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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불평등, 누가 세상을 책임질 것인가?

noheflag 2022. 8. 26. 11:07

서울지역에 관측 이래 하루 강수량 최대의 비가 내렸다. 중부지방에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는 재난상황을 불러왔다. 이번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14명, 실종자는 6명에 달한다. 서울시에서만 5천여 채의 주택과 건물이 침수되었다. 9천 대가 넘는 차가 침수피해를 입었고, 1107세대·190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생활하던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가족 3명은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천장까지 잠겨 목숨을 잃었다. 강남의 빈민주거지역인 구룡마을 역시 쑥대밭이 되었다. 하루 아침에 살 곳을 잃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사람들은 당장 내일이 막막한 상황이 되었다. 

심화되는 기후위기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가 빈번해지고 있다. 폭우와 폭염, 가뭄과 혹한으로 홍수와 산불 등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 전 세계 7월 평균기온이 2016년, 2019년과 함께 역대 최고라고 집계했다. 유럽은 40도를 넘는 폭염과 가뭄, 산불에 시달리고 있고, 남반구 호주는 때 아닌 겨울 홍수에 이재민 3만 명이 발생했다. 한국 역시 올 들어 역대 2번째 규모 산불이 울진·삼척의 숲을 태웠고 가뭄피해도 극심했다. 지구 기온이 앞으로 3도 상승할 경우 60년 전 대비 산불과 태풍은 2배, 홍수 3배, 흉작은 4배, 가뭄은 5배, 폭염은 36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난의 불평등


재난은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피해 정도는 같지 않다.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이, 한 나라 안에서는 저소득층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동일한 기후재난이 발생해도 선진국 사망자 수는 개발도상국의 30%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작년 9월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로 사망한 뉴욕 시민의 상당수도 지하에 사는 저소득층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은 재난에 취약한 거주시설을 감내해야 하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처도 어렵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신체적, 사회적 제약이 있는 경우라면 재난에 대한 취약성은 더 커진다. 이들은 피해 상황에만 취약한 게 아니라 재난 이후 회복에 있어서도 더 취약하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이들은 사회적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절차는 복잡하고 많은 경우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재난이 발생한 순간에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조명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정책은 후순위로 밀리거나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들의 일상 회복을 돕고 지지해 줄 사회적 관계망 역시 취약하다는 점도 불평등 구조를 강화시킨다.   

반지하가 문제?


이번 폭우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반지하 주택을 살펴보자. 서울시는 대책으로 반지하에 거주를 못하게 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취약한 거주시설은 지하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폭염 시에는 냉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거나 있어도 전기료 부담에 켜지 못하는 집, 불안한 치안 환경 때문에 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는 집이 야외보다 더 위험하다. 2018년 폭염이 기승을 부렸을 때 폭염 피해자 10명 중 3명이 집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화재가 날 때는 어떤가. 다닥다닥 붙은 빌라나 쪽방촌, 고시원, 화재예방시설이 취약한 노후주택 역시 위험하다. 도시의 저소득층이 사는 대부분의 주거공간이 주거취약시설에 해당한다.
지하에, 옥탑방에, 쪽방촌이나 고시원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은 없다. 비싼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과 같이 비적정 주거 거주자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 특히 청년가구 10명 중 한 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에게 30만원~50만원의 월세는 버겁다. 하지만 이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뿐이다. 2022년도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임차급여 역시 서울시 기준 1인 가구 327,000만 원, 2인 가구 367,000만 원으로 딱 이 수준이다. 제대로 된 대책 없이 반지하 거주를 금지하는 순간 가난한 사람들은 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시 월20만원씩 최장 2년을 지원하는 걸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이 돈으로 지상으로의 이주가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기 상황에서 이익을 챙기는 자들


올해 수방·치수 예산을 지난해보다 약 900억 원이나 삭감했던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폭우 3일만에 대심도(大深度) 빗물터널 건설 재추진, 빗물펌프장 건설 등 총 3조 원 규모 토목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직후 토목, 도로공사 관련주가 급등했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토목사업을 통해 이윤을 끌어 모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기후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폐기되었던 계획을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발표부터 하며 밀어붙이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줄이기 위해서 재개발 재건축을 확대하여 물량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재개발 재건축을 더욱 활성화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오세훈 시장 역시 비슷한 방식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와중에 터진 반지하 주택 문제는 정부와 서울시의 개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에서 공공임대 주택 등 공공주거시설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로 온갖 규제를 푸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건설사들과 부동산 투기세력의 배만 불릴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 사업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누가 세상을 움직이는가?

▲  폭우를 비롯한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부산지하철역사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폭우로 세상이 다 멈춘 순간에도 이를 복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이다. 지하철 곳곳의 물을 퍼나르고 모래와 진흙을 치우고 닦아낸 것은 평균 60세가 넘는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상가와 아파트에 가득 찬 토사를 치우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경비노동자들이다. 끊어진 다리와 도로를 복구하고,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을 고치며, 침수된 차와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일도 모두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출근을 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물건파손 책임의 위험을 안고서도 택배를 배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미끄러운 길을 달려 음식을 배달한다. 출근이 가능한지, 작업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권한이 노동자에게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폭우가 쏟아지는데 배관공사를 하던 노동자는 물살에 휩쓸려 사망했고, 철근절단 작업을 하던 이주노동자는 감전으로 사망했다. 쓰러진 가로수를 정리하던 계약직공무원도 결국 목숨을 잃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험한 일을 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이들이지만 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청소 및 경비 노동자, 산재적용도 안 되는 특수고용노동자, 하청·도급·계약직으로 떠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이 일상인 이주노동자가 이들의 이름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재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아래에 있는 가장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 서민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심각한 피해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정치인들과 언론도 앞다투어 대책마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다 나은 주거환경에서 가족을 돌보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비난 일색이었다. 사망사고를 줄이고자 어렵게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적용된 적이 없다. 도대체 무슨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입으로는 대책마련을 떠들지만 지배계급에겐 이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재난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헌신을 다하는 것도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 없이 이 세상은 단 하루도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는 것을 재난 상황은 명백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반면 가진 자들은 편한 곳에 앉아서 이 재난을 이용해 이익을 챙길 궁리를 할 뿐이다. 참으로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계급 아닌가. 이들에게 사회를 맡기는 일 자체가 가장 위험하고 심각한 재난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