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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로 드러난 조합주의의 민낯

noheflag 2023. 5. 25. 11:02

지난 4월 2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원회의를 거쳐 “ⅰ) 함정 부품 견적 가격을 차별하는 행위, ⅱ) 기술정보 제공을 차별하는 행위, ⅲ) 경쟁사업자의 영업비밀을 계열회사에 제공하는 행위 금지” 조건으로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019년부터 인수하려고 했으나 2022년 1월 EU의 기업결합 불허로 물거품이 된 후 대우조선은 결국 한화로 흡수되게 되었다. 한화는 방위산업에서 함정부문까지 품에 안으며 육해공 모든 부문에서 국내 최대 방위 사업자의 지위에 올랐다. 
대우조선 매각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자본들의 독점화가 강화된다는 점은 물론 조합주의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화-대우조선해양 합병조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시정조치

무조건 승인을 요구했던 거제지역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고자했을 때 대우조선지회를 비롯한 노동조합들과 시민단체들은 상당한 우려를 표했었다. 그러나 한화에 대해서는 우려보다 기대가 더 컸었고, 공정위의 승인 이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분위가가 지배적이다. 
현대중공업보다 한화가 인수하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한편으로 현대중공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 몫 한다. 현대중공업이 거침없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던 전력이 있는데다 폭력적인 노무관리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선종이 겹치는 동종업계로의 합병은 구조조정이 필연적일 것이고 이는 일자리 문제와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이 조건부로 승인된 후 거제지역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시민단체인 ‘대우조선해양의올바른매각을위한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거제범시민대책위)도 조건부 승인은 아쉽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대우조선지회는 조건부 승인에 대한 우려에 방점을 찍으며 현대중공업에 협력적 경쟁관계를 요구했다. 
거제지역의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노동조합은 공정위가 무조건 승인해주기를 요구했으나, 현대중공업의 요청대로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 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울산지역은 정반대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을 환영하고 있다. 

 

한화와 현대중공업의 치열한 신경전


한화는 작년 12월 19일 공정위에 대우조선과의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이후 해외 경쟁당국들은 2월 튀르키예 승인을 시작으로 속속 승인결정을 내렸다. 3월 31일 EU를 마지막으로 해외 7개 경쟁당국 모두가 승인을 했지만 한국 공정위는 결정을 내지 않고 있었다. 
이때 한화는 본격적인 여론전을 시작했다. 뉴스토마토라는 인터넷 매체에 의해 폭로된 바에 따르면 4월 6일 한화는 특정 언론들에 HD현대가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를 방해한다는 내용의 보도 청탁을 했다. 보도 청탁 내용 중에는 HD현대가 공정위에 총 4차례나 한화와 대우조선 기업결합에 대해 이의제기를 한 사실이 나온다. 물밑에서부터 HD현대와 한화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함정부문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유리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벌이는 지저분한 다툼은 자본주의 경쟁에서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방산부문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 한화에 함정부문에서의 경쟁력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현대중공업의 방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한화가 HD현대의 방해 행위를 폭로하고, 대우조선의 정상화를 미끼로 거제지역의 민심을 모아 공정위를 압박하려는 여론전을 펼친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 출처 : 뉴스토마토, 2023.04.13.

자본의 경쟁에 빨려든 노동조합


경쟁관계에 있는 자본 간의 지저분한 암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 간의 경쟁에 의도하든 하지 않든 빨려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의식이다. 회사와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키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자본 간의 경쟁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 좌 : 4월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 중인 현대중공업지부와 정의당, 우: 4월 13일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진행한 현대중공업지부


이런 일이 이번에도 벌어졌다. 한화의 보도 청탁이 폭로되기 직전인 4월 11일 현대중공업지부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방산부문에서의 독점적 지위에 있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인수하게 된다면 불공정 거래행위가 진행될 수 있고, 이는 현대중공업, HJ중공업, SK오션플랜트(주)의 영업에 막대한 차질과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공정거래가 보장되는 대책을 요구했다. 13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구안 전달과 1인시위까지 했다. 여기에 정의당과 진보당이 호응해 거리 현수막까지 게시했다. 

