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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인력난, 이주노동자로 해결하려는 자본가들

noheflag 2022. 9. 19. 18:16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숙련공 부족

▲ 조선업 고용인력 추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조선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만 명이 넘었던 인력은 10만 명이 안 되는 수준으로 줄었고, 생산능력도 약 25% 정도 감축(1,600만 CGT → 1,200만 CGT)됐다. 중소조선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블록공장도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곳이 거의 없게 됐다. 
그러나 작년부터 조선업 발주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가혹한 구조조정의 결과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조선사들의 수익성 개선에 엄청난 장애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호황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부족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2022년 9월까지 2021년 연말보다 9,500명이 추가로 더 필요하고 2023년 6월에는 1만 명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인력부족문제는 이미 잘 알려졌다. 그런데 실제 생산현장에서도 그런가? 물론이다. 아직 본격적인 생산증가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작년부터 고용확대를 위해 정부, 지자체, 조선사들이 앞장서 각종 행사를 열었지만 부족한 인력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일할 사람이 없다보니 수시로 공정지연이 발생하고 돌관팀이나 외주업체 인력을 높은 일당을 주고 급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조선업 인력부족문제는 자업자득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부족한 이유는 정부와 조선업 자본가들이 무리하게 강행한 구조조정 결과로 자업자득이다. 조선업 경기순환은 이미 예측되어 있었고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지만 노동력 문제는 안일하게 대응했다. 어차피 조선소 생산인력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인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고용이 가능할 것이라 안일하게 판단했다. 
임금삭감은 물론 하청업체 폐업을 통한 감원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하청노동자들은 치를 떨며 조선업을 떠났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위험한 현장에서 십수년을 일한 숙련공들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임금수준이 추락하면서도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용접공)의 소득금액증명원


조선업에서 일하던 대부분의 하청노동자들은 건설업이나 육상플랜트 쪽으로 이동했다.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잘 되고 임금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이들이 조선소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직 조선소 현장에 남아있는 하청노동자들조차 다른 현장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자본가들의 대안, 이주노동자 대규모 투입


정부와 조선업 자본가들은 숙련공부족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노동력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자들이 내놓은 답이 이주노동자 대규모 고용이다. 정부는 지난 4월 19일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활동(E-7)비자 발급 지침’을 개정해 시행했다. 용접공(연 600명)과 도장공(연 300명)의 연 쿼터제를 폐지하고 업체당 내국인 수의 20% 안에서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용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단순 계산으로 4,428명까지 고용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비전문인력인 E-9(고용허가제) 쿼터를 대폭 확대하고 신속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서 발급을 서두르기로 했다. 숙련공은 E-7비자로, 비숙련공은 E-9비자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를 대폭 늘려 해결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대책이다. 

 

▲ 제4차 비상경제장관회의 「최근 구인난 해소 지원방안」 중, 2022.08.08.


그런데 이는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인력수급대책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민청 설치다. 노동력 부족은 조선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미 농·어업과 중소영세사업장에서의 노동력 부족은 심각해지고 있다. 더구나 출산율의 엄청난 저하로 고령화와 생산가능인력의 절대적 부족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으며 대안으로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침해되는 인권문제는 오랫동안 사회적 문제였다. 그런데 그동안은 들은 척도 안 하다가 노동력 부족문제가 심각해지고 저임금노동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보니 이제야 대안이랍시고 ‘이민청’설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대안이 될 수 없는 대안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고 한국국적 취득을 유도해 정주숙련노동자를 확보하겠다는 정부와 자본가들의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규모로 양성하는 방법이기에 사회적 불안은 더 높아질 것이 뻔하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타 제조업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고 산업재해 위험성도 높다. 게다가 임금수준도 10여 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 당장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다해도 이들이 조선업에 남아 있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도 대형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들이다보니 다른 산업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즉, 이주노동자도 어차피 저임금노동자이기 때문에 더 좋은 노동조건을 찾아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대규모 고용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각 대형조선소에는 눈에 띄게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총고용 규모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이는 내국인의 이탈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조건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저임금노동력을 이주노동자로 보충하려다보니 발생하는 아이러니다. 이렇다보니 당분간 조선업에서의 노동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건 개선없이 노동력 부족 해결은 불가능


조선업의 인력난은 이주노동자 대규모 고용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임금인상 압력을 완화해줄 방패막이로 이주노동자를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조선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더라도 임금인상 수준은 높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최근들어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빠르게 4~5년 전으로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 수준의 회복이지 현재 조건에 맞는 인상이 아니다. 폭등하는 물가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저임금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의 움직임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조차 저들이 자발적으로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최대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력을 오랫동안 활용해 이윤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조선업 내에서 스마트야드, 생산설비의 자동화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도 고정자본의 비율을 높여 이윤구조를 악화시킬 뿐이고 임금인상 압력을 막는 요인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생존조건을 위해 싸워야 한다. 아무리 인력난이 심각해진다해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는 노동조건 개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언제나 다른 대안인 저임금노동력 투입으로 인력난을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