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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급망 재편, 더 큰 위기로 빠져드는 길! 윤석열 정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noheflag 2023. 5. 17. 09:12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기밀문건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155mm 포탄 30만 발의 수출 요청에 대해 고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윤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하는 문제 제기는 2022년도에도 있었다. (2022년 11월) 미국에 수출하는 155mm 포탄 10만 발이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것이라고 추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윤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155mm 포탄 50만 발을 대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포탄 또한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윤 정부는 미국에 155mm 포탄 10만 발을 수출하면서 포탄의 ‘최종사용자’를 미국이라고 한정했다. 그러나 계약서의 이런 ‘문구’가 미국으로 건너간 포탄이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에 대여하기로 한 50만 발의 포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지원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우매한 생각일 것이다. 외교상의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들을 모두 제거하고 보면 사실상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살상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

윤 정부는 지난해에는 수출된 포탄이 미국을 우회해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우크라아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인한 셈이다. 말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윤석열은 (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 학살, 전쟁법 위반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말로만이라도 그들이 유지했던 ‘인도적 지원’이라는 ‘원칙’을 변경한 것이다.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전쟁법 위반’이라는 ‘조건’을 달아 ‘명분’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변경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게 됐을까? 


정치는 경제의 반영이다. 최근 윤정부가 미국 쪽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것은 경제적 손익계산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 핵심산업들에서 최대 경쟁국(우려국가)인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들 산업에서 바이든 정부는 완제품은 물론 중국산 ‘원자재나 부품’을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 이들 제품들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될 때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세액공제나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에 첨단(특히 반도체) 설비나, 기술이 유입되는 것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일본·대만’, ‘프랑스·영국·독일(유럽연합)’과 같은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조차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경제관계에서 얻었던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 미국중심의 공급망에 더 깊숙이 편입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시장에서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세액공제나 보조금 혜택을 포기하고 미국의 우려국들 특히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기존처럼 유지할지를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할 판인 것이다. 일본, 한국, 대만은 미국 경제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는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의 반도체 칩4동맹은 이런 행보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네델란드와 함께 미국 정부가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가 수출되는 것을 규제하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을 재무장시켜 동북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무기와 군수물자를 일본에 제공해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더 긴밀히 협조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윤 정부가 다수의 한국 국민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해 ‘제3자 배상안’을 제안했던 배경이다. 물론 윤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산업에서의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의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과학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불이익을 덜 받게) 미국 정부가 선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근래에 윤 정부가 국민들의 욕을 얻어먹으면서 일본 정부에 아부하고,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행위에 대해 오히려 미국 정부의 심갸를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하고, 푸틴 정부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보복할 것이 자명한데도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을 변경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져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것을 알면서도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것에 반대한다(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입장을 밝힌 것은 무지나 무원칙이 낳은 외교적 실수가 아닌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반도체업체들 그리고 러시아에 진출한 가전업체들과 자동차업체를 중심으로 다수의 기업들이 윤정부의 조처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윤정부가 값싸게 입을 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윤정부는 한국 자본가들의 계급적인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며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너무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서 유연성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외교적으로 대단히 미숙한 방식으로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윤 정부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사수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미국 정부의 압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정부는 미국에 찰싹 붙어서 이득을 얻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시진핑 정부와 경제적 정치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과 형성된 역사적 관계를 재조정할 대담한 구상을 하지 않고서 윤 정부가 미국의 미움을 사는 선택을 할 여지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아직까지는 특정산업에 한정해 있지만)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대 진영으로 세계를 분할하고 있는데 윤 정부가 중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미국의 압도적 힘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윤 정부는 미국의 세계 재편 계획에 편입해 들어가면서 반도체 등에서 무서운 기세로 한국을 따라잡고 있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기술적으로 중국을 따돌리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물론 이런 선택은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에게는 강요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선택이 민주당 정부에 강요되었다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좀 더 세련된 속임수가 동원되었을지 모르지만) 결과가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한국 자본가계급의 모순 반영


