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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들의 이름으로 하청노동자 총궐기 막아선 대우조선지회

noheflag 2023. 6. 22. 10:08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총궐기


25월 31일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2023년 1차 총궐기가 있었다.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한 후 첫 하청노동자 총궐기였다. 약 200명의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열린 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 예년에 비하면 숫자는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적은 대오는 아니다. 
한화오션은 경영을 시작하자마자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주관하는 첫 집회를 최대한 방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업체 관리자들은 집회에 참여할 것이 분명한 조합원들은 집회 장소인 민주광장(PDC#1)과 먼 곳으로 보내고, 하청노동자들에게 집회 참석을 하지 마라며 엄포를 놨다. 심지어 집회 장소에 직접 찾아와 참석자들을 대놓고 감시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감시와 통제를 뚫고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 하청노동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작년 51일 총파업과 그 후 가해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대한 온갖 탄압으로 움츠러들 만도 했지만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열망을 드러내는 첫 집회를 과감히 해냈다. 

하청노동자 총궐기까지의 우여곡절


2023년 5·31 하청노동자 총궐기는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의 관리를 벗어나 민간자본인 한화로 인수되면서 열린 한화오션 내에서의 첫 하청노동자 집회였다. 모든 것을 결정할 실질적인 권한은 원청에게 있는 만큼 올해도 원청인 한화오션을 상대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그 힘든 길을 또다시 가고 있다. 
기본권인 노조할 권리조차 투쟁으로 쟁취해야만 하는 하청노조의 집회를 가로막은 것은 이번엔 원청의 노무관리부서와 정규직어용현장조직들이 아니었다. 같은 금속노조 경남지부 소속인 대우조선지회 집행부가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첫 총궐기를 대놓고 가로막았다. 작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51일 총파업 과정에서 보여줬던 애매모호한 태도조차 이번에는 없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총궐기를 결정한 시기는 5월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운영위에도 일시와 장소가 보고되었고 대우조선지회도 알고 있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5월 16일부터 5·31 총궐기를 안내하는 현수막과 대자보를 대우조선(이때까지는 대우조선해양이었다) 전 야드에 게시했다. 대우조선지회는 일부 현수막 문구를 문제삼기는 했으나 5·31 총궐기 자체에 대해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5월 20일 경 대우조선지회 상집의 결정사항이라며 5월 31일 하청노동자 총궐기가 예정된 민주광장에서 같은 시간에 열사합동추모제와 금속노조 총파업 출정식을 하겠다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수차례 행사관련 조율을 요청해야 했다. 5월 24일에는 경남지부장의 주관 하에 4주체회의(금속노조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웰리브지회)에서 시간과 장소를 조율하고자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양지회가 다음날 추가 협의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25일 대우조선지회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5월 31일 민주광장을 모두 사용할테니 총궐기 장소를 옳기라고 통보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이미 전 야드에 공지된 5·31일 총궐기 시간과 장소를 바꿀 수도 없었고 취소할 수도 없었다.
  

정규직노조, 열사합동추모제를 빙자해 하청노동자 총궐기 방해


5월 31일 한화오션 민주광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당일 오전 9시경 대우조선지회에 장소와 시간 등의 조율을 또다시 요청했으나 민주광장에서의 하청총궐기는 불가하고 장소를 바꾸라는 통보만 받았다. 결국,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간부들이 오전 10시경 방송장비를 설치하려고하자 대우조선 상집간부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대우조선 상집간부들은 쌍욕과 막말을 서슴지 않으며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방송장비 설치를 막아섰다. 왜 이렇게까지 하청노조의 집회를 막아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벌어졌다. 한참의 실랑이는 트랜스포터 운행으로 중단되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민주광장 바로 옆에서 행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양지회의 방송차가 대우조선 열사 합동추모제와 하청노동자 총궐기 장소를 가르는 벽이 되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11시 50분부터 사전선동과 공연을 시작하여 12시 15분 하청노동자 총궐기를 시작했다. 대우조선지회는 12시 25분경 열사합동추모제를 시작했다. 열사합동추모제는 50여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금방 끝났다. 200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참석한 하청노동자 총궐기는 12시 45분경 마무리 후 원청 한화오션에 교섭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대우조선지회 상집간부들이 방송차량 앞을 가로막으며 열사합동추모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반대로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열사합동추모제는 이미 끝났었고 헌화조차 다 끝나 행사장에 몇 명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대우조선지회 상집간부들은 차량을 막아서고 욕설과 막말을 퍼부으며 행진을 막아섰다. 한 상집간부는 방송차에 치였다며 막무가내로 운전자였던 강인석 부지회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행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인석 부지회장은 당사자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차량을 막아섰으면서 치였다고 우기고 사과까지 받았던 당사자는 나중에 엠블런스를 타고 병원에 가 2주짜리 진단서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1시까지 행진을 하지 말라며 막무가내로 막아서는 대우조선지회 상집간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자들과 열사합동분양소에서 헌화를 한 뒤 1시부터 행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인가, 본색을 드러낸 것인가? 


