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 자회사 전환 추진자회사는 ‘다른’ 선택이 아니라 ‘틀린’ 선택이다
지난 8월 18일 현대모비스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통합계열사 출범계획”을 통해 기존 사내하청 방식으로 운영해 온 국내모듈과 부품 사업 영역을 분할해 생산 전문 자회사 2곳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가 지분 100%를 출자하는 자회사 설립 안건은 10월 임시이사회를 통해 승인하고, 11월 자회사를 공식 출범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의 계획대로 자회사 설립이 추진된다면 현재 13개 하청업체는 사라지고 기존 자회사 3곳을 포함해 5개의 생산 전문 자회사 체제가 된다. 하청업체에 소속된 8천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자회사로 전환된다.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설립 결정은 현대모비스와 현대모비스 하청업체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소속의 현대모비스 하청지회 8곳이 참여한 미래차위원회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산업전환 시기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여러 개의 하청업체로 흩어져 있는 제조 기술력을 통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다.
갑론을박
자회사 설립 추진 소식이 나오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합의에 참여한 현대모비스 8개 하청지회는 8월 26일 “다른 길이지만 같은 곳을 향하겠습니다“라는 입장문을 내고 정규/비정규직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막고 분신과 자살, 장기투쟁 등 극단적 투쟁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회사 추진에 반대해 온 현대모비스 천안·아산지회와 금속노조 등은 현대모비스 생산부문 자회사 전환 추진은 그간 자본의 불법파견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꼼수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노총 소속의 현대모비스 충주노조도 소송을 이어갈 것이라며 자회사 추진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불법파견 소송에 따른 부담이 증가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고용불안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자, 최근 몇 년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으로 자회사 전환 방안을 도입해 왔다. 인천국제공항,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등의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SK브로드밴드, 현대위아, 현대제철 등 민간부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자회사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
자회사 전환을 두고 한 편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법이라며 선택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자회사 전환을 두고도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데, 자회사 전환이 누구에게 더 이익인지 살펴보면 그 답은 분명해진다.
꿩 먹고 알 먹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 자회사 전환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정부와 자본이 자회사 전환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법파견 판결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부담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파견 소송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산업, 고용형태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자, 문재인정부는 직고용뿐만 아니라 자회사 전환도 정규직화 방식의 하나로 공식화했다. 전환 과정에서 불법파견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부제소 합의를 채용의 전제로 강요하며 법적인 책임을 회피해왔다.
현대모비스 자본도 자회사 전환이 “불법파견 이슈에 따른 리스크 해소”가 주요 목적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며,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불법파견 소송의 취하와 부제소 합의를 채용조건으로 들이밀고 있다. 부제소 합의 시 800만원, 소 취하 시 45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스스로 불법파견 범죄에 면죄부를 발급받으려 한다.
비용적 측면에서도 자회사 전환은 자본에게 유리하다. 불법파견으로 판결이 나서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자회사로 전환하면서 별도직군을 만들어 비정규직 임금수준을 유지하거나, 약간의 비용만 지출해 정규직과의 격차를 두는 방식을 통해 정규직 전환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해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의 경우에는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복지 처우를 보장한다고 밝혔지만, 신규입사로 하청업체 근속은 인정되지 않고 호봉승급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제철 등 다른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전반적인 임금도 많아야 정규직 대비 70~80% 수준에 머물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나지 않는 장사가 분명하다.
게다가 눈엣가시 같은 노동조합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자본에게는 매력적이다. 자본이 초과이윤을 위해 저질러 온 불법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소송은 물론이고 목숨을 건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자본에게는 달갑지 않은, 반드시 없애고 싶은 존재이다. SK브로드밴드, 현대제철 등의 사업장에서 그러했듯이 자본은 노사협조적인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투쟁적인 노동조합의 힘을 무력화해 왔다.
추가적으로 현대모비스 자본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자회사 전환을 활용한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이지만, 정의선 회장의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순환출자 고리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기업 가치를 자회사 설립으로 떨어뜨려 상속세 납부 부담을 줄이는 등 향후 있을 승계 작업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자회사 전환은 ‘틀린’ 길이다
그에 반해 자회사 전환으로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되어 왔다. 정규직 전환과 같은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자회사 전환이 이뤄졌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당시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회사는 ‘덩치만 커진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자회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원청 자본이 고용보장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자회사로 전환하면 고용안정이 비정규직일 때보다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청업체가 자회사로 전환된다고 해서 있지도 않던 독립적인 기술력이나 별도의 설비가 생겨날 리도 없다.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원청의 일감이 줄어든다면 원청 자본의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자회사의 일감을 줄이거나 내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이렇게 된다면 자회사가 버텨낼 수도 없다.
자회사 전환에 합의한 현대모비스 8개 지회의 일부 간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비정규직 투쟁을 “낡은 노사관계”로 명명하고 “불법파견 소송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 카드”라며 비판했다. “극한 노사대립”을 벗어나 “노사가 같이 생산안정, 고용안정, 전반적인 비전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비정규직 투쟁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자신들을 존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주장은 노사가 대립보다는 화합을 해야 한다는, 자본과 노동자가 함께 공생하기 위해 노동자의 양보도 불가피하다는 전형적인 ‘노사협조주의’의 논리일 뿐이다. 자본의 불법과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만들어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들의 주장은 ‘다른’ 길이 아니라 ‘틀린’ 길이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