윤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다룰 의제로 제안한 첫 번째 항목은 첨단산업공급망협력이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정부와 각종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것이 윤 정부의 첫 번째 목표였다. ‘반도체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이들 산업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자국에 이 산업들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마련한 계획인 ‘반도체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혜택을 입으려면 윤 정부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가야 한다. 윤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이것을 첫 번째 의제로 제안하고, 이재용(삼성전자), 정의선(현대차), 최태원(SK), 구광모(LG) 등 4대그룹 총수, 재벌그룹들의 회장, 부회장들을 대거 대동하고 미국행에 나선 것은 단순히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윤 정부에게 다른 무엇인가를 선택할 여지가 대단히 협소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거대한 경제력과 고도의 기술력으로 한국, 일본, 대만, 유럽연합 등 자신들의 동맹국들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일본·대만’보다는 미국에 덜 의존적이기 때문에 이들 나라들보다는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중국의 시진핑을 만난 협력을 다진 것은 아직까지 중국으로부터 더 얻어낼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원자재 등에서 중국에의 의존성을 줄이려고 핵심원자재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독일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화학물질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법의 제정을 고려하면서 손익계산서를 작성 중이다.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거스르면서 일본의 기시다 정부에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윤정부는 한일정상회담에서 거의 얻어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윤 정부는 더욱 더 한미정상회담에서 뭔가를 얻어내야 했다. 그러나 절박한 심정으로 4대 그룹 총수 및 6대 경제단체장 등 122명의 경제 사절단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윤 정부의 성적표는 너무 별볼일이 없었다. 

(넷플릭스 등으로부터) 59억 달러(7조8천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한미의 기관·기업들 간 5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고작이다. 2022년에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편승하고자 미국에 투자한 자본이 1000억 달러(130조 원)에 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59억 달러의 투자유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치다. MOU라고 하는 것도 정식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은 전혀 없다.
 


2024년에 있을 미 대선에 재출마할 바이든이 미국 유권자들을 실망시키면서 반도체 과학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후퇴시켜 윤 정부 손에 뭔가 듬직한 것을 들려보낼 가능성은 애초에 별로 없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에서 바이든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공급망 재편과 미국 내 투자유치 계획은 당분간 한국 자본가계급에게 손실을 강요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한국 자본가계급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편입해 들어가고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 미국, 일본, 대만과 함께 반도체 칩4동맹을 결성하고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한국 정부가 급속하게 편입해 들어가자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산 반도체의 통관 검사를 강화함으로써,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반도체의 원산지를 전수조사함으로써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시진핑 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윤 정부가 친미 행보를 강화할 때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다. 이런 손실을 감안하면서 한국 자본가계급은 미국에 더욱 밀착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런 판단을 윤 정부는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만 요란했던 한미정상회담은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런 모순된 처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공급망 재편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의 결과


현상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의 공급망 교란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악화되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욱 심화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의 공급망 교란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탓이다. 공급망 재편이란 원자재, 기술, 자본 등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경쟁의 결과다. 
이런 경쟁의 결과는 대단히 파괴적이다. IMF는 세계가 “미국 진영, 중국 진영, 인도·인도네시아 등 비동맹국으로 쪼개진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전 세계 경제성장 규모가 5년 내 1% 하락하며 장기적으로 2%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IMF는 세계경제가 신냉전 구도로 양분되면 최악의 경우 글로벌 GDP가 7%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가 더욱 가난해진다는 말이다. 이 피해는 특히 가난한 국가들에 집중될 것이다. 블록화로 인해 중국 진영에 속한 저개발국가들, 신흥개발국들의 피해가 특히 클 것이지만, 미국 진영에 속한 나라들의 피해도 막심할 것이다. 한국, 일본, 독일과 같은 나라들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크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윤 정부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면서도 이득보다는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공급망 재편에 들어가는 비용을 한국과 같은 자신의 우방국가들에 떠넘기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침체되고 그에 따라 경쟁이 더욱 격화되면 각국 자본가계급은 줄어드는 이윤을 만회하기 위해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윤감소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간을 늘리고, 연금법을 개악해 노동자들의 부담을 증대시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쟁의 위험도 더 커질 것이다. 경제적 충돌의 결과가 군사적 긴장을 더욱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대만을 두고 미중간 군사적 대결이 더욱 커지는 것도 이런 측면을 반영한다. 일본이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간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해 핵 및 전략 기획을 협의키로 한 것도 경제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국이 내놓는 정책은 세계를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경쟁의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세계가 이런 위험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