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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다르지 않은 그들과 우리의 삶『아이폰을 위해 죽다 : 애플, 폭스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의 삶』

noheflag 2022. 5. 20. 11:40

“제품을 만드는 올바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은, 2016년 애플 공급업체 책임성 발전 보고서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폰의 공급업체는 전 세계에 걸쳐져 있다. 한국, 태국, 중국 등 수많은 곳에서 생산된 제품의 부품이 모여서 아이폰이 만들어진다.
  애플 공급업체인 중국의 폭스콘의 노동조건을 보면 저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아이폰을 위해 죽다』는 그것을 폭로하고 노동자들의 반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어려움과 모순점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턴십 제도(현장실습생과 비슷), 젠더갈등, 산업재해, 정경유착 등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업들의 문제점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러니 이것은 중국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의 폭스콘 노동자들

▲ 폭스콘 공장 기숙사에 설치된 자살방지용 그물망


이 책의 시작은 아이폰4와 아이패드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 텐위라는 17세의 농민공(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이 투신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첫 월급을 받아야 할 때 기업실수로 받지 못하자 절망해 기숙사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2010년에 폭스콘 노동자들 18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중 14명이 사망했다. 모두 25세 이하의 농민공들이었다. 회사는 대책으로 자살방지 그물을 기숙사 건물 사이에 쳐놓았다.(이후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창문을 창살로 막고 악령을 물리친다며 승려를 데려왔다. 이후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때 ‘자살 금지 서약서’를 받았다. 
폭스콘 노동자들은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다. 전자제품을 다루는 공장이라 화학제품을 사용하지만 성분정보를 제공받은 적도 없고 안전지침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으며 보호장비 또한 제대로 지급받은 적이 없다. 어떤 공정에서는 미세 알루미늄 입자가 날아다니는데 보호장비는 천 마스크 하나가 전부다. 그마저도 마스크 고정대가 없어서 제대로 막아주지 못한다. 또, 공장 내에 전기를 만지던 노동자는 4미터 사다리 위에서 아무 보호 장비 없이 작업하다가 추락했으나 산재 인정 절차가 어려워 곤란을 겪고 있다.
폭스콘의 생산환경은 아주 억압적이고 열악하다. 공장 안은 생산공장, 학교, 수영장 등 온갖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그것을 사용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쉬는 게 고작이고 회사는 법적 초과 근무 시간을 어겨가면서라도 생산수량을 맞추려 한다. 

 

닮은꼴 삼성전자

▲ 고 황유미 씨의 사망 11주기인 2018년 4월 6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관계자들이 방진복을 입고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마저도 자본가들은 만족하지 않고 탄력근로제를 늘려가면서 미친 듯이 일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특히 무노조 사업장은 선택권 없이 사측에 의해 노동시간이 결정되어 버린다. 사람 몸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상관없이 몰아치는 물량을 수습하는 데만 관심 있는 자본가들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2007년 고 황유미씨가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가 점차 수면위로 올라왔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독한 화학약품에 대한 유해성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한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이런 죽음의 공장이 삼성 반도체 공장이었다. 
삼성전자와 정부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과 이미 돌아가신 노동자들의 유족이 11년을 싸워 2018년에서야 겨우 공식사과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암에 걸린 노동자들은 계속 나오고 있고, 삼성전자의 정보공개 거부로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당하는 학생 


폭스콘의 폭주는 중국 지방 정부의 허용 아래에 가능했다.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지역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폭주하는 물량에 따른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지역 공무원들, 직업학교 선생님(일정한 금액 지급 받음)까지 나서 폭스콘 채용을 도왔다. 학생들은 조립라인에서 단순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성인 노동자에 비해 임금이 적고 퇴직금을 줄 필요도 없는 학생 인턴은 쉽게 쓰고 버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모두 저임금에 시달렸다. 실제로 2010년 아이폰의 가치 분배를 보면 부품 조립 관련 중국 노동자 인건비는 1.8%에 불과했다.
이러한 실태는 한국에서의 현장실습생제도와 다르지 않다. 현장실습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장시간노동과 산업재해에 노출된 학생들은 목숨까지 잃고 있다. 그러나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들끓는 여론에도 한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아니 사실상 저임금 노동력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방치하고 있다.

 

공회(노동조합)의 무(無)활동


폭스콘 공회(노동조합)는 중국 내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어용 노조다. 궈타이밍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 공회주석(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 권한은 중화전국총공회에 집중되어 있다. 공회대표는 회사에 호의적인 인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공회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다. 
  중국에는 공회 회원이 많지만 사업장 수준에서도 활동하기 어렵고 진심으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회는 폭스콘 내에서의 모든 분쟁들에 대해 노동자들을 지원하지 않는다. 중국 공회는 중국 당-국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중국 정부가 모르지 않으며 감시·통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노총도 중국의 공회와 마찬가지다. 해방직후 만들어진 대한노총의 후신인 한국노총은 관변노조로 정부의 노동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역할에 충실했다. 지금도 한국노총의 지도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드물고 심지어 종신직을 유지하거나 자녀들에게 세습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

▲ 2010년 공회 간부들(노락색 모자)이 파업 중인 혼다공장 노동자들을 방해하고 있다.
▲ 2016년 3월 중국 헤이룽성 솽야산 지역 광원들이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노동자들은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도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수많은 탄압을 이겨내며 결국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규모 조직화에 성공했다. 폭스콘 노동자들도 계속 착취당하며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방식을 넘어 뭉치고 싸우고 있다. 
폭스콘 노동자들은 경험을 통해 싸우는 방법을 알아냈다. 아이폰 신제품 생산 등 이유로 생산물량이 폭주할 때 태업, 고의로 불량내기, 집단적 자살 위협, 파업, 사업장 내 폭동 등과 같은 방법으로 생산에 타격을 입혀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억압적 국가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연이은 투쟁으로 조직화 경험과 지도력을 만들어낼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 폭스콘뿐만 아니라 2010년 혼다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2014년 교사들과 월마트 노동자들의 파업, 2016년 광산노동자들의 파업 등 중국노동자들의 저항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투쟁은 국가의 억압과 통제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해질수록 계급 대립은 더 첨예해지고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게 된다. 그토록 엄혹한 통제와 탄압에도 폭스콘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