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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탄압의 수단이 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noheflag 2022. 4. 23. 15:07

‘직장내괴롭힘’하면 흔히들,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이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2021년에 만들어진)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이런 회사의 횡포로부터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법이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의 세 가지 예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민주제약노조의 두 사례


2021년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KDPU) 산하 쥴릭파마솔류션즈서비스코리아(SSK)지부에서는 단체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2021년 10월)에서 노동조합 지부장, 사무국장, 회계감사가 ‘직장내괴롭힘’을 이유로 대기발령조치를 당했다. 제3자, 누군가가 ‘직장내괴롭힘’으로 이들을 신고한 것이다. 
단체협약에는 노사가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었지만, 회사는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노조 간부에 대해 인사조치를 내렸다. 결국 단체협약 위반에 따라 징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노조 교섭대표들은 대기발령과 사업장 출입금지 조치를 당해야 했다.
민주제약노조 산하 한국먼디파마에서도 (2021년 8월 2일) 단체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노동조합 지부장을 직장내괴롭힘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 두 사례의 탄압 패턴은 비슷하다. :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노조 지부장 등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다른 직원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곧 ‘직장내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를 한다. 회사는 객관적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외부 법률자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한다. (위의 두 경우에 회사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서 악명높은 김&장법률사무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면 외부 법률자문기관은 조사를 이유로 노동조합의 활동자료나 업무내역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키운다. 회사는 이를 근거로 징계를 내린다. : 이것은 확실히 신종 노조 탄압 방식이라 할 만하다.
쥴릭파마솔류션즈서비스코리아(SSK)지부나 한국먼디파마지부는 많은 이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노동조합들이다. 그러면 기아차노동조합은 어떨까?설마 ‘그런 일이 기아차노동조합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기아차노동조합에서도 벌어질 수 있고, 실제로 벌어졌다. 물론 양상은 훨씬 복잡하지만 말이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돕기 위해 기아차 차례는 따로 정리했다. 「기아차광주지회 ~ 되다」 기사 참조) 

기아차광주공장의 사례


A반 반장이 조장의 근태를 조작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원들(조합원들) 중 과반이 여기에 항의해 반장에게 해명을 요구했고, 반장이 이를 거부하자 반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반장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현장에 걸어두고 일을 하고, 식당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다. 
회사는 1공장(소울/세라토) 조립부 전체의 근태를 조사해 근태를 조작한 다른 반장들을 찾아냈다. 그래서 반장 4명, 주임 2명, 부서장 등에게 그 책임을 물어 ‘경고’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한참이 지나서) 반장퇴진 투쟁을 벌였던 조합원들이 반장을 집단적으로 괴롭혔다며, 알 수 없는 제3자가 회사에 신고를 했다. 회사는 노무사2인에 의뢰해 이를 조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 투쟁했던 조합원들 중 6명이 mm장(스포티지/소울)으로 전환배치됐다. 
지방노동청에서는 ‘감급과 출근정지’ 이상의 징계를 권고했다. 이들에게 곧 징계가 떨어질 것이다. 이처럼 기아차지부와 같은 거대노동조합에서조차 자본가들은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을 악용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회사의 도구가 될 수도


이처럼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 회사의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기아차지부처럼 거대한 노동조합에서조차 노동조합 관료들의 묵인과 동조 아래,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 특히, ‘평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현장투쟁’을 억압하는 회사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자본가들이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을 악용할 수 있는 약점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집단’은 무조건 관계에서의 우위일까?


기아차 사례에서 반장은 평조합원들보다 회사에서의 직위가 더 높았다. 그런데 반장은 ‘개인’이고, 반장퇴진을 요구했던 조합원들은 ‘집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관계에서 ‘집단’이 ‘개인’의 우위에 있다고 보아 ‘직장내괴롭힘’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런 유추해석 때문에 집단적 노조활동이 회사의 기획에 의해 ‘집단의 괴롭힘’으로 둔갑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회사가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노동자들의 투쟁은 ‘직장내괴롭힘’일까?


