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이 드러낸 어두운 그림자 - 이주노동의 참혹한 현실
연인원 400억 명 이상이 시청하는 인류 최대의 스포츠 대회라 불리는 카타르월드컵이 끝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온갖 미디어는 월드컵 관련 기사로 넘쳐났고, 평소 축구에 관심이 있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대화에서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이번 카타르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축구 경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회 시작 전부터 성소수자여성 인권과 차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몇몇 유럽 국가대표팀이 이에 대한 항의와 반대의 뜻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준비했으나, FIFA의 강력한 제재로 무산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카타르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살’과 ‘혹사’에 가까운 처우를 받아야 했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문제는,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같다.
6,751명 VS 3명
카타르월드컵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개최됐다. 중동의 뜨거운 날씨를 감안해 경기장과 관람석에 냉방이 가능한 현대식 축구장을 새로 짓거나, 기존 경기장을 개조하거나 증축했다. 관람객을 위한 호텔과 쇼핑몰, 리조트를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공항, 지하철, 도로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대규모 공사도 진행됐다.
이를 위해 카타르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1,800억 달러(약 243조원)보다 많은 2,200억 달러(약 300조원)의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었다. 2020년 기준 카타르의 인구는 288만 명이고, 이중 카타르 국적자는 28만 명에 불과하다. 20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월드컵 인프라 건설에 동원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영국 <가디언>은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2010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6,75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 외에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들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단체인 <국제 엠네스티>는 카타르 정부가 집계한 이주노동자 사망자수를 근거로, 같은 기간 1만 5,0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공사과정에서 현장 사고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3명뿐이라며 반박했다. 카타르 정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모든 죽음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1급 의료보호를 제공하고 있고, 제도 개선을 통해 사망률이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끊이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일을 하든, 잠을 자면서든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나세르 알 카터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장), “현장 노동자들이 오히려 보람을 많이 느낄 것”(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라는 망발을 내뱉어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연사 VS 학살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월드컵과 관련해 사망했는지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고, 정보를 공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나마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상당수가 심정지나 호흡 장애로 인한 ‘자연사’로 처리됐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카타르로 오기 전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이 없어야 입국할 수 있었다. 이런 젊고 건강한 노동자들 수천 명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적으로 죽었다는 카타르 정부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수작일 뿐이다.
카타르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열렸다. 중동의 살인적인 날씨로부터 선수들과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을 위한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더위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한 인권단체가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한낮에 50도가 넘는 작업현장에서 하루 10~12시간 이상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며 일했으며, 안전모와 같은 기본적인 보호 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기숙사에는 에어컨은 없고, 전기나 수도시설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2019년 몇몇 국가의 전문가들이 2009년~2017년 사이에 카타르에서 네팔 노동자의 사망 증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571명 중 최소 200명이 극심한 열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들은 “적절한 보호 조치가 있었다면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뜨거운 온도에 노출된 뒤 며칠 만에 심장마비와 장기부전을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이런데도 이들의 죽음을 ‘자연사’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자다가 사망에 이른 것은 카타르 당국의 주장처럼 ‘자연사’가 아니라, 사회적 ‘타살’ 혹은 ‘학살’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의 외주화가 보여주는 참혹한 현실
1인당 GDP 82,884달러(약 1억 758만원), 자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월 500~600만원을 지급하는 부자나라 카타르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생명을 담보로 주어졌던 대가는 하루 1만3천 원, 한 달 약 32만 원이었다. 이마저도 인력중개업체에 3~6개월 치 월급을 뜯기고, 임금을 체불당하거나 계약된 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사기계약에 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에 대해 항의라도 할라치면 강제추방당하거나 구금되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카팔라 시스템’(후원자 제도)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일터를 바꾸는 것도, 출국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용주에게 여권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사실상 ‘노예’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은 비단 카타르에만 국한된 현실은 아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카타르의 카팔라 시스템과 비슷한 고용허가제로 인해 임금을 체불당하거나, 고용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는 등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이직을 하거나, 회사를 선택할 자유도 박탈당하고 있다. 한겨울에 비닐하우스로 된 기숙사에서 지내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나라, 한해 1,000억원이 넘는 체불임금이 발생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카타르 이주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주노동은 자국노동자로 채워지지 않는 노동력의 공백을 싼 값에 메우려는 ‘노동의 외주화’이다. 자본가들은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자를 고용해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자국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일자리가 “싼 노동력, 노예와 같이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놓인 참혹한 현실을 안타깝게만 여기거나, 이들과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보장, 충분히 휴식할 권리와 일하다 다치지 않을 권리보장과 같은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노동권이 보장되어야만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자국노동자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