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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인력난 해결하겠다며 이주노동자 확대 밀어붙이는 정부

noheflag 2023. 2. 11. 16:43

한국조선업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전세계 대비 수주실적은 2018년 이후 최대를 기록해 37%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수주량으로 보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이나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시장 점유율은 세계 1위다. 수주잔량 기준으로 보면 세계 1위에서 4위까지 한국조선소가 차지하고 있다.

 

▲ 출처 : <고부가 친환경 선박 시장 점유율 1위 달성>,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2023.01.05.


그러나 한국조선업의 고공행진에도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인력난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일할 사람이 없다는 조선소에서 인건비 인상은 쥐꼬리만큼만 이뤄지고 있다. 낮은 임금, 고강도 노동, 고용불안이 인력난의 주요 원인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인력난 얼마나 심각한가?

▲ 출처 : <조선해양산업 인력지원방안 연구>,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2022.10.24.


작년 10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조선해양산업 인력지원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국 조선인력은 2027년이면 2022년 대비 4만3000명(연구·설계 인력 4000명, 생산인력 3만7000명, 나머지는 기타)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산인력의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다. 생산직에서 정규직 채용은 퇴직자 수준도 되지 않는다. 

2022년 12월에 조선·해양산업 인전자원개발위원회에서 발간한 <2022년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에는 작년 상반기 중대형조선소 전체에서 직영기능직 채용은 경력직 포함해 98명이 전부였다. 앞으로 생산인력 3만700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면서 정작 정규직 채용은 100명도 하지 않았다. 

▲ 출처 : <2022년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 조선・해양산업 인전자원개발위원회, 2022년 12월


대표적인 중대형조선소 5곳의 수주잔량을 보면 3년 이상의 수주잔고를 확보했다. 2023년이 2달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수주실적도 상당하다. 현대삼호중공업 신현대 사장은 앞으로 2달 안에 올해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따라서 일감은 계속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기존에 조선소에서 일했던 숙련공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임금이 너무나 더디게 오르고 있고, 이들이 자리잡은 반도체공장, 발전소, 플랜트 현장에서는 높은 임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강도, 안전까지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동화공정을 확대하고 로봇을 투입하고 싶어도 당장은 필요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없다. 인력을 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인 임금인상은 자본가들로서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급한 물량을 쳐내기 위해 높은 단가를 주기도 하지만 이들은 상용직들이 아니라 단기간 고용하는 물량팀일 뿐이다.

저임금/노예 노동력, 이주노동자 확대에 혈안인 정부


심각한 인력난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인력부족이 심각하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면 타업종으로 빠져나간 인력이 돌아올 텐데 원하청 자본가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대신, 조선업 자본가들은 인력난이 심각하다면서 정부에 주52시간제 완화와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를 위한 비자절차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자본가들의 요청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2022년 4월 19일 산업부와 법무부는 특정활동(E-7) 비자발급 지침을 개정해 용접공 600명, 도장공 300명이었던 조선업 쿼터제를 폐지해 내국인의 20%까지 이주노동자 고용을 가능하게 했다. 같은 해 7월 25일엔 이정식 노동부장관이 조선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 신속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8월 8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노동부는 <최근 구인난 해소 지원방안>으로 비전문인력비자인 E-9 쿼터를 6000명 추가 확대하고 E-9의 E-7 조선업 별도 쿼터를 2023년부터 신설하기로 했다. 12월 28일 법무부는 숙련기능인력 비자(E-7-4) 연간 발급 인원을 2천명에서 2023년에는 5천명으로 확대하고, 임금요건도 3년간 한시적으로 1인당 국민 총소득(GNI)의 80%에서 70%로 낮춰주기로 했다. 조선용접공 고용기업의 ‘외국인 초청 비자’신청 기준도 대폭 낮춰 기존 설립 후 3년 이후에서 1년으로 완화했다. 2023년 1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산업의 수주실적이 개선되고 있으나 2023년 말까지 생산인력이 14000여명이 부족하다’며 법무부와 함께 외국인력 도입 처리절차를 5일 이내로 단축하고,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을 2년간 한시적으로 내국인의 20%에서 3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 3일 법무부는 ‘특정활동(E-7) 자격 조선 용접공 직종의 사증 및 사증 발급 인정서 발부 등 요건’을 또다시 완화했다. 조선업 용접공으로 E-7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경력 2년 이상이 조건이었는데 이를 2025년 1월 6일까지 한시적으로 없애고 기량 검증 시험만 통과하면 되도록 했다. 

▲ 정부의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 지원 정책


윤석열 정부의 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법무부 등 관련 정부부처들이 ‘인력난’을 해결하겠다며 한 몸이 되어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고용확대가 아니라 임금요건 완화다. 즉, E-7 비자의 임금요건이 완화되면서 숙련이 있든 없든(E-7이든 E-9이든) 사실상 최저임금으로 고용이 가능해졌다. 
이는 조선업 자본가들이 그토록 바라던 바다. 내국인 숙련인력을 고용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아까운 자들에게 최저임금 노동자, 그것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박탈되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손쉽고 빠르게 고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력난을 외치던 자들의 속내,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게 해달라!


‘심각한 인력난’이란 아우성이 과장됐다고 한 이유는 조선업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주실적 개선과 선가 상승으로 뻔히 대규모 흑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조선업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만큼은 최대한 억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해야 되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고용에는 법적 절차가 까다롭다. 모든 언론을 동원해 조선업 인력난을 과장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국인 숙련공을 구하지 못하는 조선업이 인력난을 해소할 방법은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명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자본가 정부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임금요건 완화, 채용절차 간소화, 쿼터 확대 등 자본가들의 소원수리를 한꺼번에 해결해주고 있다. 
물론 이조차도 부족한지 고령층을 핵심 노동력으로 편입시키려는 준비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월 27일 <고령층의 숙련과 경험이 미래성장동력으로 이어지기 위한 고용전략>을 내놓으면서 50~60대를 핵심 노동인력으로 만들 계획을 내놓았다.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계속고용 로드맵’을 올해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한다. 

▲ 출처 : <고령층의 숙련과 경험이 미래성장동력으로 이어지기 위한 고용전략>, 관계부처합동, 2023.01.27. 저학력 고령층일수록 취업자 비중이 높고, 60세 이상의 72.5%가 생활비를 자부담하고 있다는 통계청 조사결과로 한국의 고령층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층이" 많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조선소 현장에는 지금도 70대 하청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퇴직자도 다시 하청업체로 입사해 정년도 없이 일하고 있다. 60세가 넘어 퇴직을 하고 쉬어야할 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현실을 ‘고령자도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며 핑계로 대고 있다. 고령자들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이었든 아니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처럼 정부와 자본가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해서든 확보해 이윤을 늘리려고 한다. 
2015년부터 지속된 조선업 구조조정 시기 노동자들은 모든 손실을 떠안았다. 임금이 삭감되고 각종 복지가 축소되었으며 정규직은 희망퇴직으로 하청노동자는 폐업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조선업이 회복되고 있는 지금 또다시 저임금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자본가들 때문에 노동자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작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드러난 다단계 하청고용구조를 해결한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들고 나왔다. 정규직과 하청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문제라며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 임금, 복지 수준을 하향평준화해야 된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자본가들의 의도는 조합주의적 대책으로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다. 오히려 ‘이중구조’라는 프레임을 강화시킬 뿐이고, 저임금 하청노동자의 분노가 조직된 정규직 노조로 향하게 할 뿐이다.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의 만들어놓은 ‘이중구조’라는 프레임을 깨고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것,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