기아차광주지회에서 조합원들은 반장퇴진 투쟁을 ‘노동조합 활동’을 보았지만, 회사는 ‘직장내괴롭힘’으로 몰아갔다. 무엇보다 회사는 현장에서 평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노동조합 활동으로 보려 하지 않았다. 집행부도 이에 동조했다. 회사와 노조관료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집행부나 대의원들의 전유물인 것으로 보려 했다. 이런 관점을 회사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관료들은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을 수단으로 한 회사의 조합원 탄압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다. 겨우 싸움을 말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섰다. 기아차광주지회 집행부는 회사와 조합원들 사이에 끼인 관료들의 존재와 중재자로서 조합원들을 통제하는 그들의 역할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은 노동조합 관료들의 대리적이고 형식적인 활동이나 투쟁이 아니라 평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활동과 투쟁을 본질로 한다. 그런데 평조합원들의 현장투쟁을 노동조합 활동으로 보지 않으려는 회사와 노조관료들의 관점이 평조합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으로 탄압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악용 : ‘제3자’의 신고


또한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피해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가 이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사가 자신들이 사주한 ‘제3자’를 통해 회사와 투쟁하고 있는 노동조합 간부나, 평조합원들을 신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회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피해자가 외부적으로 피해 사실을 부정해도 소용없다. 직위나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사정을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너무나 친절하게 헤아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법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가공의 피해자를 만들고, 가공된 피해자를 감싸면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약점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약자인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그 약자인 노동자가 억압과 부정에 맞서는 투쟁의 주체로서 분명하게 서야 그 법은 노동자들에게 의미가 있게 된다. 피해 노동자가 스스로 신고할 수 있는,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개별화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심지어는 많은 노동자들이 사장의 “나가라”는 말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울분을 삼키면서 다른 일거릴 찾아 떠난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다. 쓰디 쓴 진실에 대해 말하자면, 불의와 억압에 맞서는 용기가 없다면 누구도 그/그녀를 대신해서 그/그녀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하물며 회사가 그렇게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겠는가?
약자로서의 노동자들의 약점이 고스란히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의 약점이 되었다. 회사는 이 약점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자신들의 무기로 쓰고 있다. 

 

노동청이 아니라 회사에 신고해야?  


한편으로 피해자가 ‘직장내괴롭힘’을 신고하려 할 때, 그/그녀는 노동청이 아니라 회사에 신고해야 한다. 피해자가 노동청에 신고해도 노동청에서는 회사에 신고하라고 돌려보낸다. 조사결과에 따라 어떤 조치를 내릴 ‘의무’도 회사에 주어진다. 그러나 이 의무를 회사는 권한처럼 행사한다. 하기 싫으면 시간을 질질 끌고, 피해자를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피해자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에 피해자를 배치하는 식이다. 
반대로 위의 세 사례에서처럼 회사에서 기획한 ‘직장내괴롭힘’의 경우에, 회사는 로펌이나 노무사들에게 신속하게 의뢰하고, 로펌이나 노무사의 조사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전환배치는 물론이고, 징계도 맘대로다. 심지어는 해고까지 간다. 기아차에서는 ‘해고’로 위협해 조합원들이 저항에 나서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다.
사실상 조사와 조사결과에 따른 처분이 거의 회사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 무용지물이 되거나 회사의 노동자 탄압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관이 조사와 처분을 해야 객관성을 어느 정도라도 보장할 수 있다.
쥴릭파마솔류션즈서비스코리아(SSK)지부의 공동조사위원회 같은 노사공동기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노동조합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은 외부 노동자단체의 지원을 받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그렇게 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은 법일 뿐. 

 

노동자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법은 절대로 노동자들 편이 아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법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노동청도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을 신병을 보호할 법을 만들도록 국가에 강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이 모두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고, 국가란 이 자본가들을 정치적으로 대리할 뿐이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이들이 가지고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좋은 법이 이들의 손에 들리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들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곧게 서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법은 절대로 중립적이지 않다. 법은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 설사 그 법이 노동자들에게 대단히 유리한 법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에게 그 법을 강제할 힘이 없다면, 그 법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런 힘이 없다면,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되는 것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