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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개악 - 노동자 목숨보다 자본가 이익 보장이 우선이라는 정부와 여당

noheflag 2022. 7. 17. 18:29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반년도 안 돼 존폐의 기로에 섰다. 올해 1월 27일 시행된 이 법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정부와 여당이 시행령과 법안의 개악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터에서의 죽음으로부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안전과 관련한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윤석열과 여당인 국민의힘은 줄곧 반대해왔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을 ‘경제위기 우려’와 ‘투자 위축’을 불러일으키는 반(反)기업 규제로 규정했고, 정권을 잡으면 노동관련 규제개혁 1호로 이 법의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밝혀왔다.


정부와 기업은 한 몸


자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부터 이 법이 “대단히 모호하고 법 존재 자체가 기업의 리스크로 작용”한다며 반대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한 달 뒤인 지난 5월, 대표적 자본가 단체인 경총은 “직업성 질병자 범위 축소, 경영책임자 책임면제 추진, 경영책임자 의무 축소” 등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경영계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또 다른 자본가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도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명확한 의무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한 경영책임자에 대해 면책하는 등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6월 16일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은 “정부와 기업은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본가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신속히 해소’하기 위해 ‘행정제재 전환,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하고,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친자본 행보에 여당인 국민의힘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6월 17일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기업이 법무부가 지정한 안전관리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으면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 또는 면책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기존 중대재해법의 과도한 처벌로 인해 선량한 자의 억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라고 밝혔지만, 그동안 자본가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면책’ 요구에 대한 민원처리라는 점이 분명하다.

6개월 동안 기소는 단 한 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자본가들이 다 죽을 것처럼 자본가, 정부, 여당이 한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해댔지만, 시행된 지 6개월이 되어가는 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현재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자본의 요구를 반영하느라 노동계의 원안보다 한참 후퇴한 누더기법이기 때문에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자본가를 강력하게 처벌하지도, 노동자 사망사고를 예방할 수도 없는 법이라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85건의 사고가 발생했지만 고용노동부 수사가 이루어진 사건은 38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수는 12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중 그나마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단 1건에 그쳤다. 자본가와 정부, 여당이 한 목소리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강력한 족쇄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월27일부터 6월28일까지 전국에서 240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25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사고사망자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1분기(1~3월)의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241명으로 전년 동기(238명)보다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중대재해로 82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670명이 숨져 전체의 80.9%를 차지했다. 공사 금액으로 따져도 50억 원 미만의 소규모 현장에서 전체 사망 사고의 71.5%가 발생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대분의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 사고들은 애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법이 아니라 단결로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유명무실한 중대재해처벌법이지만 이마저도 개악하려는 자본가, 정부, 여당의 시도는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조차도 지려하지 않는 호들갑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조치에 드는 비용조차 아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금보다도 더 강력하고 전면적으로 적용된다면, OECD 최악의 중대재해 사망률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제정됐다. 노동자 사망 사고 시 벌금 최대 300억 원, 경영진과 법인, 공무원까지 처벌할 정도로 강력한 법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2008년 기업살인법 시행 이후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2008년~09년 179명에서 2018~19년 147명으로 줄어들어, 추세적인 감소만 확인될 뿐 실질적으로 중대재해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오히려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더 효과적인 방안은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작년 2월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논문에서 노조 조직률이 1% 증가하면 산재 발생률은 0.7%, 산재 은폐율은 4.1%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노조의 힘이 강할수록 설비투자나 교육훈련 등을 사용자에게 강제해 산재 발생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넓게 단결하고 조직화해 현장의 주도권을 움켜쥐는 것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것이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