EU 집행위에서도, 그리고 심지어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는 것에 찬성하는 EU 회원국들조차도 원자력 발전을 기후위기의 대안이라기보다 ‘과도기적 에너지 정책’ 정도로 여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원전사고나 방사성 폐기물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제거할 기술이 지금 지구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경제성의 측면에서도 원자력 발전이 재생에너지에 비해 더 낫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원전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자들은,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정부와 학자들은 당장의 이득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유지하고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2045년이 가까워지면 이들은 원자력 발전을 지속할 다른 핑계거리를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조작·왜곡·거짓말 그리고 혼란조장


원자력 발전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자들,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은 원전을 지속하고 확대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하고 조작해 왔다. 방사선 누출사고가 생겨도 이를 축소하거나 은폐해왔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면서도 기준치 이하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지금껏 방사성 폐기물을 몰래 바다에 버려왔던 각국의 공범들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두둔했다. 원전의 경제성을 타산하는 데서도 사용 후 원전의 해체와 폐기 비용,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의 보관과 관리 비용을 고의적으로 누락시켜왔다. 그래서 마치 원전이 대단히 값싼 에너지원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안철수의 발언을 훑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안철수는 원전사고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자동차를 다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레이크, 에어백, 등 보완장치 기술로서 극복하고 있다. ……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문제(‘원전의 안전성’과 ‘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모두 과학 기술로서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원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그러면서 그는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극복해 나가고 있고, 사용후핵연료(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기술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철수의 주장은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것은 그동안 원전옹호자들이 해왔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원전사고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것도, 재생에너지가 기후나 날씨·지형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들은 간혹 무지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혼란을 조장하고, 원자력 발전에 대해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령 신한울 3·4호기가 지어진다면 그것은 SMR 원전일까? 한국의 원전 자본가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한국의 원전이 국외로 수출된다면 그곳에서 지어지는 것은 SMR 원전일까? 아니다. 기존의 대형원전이 지어질 것이다. 전력생산의 70%를 원자력 발전에 의지하고 있는 프랑스나 가장 발전한 원전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험천만한 대형원전은 여전히 처리불능의 방사성 폐기물을 토해내고 있다. 그리고 새로 지어질 원전에서도 처리불능의 방사성 폐기물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언젠가에 개발될 수도 있는 기술을 근거로 ‘현재’의 ‘위험한’ 핵발전을 ‘유지·확대’해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SMR 기술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 그 조차도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 속에서만 대형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 SMR에 대해 낙관하는 자들은 SMR이 대형원전에 비해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건설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방사성 폐기물도 대형원전에 비해 1/100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성도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러나 SMR은 대형원전에 비해 전력생산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비용이 더 적게 드는지 효율성을 비교해서 계산해야 한다. 가령 발전 용량 1,000㎿ 대형원전을 짓는데 3조 원가량 드는데 100㎿짜리 SMR를 세우는 데 1조 원이 든다. 대형원전과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더 많은 수의 SMR 원자로를 건설해야 한다. SMR 원전의 건설비용이 대형원전에 비해 더 적다는 주장은 이런 ‘간단한 셈’을 간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셈에 따르면 SMR 원전이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대형원전에 비해 1/10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하는 주장도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다. 또한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의 위험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원전 옹호론자들은 그렇게 믿게 만들려고 한다. 
다시 정리해보자. 원전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 대안으로 여기는 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해내지 못한 SMR에 대한 자신들의 낙관을 문제투성이의 대형원전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미래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를 SMR 원전이 오늘 대형원전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꿈의 핵융합 기술이 아직도 사후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오염수를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현실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아직 인류는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처리하는 기술을 알지 못한다.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기술은 없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에 관한 안철수 등 원전옹호론자들의 ‘낙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은 ‘낙관’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왜곡이나 혼란조장에 가깝다.
2017년 7월까지 전 세계 31개국에서 447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갖춘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2022년 현재까지도 마찬가지다. 모든 핵발전국들이 이 대단히 위험한 핵폐기물을 임시보관소에 방치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원전 부지 내에 그것을 보관(방치)하도록 하고 있다. 오직 핀란드만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처리장을 짓고 있는데,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지하 450m 암반층에 동굴을 파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10만년 동안 보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0만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자연상태에서 안전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폐기물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긴 플루토늄의 경우 72만년의 시간이 걸린다. 보관기간 10만년은 오히려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성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1954년에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핵발전소가 가동되었고, 1956년에 영국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원전을 건설한 이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인류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기술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안철수와 같은 핵발전 옹호론자들은 기술이 개발될 때를 믿고 목숨을 걸어보자고 꼬드긴다. 오직 핵발전을 통한 이윤을 위해서! 이윤은 자기네들이 다 챙겨가면서 왜 목숨은 우리 것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이들만이 핵폐기물이 잔뜩 쌓여있는 핵발전소 근처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다.
미래 언젠가에 안전한 핵발전 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꿈의 에너지 기술이라는 핵융합 발전 기술을 개발하는데 인류가 성공할 수도 있다. 이미 우라늄 대신에 토륨을 원료로 하고, 액체나트륨을 냉각제로 이용하는 토륨원자로가 중국에서 개발 중이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토륨원자로를 상용화하겠다고 한다. 토륨원자로는 우라늄원자로에 비해 전력 생산에서의 효율성이 높고, 우라늄원자로에 비해 규모를 훨씬 줄일 수도 있고, 액체나트륨을 냉각제로 이용하기 때문에 사막과 같은 내륙에 건설할 수도 있으며, 방사성 폐기물의 양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호언장담대로 토륨원자로가 상용화된다면,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우라늄원자로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원전의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그 양을 획기적으로 줄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때 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 그런 진보된 기술조차도 이윤을 위해 사용될 때 무슨 위험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원전옹호론자들처럼 토륨원자로 기술을 가진 이들도 그 위험성을 감추고 이윤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원전사고의 위험성과 핵폐기물을 보다 안전하게 처리할 진보된 기술이 개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인류 모두의 편의와 행복을 위해 이용된다면 확실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술이  이윤증식을 위해 이용될 때는 없는 문제도 생겨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본가들과 정부들은, 심지어는 그것을 통해 이득을 얻는 학자들(전문가들)까지도 왜곡, 거짓말, 통계수치의 조작 등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자들에게 원전을 내맡기는 것은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보다도 더 위험한 일이다. 진짜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자연생태계를 담보로 삼아 기술적 한계를 돌파해보자는 안철수와 같은 무모한 자들에게 원전을 내맡길 수는 없다. 이윤을 위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원전보다 더 위험하다. 