▲ 좌 : 4월 10일 거제범시민대책위의 거제시청 기자회견, 우상 : 4월 12일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항의집회와 촉구문 전달하는 거제범시민대책위, 우하 : 4월 21일 거제시청에서 1만인 감사원 감사청구를 예고하는 거제범시민대책위의 기자회견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구 국회의원(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뒤질세라 공정위에 무조건 승인을 촉구했다. 거제범시민대책위는 4월 10일 거제시청에서 '공정위의 조속한 승인'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12일엔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기업결합을 조속히 조건없이 승인하라"고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고 촉구문을 전달했다. 4월 21일에는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와 대우조선 기업결합을 조속히 조건없이 승인하라고 요구하며 시민 1만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청구 할 것임을 밝혔다. 이틀 전인 4월 19일 대우조선은 이미 감사원에 방위사업청을 감사해달라는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2020년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몰래 촬영한 대우조선의 개념설계자료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있었음에도 방위사업청은 현대중공업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한화-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진흙탕 싸움은 소위 진보정당이라는 진보당, 정의당을 포함해 여야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동조합까지 합세하는 형국이 됐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는 양립할 수 없다


한편에선 고용불안(현대중공업)을 우려하며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고(조건부 승인), 다른 한편에선 조속한 경영 정상화(대우조선)를 외치며 무조건 승인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모습은 조합주의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예고편 같다. 
현대중공업 측이 요구한 대로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면 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부 원하청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해소됐는가? 자본의 경쟁논리대로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 또다시 수주경쟁에서 회사가 이겨야 되고 그래야만 잠시 동안 노동자들에게 일거리가 생긴다.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한다해도 승자와 패자가 나뉘며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 굴레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대우조선도 마찬가지다. 한화와의 기업결합이 승인되어 이제 한화오션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조선사로 태어난다.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영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인데 대우조선의 원하청노동자들에게 장밋빛 미래만 있겠나? 함정수주 경쟁에서 패배한다면 일거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하나? 대우조선 경영진과 한화가 말하는 ‘경영정상화’만 되면 고용과 임금이 저절로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환상이다. 왜냐하면 경영정상화의 핵심은 수익이고, 이는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의 이해는 양립할 수 없다. 고용과 임금을 위해서는 사측과 같은 이해집단으로 묶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자본의 운명에 노동자의 운명을 내맡기게 된다. 끊임없이 경쟁하며 힘의 논리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측을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순간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게 된다.

조합주의의 진화는 노사협조주의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만의 고용과 임금을 최선의 가치로 여긴다면 조합주의로 퇴행하게 된다. 조합주의는 필연적으로 노사협조주의로 진화한다. 조합원을 위해서는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쯤은 당연한 것이 된다. 심지어 회사가 어려워지면 조합원 일부의 희생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작년 대우조선에서 적나라한 노사협조주의를 볼 수 있었다. 하청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할 때 대우조선지회 정규직 어용대의원들과 일부 조합원들이 사측과 함께 폭력을 동반한 위력행사를 했다. 하청노동자가 생산을 방해해 회사가 힘들다며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대놓고 비난했다. 하청노동자는 대우조선의 직원이 아니라며 원청을 상대로 파업할 권리도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조합주의는 노사협조주의로 진화했고 사측을 공동운명체로, 하청노동자를 적으로 돌렸다. 이번 공정위 심사과정에서도 상당수 정규직 조합원들이 감사청구운동에 동참했다. 이제 심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다음 발걸음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사측과의 협조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공정한 경쟁’을 주문했던 현대중공업도 다르지 않다. KDDX 사업은 아직도 상세설계와 건조 계약이 남아 있다. 앞으로 본격화될 다음 수주전에서 현대중공업이 진다면 그때 발생하는 일감부족과 고용불안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으로 펼쳐질 치열한 경쟁에서 사측의 승리를 위해 함께 수주활동을 펼치며 일감확보에 주력하는 노사화합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된다면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은 각자의 사측 편에선 경쟁관계가 된다. 이처럼 조합주의는 노사협조주의로 진화하고 이는 노동자의 분열을 낳는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