대우조선지회는 작년 한화로의 매각이 발표되고 한화 사측과 실무협의체를 가동하며 위로금 지급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한화는 기업인수를 하면서 위로금을 지급한 사례가 없다며 현금지급을 거부해왔다. 4월 26일 한국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한 후 5월이 되어서야 실무협의체는 본격적으로 가동됐고 중순 경 한화는 ‘2023년 매출액 목표 달성 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200%(3년 거치)’를 제시했다. 대우조선지회는 중식 집회를 여는 등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5월 19일 갑작스럽게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제한 조건은 동일했고 RSU 200%에서 300%로 상향된 조건이었다. 현금지급이 아니고 매출목표 달성, 3년 거치, 장기근속제도 변경 등으로 현장반발이 많기는 했으나 사실상 매각협상은 마무리 됐다. 
잠정합의가 나오자마자 대우조선지회는 이상한 행보를 시작했다. 20일 대우조선지회는 갑자기 열사합동추모제를 민주광장에서 하겠다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에 통보한 것이다. 대우조선에는 5명의 열사분이 있다. 대우조선 정규직노조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열사들은 노노분열을 경계했고 노동자의 단결을 바랬다. 5·31 하청노동자 총궐기와 열사합동추모제는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행사였다. 열사들이라면 아주 당연하게 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가 함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우조선지회는 민주광장을 자신들만 사용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하청지회의 수차례에 걸친 협의요청도 모두 묵살했다. 심지어 경남지부장의 중재노력도 허사였다. 
5월 19일 실무협의체에서 매각협상 잠정합의, 5월 23일 대우조선해양 임시주총으로 한화오션으로 사명 변경, 5월 30일 한화오션 사측과 대우조선지회 <노·사 상생 선언식> 진행. 이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면 ‘5·31 하청노동자 총궐기’에 대해 대우조선지회가 보여준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노·사 상생’을 위해 위협적인 장애물인 하청노조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던 한화오션 사측과 정규직노조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 5월 30일 한화오션과 대우조선지회는 <23년 단체교섭 상견례>와 <노·사 상생 선언식>을 진행했다.


이런 속내는 어용현장조직이 명확하게 보여줬다. 올해 3월 만들어진 우리연합이라는 신생 어용현장조직은 6월 1일 유인물을 냈다. 대우조선노조의 상징과도 같은 민주광장을 감히 하청이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며 ‘민주광장에서의 하청지회 집회를 불허할 것을 조합에 강력히 요구’했다. 작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51일 총파업투쟁 기간 동안 하청노동자를 바퀴벌레에 빗대어 모욕하고 물리적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던 대우조선지회 어용대의원들과 현책연(현장관리자연합회)의 만행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작년에 이들이 했던 역할을 대우조선지회 상집간부들이 나서서 해주고 있으니 더 이상 노조의 뒤에 숨을 필요도 없게 됐다.

 

열사들이 지켜낸 노조는 어디에 있나! 

▲ 대우조선지회 투쟁속보 제76호, 2023.06.02.


대우조선 다섯 분의 열사를 팔아 하청노동자 총궐기를 막아선 상집간부들의 만행으로 대우조선지회는 더 이상 민주노조라는 말로 포장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작년 6월 24일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 만든 철재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조합원들과 처절한 옥쇄투쟁을 전개할 때 금속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었다. 당시 김형수 지회장은 “여기에 전태일이 있습니다. 거제로 달려와주십시오”라며 피 토하는 호소를 했었다. 말로만 떠드는 전태일 정신계승이 노조관료들과 일부 정치인들의 판에 박힌 구호로 변질되었던 당시 너무나 절절한 호소였다. 그런데 대우조선지회는 ‘살아서 싸우는 전태일들’을 열사의 이름으로 막아섰다. 
정규직조합주의에 매몰되어 ‘하청이 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냐, 다른 회사사람들이니 나가라’는 등의 막말을 서슴없이 하며, 기본적인 노동자 단결의 정신조차 사라져버린 노동조합은 정규직 조합원조차 지켜내지 못한다. 지금까지 구조조정 싸움을 했던 대공장 정규직노조들의 행보는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방패막이 삼아 자본의 먹잇감으로 던져주었으나 정규직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고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해야만 했다. 2004년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하신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를 부정하고 장례식장을 수차례 짓밟았던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결국 어용 12년 세월을 겪어야 했다. 감시와 통제, 교섭권 위임, 임금동결 등으로 고통당했던 것은 이미 아무것도 없었던 하청노동자가 아니라 정규직조합원이었다. 
대우조선지회 정상헌 집행부는 그 가면을 벗으며 노사협조주의 집행부로서 본색을 완전히 드러냈고 한화오션 사측과 일심동체가 되었음을 고백했다. 노동자의 단결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자본을 대리하는 노무관리기구임을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