대안


만약 인류에게 원전의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면 우리는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만약 자연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라는 대안이 인류에게 없다면 재앙적인 기후위기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천만한 원자력 발전을 지속하고 확대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을 통제하고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제1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기술이 상용화된 지 오래되었고, 날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풍력발전은 이미 원전의 경제성을 앞질렀다.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제외한 기준으로 전체 발전기간의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평가했을 때 2011년부터 원자력 전기는 풍력 전기보다 비싼 에너지가 됐다. 지난해에는 원전이 1메가와트시(MWh)당 163달러로, 평균 37달러인 풍력발전보다 4배 이상 높았다.
물론 모든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원전에 비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윤체제다. 재생에너지의 개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원전을 옹호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재생에너지가 기후 등 자연적 조건에 구애받기 때문에 경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 자연적 차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적 조건에 따라 더 경제적인 발전방식을 선택하고 세계적으로 기술을 공유하며 개발을 다변화한다면 인류는 안전한 재생에너지만으로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그리고 값싸게 공급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많은 곳에서는 풍력을 이용한 발전이, 사막과 같은 곳에서는 태양열 발전이, 햇볕이 강한 곳에서는 태양광 발전이 효율적일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해안이라면 조력발전이, 센 파도를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는 파력발전이 경제성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윤을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의 한계를 부풀리고 원전만이 대안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있는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위험천만한 원전을 통제하고 폐기할 수 있으려면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권력을 잡은 노동자들이 위험천만한 원자력 기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