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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가압류, 노조 파괴를 위한 자본의 공격

noheflag 2022. 9. 19. 17:51

대우조선해양이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액은 51일간 손실된 작업시간(75만)에 시간당 가공비 63,113원을 곱해 계산했다. 1인당 평균 95억 원, 연 3,0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 경력 기술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300년 넘게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금액이다. 

예견된 수순


대우조선해양의 지시 하에 선박 건조업무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삭감된 임금을 원상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심지어 자신들은 ‘제3자’라며 교섭은커녕 어떠한 책임 있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측의 태도는 노동자들의 장기농성을 부추겼고, 배의 바닥에 자신을 결박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몰아갔다. 문제를 더 악화시킨 장본인이 대우조선해양 사측인데도 적반하장으로 파업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은 손해가 8,00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투쟁이 끝나자마자 노조 간부들에게 470억 원의 손배를 제기했다. 
정부와 여당 역시 ‘법과 원칙’을 들먹이며 손배소송을 부추겼다. 지난 파업 당시인 7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대국민담화를 시작으로 정부와 여당은 대우조선의 손배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거액의 손배 청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최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노란봉투법을 ‘황건적 보호법’이라며 노동자들을 도적으로 취급하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보수 언론 역시 불법파업에 손배를 청구하지 않으면 불법을 방조하는 것이라며 손배를 옹호하는 입장을 연일 대변하고 있다. 
사측과 정부, 언론의 삼박자 속에서 깎인 임금을 원래대로 회복시켜달라는 하청노조의 절박한 투쟁에 개별 노동자에 대한 손배 가압류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470억 원의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노조파괴의 수단, 손배 가압류

▲ 2019년 손배 가압류 대상자들을 조사한 설문 결과.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경향신문


손배 가압류 제도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지난 6월,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수집한 지난 33년 동안의 손배 가압류 197건(손해배상 185건, 가압류 신청 12건)의 손해배상액은 ‘3,160억 2,865만 원’에 이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소송기간이 길어질수록 원금에 이자가 붙는 것을 감안하면 금액은 훨씬 늘어난다. 쌍용차의 예를 보더라도 2009년 공장 점거파업을 이유로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손배액이 44억5000만 원인데, 지연이자가 붙어 2020년에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손배액은 128억여 원으로 늘어났다. 
노동자들이 갚을 수도 없는 큰 돈을 청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그 돈을 받아 손해를 상쇄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노동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투쟁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 대표적인 사례인 유성기업의 경우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했던 것이 문건으로 밝혀져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노조를 깨기 위해 사측이 의도적으로 파업을 유도한 후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4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갑을 오토텍의 경우에도 두 차례에 거쳐 100억 원의 손배가 청구되었다. 
자본가들은 손배 가압류라는 무기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목숨줄을 틀어쥐고는 손쉽게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켜왔다. 손배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접근해 소송 취하를 미끼로 노조탈퇴나 퇴사를 종용하고, 비정규직의 경우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할 것을 요구하는 등 노조활동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번 거통고 사내하청지회에 대한 손배 소송 역시 하청 노동자들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족쇄를 채우려는 의도가 명확하다. 

노란봉투법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2009년 쌍용차 등 손배 가압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바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만다. 손배 가압류 문제 역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 사이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손배 가압류로 인한 모든 피해를 개인이 감당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손배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는 노란봉투법으로 정리되어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조와 3조를 개정하여 노조의 쟁위활동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개인에게 손배 가압류 소송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노조법 2조 개정의 내용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특수고용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업무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와 ‘그 사업의 노동조합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까지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노조법 2조가 개정된다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아 대우조선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교섭과 쟁위행위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노조법 3조 개정에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넓게 인정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해배상 청구를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손배 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법 통과는 만만하지 않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가들에게 손배 가압류는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거나 파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한 무기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내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은 19대,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진전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리고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에게 방울달기를 맡길 것인가?


민주당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서는 이유는 反윤석열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데 있다. 윤석열 정부의 反노동정책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민주’, ‘노동’의 이미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이다.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문건으로 손배 가압류 문제가 이슈가 되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손배가 노조파괴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은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이 때 손배 가압류가 협상용 카드에서 노조압박수단으로 진화했고, 노조에 대한 청구에서 개인에 대한 청구로, 당사자에서 가족, 신원보증인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배달호 열사, 김주익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민주당의 민낯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이후 촛불투쟁의 후광을 업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다수였던 민주당은 의지만 있다면 노란봉투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진척되지 못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노동자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정의당 역시 더 많은 의석수 확보를 위해 노동자들의 정책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자본가, 지역사회 기반의 정치로 전환하면서 지지 세력을 다 잃어버렸고, 이제 와서 親노동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민주당과 정의당이 주도하는 노란봉투법은 결국 국민의힘과의 타협 과정에서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문제투성이 법이 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차례 경험했듯이 말이다. 

 

없는 자들의 연대로!


결국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족쇄처럼 달라붙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할 힘은 노동자계급 말고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운 동지들에게 가해진 손배 가압류의 고통을 오롯이 개인이 짊어지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동지의 손을 맞잡자. 오늘은 내 문제가 아니지만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나의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돈으로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저들에 맞서 돈 없는이들의 굴복할 줄 모르는 단결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자.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