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구요?
지난 4월 5일부터 2023년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시절부터 현행 최저임금제도가 경직되었다며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해서 적용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맞춰 지난 6일 원일희 대통령직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최저임금이 지난 5년간 급격히 인상돼 고용시장이 위축되고 경제에 부작용이 컸다”며 개선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최저임금이 너무 급속히 올라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최저임금이 너무 높이 올라가면 기업들이 오히려 고용을 줄여 버리는 결과가 와서 사용자·근로자 둘 다 패배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막고 오히려 더 낮추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팩트체크 1 :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는가?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 최저임금은 시급 6,470원에서 9,160원으로 41.6%(2,690원) 올랐다. 이명박 정부의 5년간 누적 인상률 28.9%, 박근혜 정부의 33.1%보다 높지만 과거 김영삼(47.8%), 김대중(53.2%), 노무현 정부(65.7%)의 인상률보다 낮은 수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최저임금이 적게 올랐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은 것처럼 보일 뿐,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던 것처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 삼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2017년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상여금 및 현금성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었다. 그 결과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받는 월급은 그대로인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해만 비교해 봐도 물가 상승률이 3%였던 반면 실질임금 인상률은 1.8%에 불과했다. 오히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하락한 것이다.
팩트체크 2 :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경제가 어려워진다?
윤석열 정부는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망하고 경제가 파탄에 빠진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그러한가? 코로나 시기에도 대기업들은 역대 최대의 수익을 올렸다. 반면 소자본가들은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경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 사이에도 경쟁이 이루어진다. 대기업들의 시장 독점이 강화되면서 상권을 뺏기고, 건물주에게는 비싼 임대료를 물고, 금융자본가에게는 높은 이자를 내야 하는 소자본가들 중 일부는 위기상황으로 내몰린다. 특히 코로나 시기처럼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 위기는 심화된다.
하지만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 고용되어 최저임금을 받는, 그리고 자신이 번 돈으로 다시 소비자가 되어주는 노동자 때문에 위기가 온 것처럼 호도한다. 그런 후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하는 척 핑계 삼아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다.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대자본가들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는 위축되어 소자본가들의 위기는 지속되는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하고 무너진 자영업자의 판매시장을 차지한 대자본가들의 곳간은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노리는 바다.
팩트체크 3 : 우리나라만 최저임금 인상?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해법과는 달리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올해 1월 1일 법정 최저임금이 시간당 9.60유로(약 12,770원)에서 9.82유로(약 13,062원)로 인상됐고, 7월1일부로 10.45유로(약 13,900원)로 오를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심지어 10월1일부로 또다시 12유로(15,961원)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인상이 완료되면 1년 사이 무려 25%가 인상되는 셈이다.
영국 역시 4월1일자로 전국생활임금(23세 이상의 최저임금)을 기존 8.91파운드에서 9.5파운드(약 15,216원)로 6.6% 인상했다. 21세부터 22세까지의 최저임금은 기존 8.36파운드에서 9.16파운드(약 14,671원)로 약 9.8% 올렸다. 사상 최대의 최저임금 인상률이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최저임금을 올렸고 일본 역시 중소제조업의 임금인상폭이 21년 만에 최고치에 달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의 전략
이런 정책들은 코로나가 심화시킨 불평등과 물가폭등 등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각국의 노력의 일환이다. 대중의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든 정부는 노동조합의 활동 강화 법안과 함께 ‘더 나은 재건’이라는 구호 아래 어린이의 무상교육을 포함하는 1조8000억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투자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소득 1억달러 이상 거대 부자들을 대상으로 모든 소득에 대해 최소 20%의 소득세를 물리는 법안도 내놓았다. 일본 기시다 정부도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하청기업들의 단가인상을 대기업이 수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균열은 발생하고 있다. 페루에서는 연료와 비료, 식품 등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트럭노동자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사망자가 6명 이상 발생했고 통행금지령도 내려졌다. 시위대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스리랑카, 인도, 이라크 등에서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그리스에서도 수만 명이 물가상승에 항의하며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집트는 빵값 상한제를 도입했고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남수단은 기아 위기에 놓여있다. 스리랑카, 레바논 등 십여 개 국이 디폴트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의 경제 상황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물가상승 때문에 시장을 보러 가기도, 밥을 사 먹기도 무서운 지경이다. 4월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년 100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 올랐다. 2011년 12월 4.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5.0%나 올랐고, 외식물가는 1년 새 6.6%나 상승했다. 지난 5년 사이에 서울 집값은 70% 이상 올랐고 전셋값도 무려 43%나 뛰었다. 사회보험료 역시 2020년 기준으로 2016년에 비해 33조8332억원(32.4%)증가했다. 코로나로 가중된 경제 위기와 더불어 최근 전쟁으로 인한 유가 인상, 밀가루 등 원자재값 인상, 금리인상 등 저소득 노동자들의 가정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일자리도 문제다. 지난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5년간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 휴폐업과 정리해고 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퇴직자가 158만 명에 육박한다. 2016년 125만8000명에서 지난해 157만7000명으로 25.4%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단시간 노동자의 수도 증가하여 지난해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이 36시간 이상인 취업자는 2016년 대비 143만1천명(6.7%) 감소했고, 17시간 미만 취업자는 88만5천 명(69.9%) 증가하여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200만 명을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 공공 일자리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의 고용을 확대했지만 이들 분야의 단시간 일자리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 불안정 노동만 증가한 것이다.
기만적인 최저임금 논쟁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4년 동안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료로 받는 돈이 18억 원을 넘는다. 어림잡아 한 달에 3800만 원이 넘는 돈이다. 한덕수 후보자의 한 달 치 고문료면 최저임금 노동자 19명의 월급을 주고도 남는다. 이런 자가 시급 9,160원, 한 달 200만원이 안 되는 임금이 많다며 최저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논할 게 아니라 가진 자들이 가져가는 최저임금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월급, 성과급, 배당금 등이 정당한지 따져보아야 한다. 전관예우랍시고 받는 수백에서 수십억의 고문료, 꿀알바로 불리는 사외이사비 등도 적절한지 따져 물어야 한다. 저들의 천문학적인 사기 행각을 확인하는 순간 산업마다 업종마다 지역마다 평균임금이 다르기 때문에, 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똑같은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저들의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드러날 것이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