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로 드러난 한국교육의 민낯,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하지 않는다

noheflag 2023. 7. 29. 13:17

한 초등교사의 죽음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학부모의 갑질에 목숨을 끊은 사건 앞에 그동안 참아왔던 교사들의 울분이 터져나오면서 대중들의 공감대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99%의 초등교사들이0 교권이 침해되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공교육이 무너진 학교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대통령과 정치권에서는 대책마련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교권 침해의 주범은 학생인권?


그런데 쌩뚱맞게도 학생인권조례가 뭇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이 올라가서 교권이 침해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보수여당의 입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반항 조장 조례’이자 ‘학부모 갑질·민원 조례’라며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하고,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취지의 내용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과거의 학교를 떠올려보자. 시도 때도 없이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머리를 깎이고, 영문도 모른 채 매를 맞고, 촌지가 일상이고, 부모의 직업과 재력에 따라 차별받고... 이런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체벌과 통제에 맞서, 부당한 차별에 맞서 순종을 강요하는 학교시스템을 바꾸고 평등하고 상호존중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제정된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교육감과 지자체, 기독교단체들의 반대와 방해 속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로 뛰고 눈물을 쏟으며 분투했는지 모른다. 원안의 내용보다 훨씬 후퇴한 안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6개 시도에서만 조례가 재정되었다. 그런데 이조차도 물거품으로 만들고 과거로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교권 VS 학생인권


학생들을 찍어누르고 통제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교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누군가의 인격을 밟아야 지켜질 수 있는 권리라면 이 권리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 예전처럼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 등과 같은 강압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교권은 보장될 수 있는가? 오히려 교사와 학생, 부모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는 더 많아질 거고 교사들은 온갖 소송에 시달리며, 학교 현장은 더욱 피폐화될 것이다. 과거에도 치맛바람을 펄럭이며 교사를 쥐락펴락하던 학부모도 있었고, 교사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일명 ‘문제아’들도 있었다. 교사가 학생을 때려도 학부모가 끽 소리 못하던 시절에도 문제는 벌어졌다. 아무리 교권강화법을 만들어도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눈에 가시였던 학생인권조례를 없애는 기회로만 삼으려는 정치권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 그리고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식할 능력도 없다. 교사들에게 필요하고 또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학생들을 억누를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권위’이다. 학교 공동체에 대한 신뢰,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기본이 될 때 교사의 권위 역시 생길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추락의 상관관계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추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재정된 2010년 이후 10년간 교직만족도의 차이는 크게 없었다. 교직만족도가 30%대로 급속하게 떨어진 것은 2020년 이후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지역별 편차 역시 확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7월 21∼24일 전국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권침해 유형으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49.0%)이 가장 많았고,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무시·반항'(44.3%), '학부모의 폭언·폭행'(40.6%), '학생의 폭언·폭행'(34.6%) 등이 뒤를 이었다. 교사들이 느끼는 교권침해가 다만 학생들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자살 사건에서도 학부모의 악성민원이 극단적 선택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을 교권추락의 주범으로 몰아세워서 학생인권조례만 때려잡는 방식으로는 결코 교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열악한 교사의 노동권


교사든, 교직원이든, 학생이든, 학부모든 학교의 모든 주체는 존중받아야 한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교사 역시 노동자로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교사의 노동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부정당해 왔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스승이어야 한다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인식이 존재했고, 또 교직원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정권 때문에 수십년을 노조 합법화 문제로 싸워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교사의 노동권은 등한시 되었다. 노동조합은 계속 인원충원을 요구해 왔지만 학생수가 줄고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교사의 수가 줄어들었다. 학급수가 1개 줄었는데 교사는 140명이 줄어들어드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업무의 양과 강도는 계속 늘어났다. 또 교사 정원 축소는 기간제교사 확대로 연결되었고, 비정규직교사들의 경우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이고 있다. 
게다가 학원과 경쟁관계가 되어버린 공교육은 ‘질높은 교육 서비스’를 위해 ‘교육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을 강요받고 있다. 성적만 올려주면 되는 학원과 달리 학교에서는 학생의 성적, 정서, 사회성까지 모두 교사의 책임이 된다. 교실 안에서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온갖 민원에 신고에 소송까지 감당해야 한다. 교사의 노동권은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교사 개인이 다 떠안아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 다 떠안는 게 가능키나 한 문제인가?

문제의 본질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학교는 공교육기관으로서 모든 구성원들의 권리이자 의무기관이 되었다. 산업화된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과 소양을 갖춘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모든 구성원은 학교라는 공간을 거치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사회화되고 공동체성과 집단적 규율을 익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의 역할에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시민’으로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인 내용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율과 통제’를 내면화하는 것 사이의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아무리 민주를 강조하더라도 계급 사이의 불평등과 위계질서, 억압과 통제는 기본적으로 존재하며, 이것이 사회를 처음 경험하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힘과 같은 우파 정부에서는 ‘질서’를 강조하고, 민주당류의 정부에서는 ‘민주’를 더 앞세우는 방식의 교육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일 뿐, 근본적 뿌리는 동일하다. 국민의 힘이든 민주당이든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한 노동력을 공교육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경제적 논리로 구조화된 학교, 힘있는 학부모의 갑질, 개인주의에 익숙한 학생들의 일탈, 획일적인 교육과정으로 인한 부적응, 성과주의 경쟁주의 교육방식, 입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내용, 돌봄과 교육 사이 애매한 공교육의 역할,  관료들의 책임 떠넘기기,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 특별한 관심과 관리·치료가 필요한 학생-가정-교사에 대한 관리의 부재, 약육강식 각자도생 사회 분위기, 사회적 안전망의 미흡 등... 이 모든 것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상호침투하며 문제를 더욱 곪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해결책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의 민낯이 드러났다. 모두들 이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제대로 된 해결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또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교권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의 인격을 짓누른다면,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률과 OECD최저수준의 삶의 만족도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엔 누구의 인격을 짓누를 것인가? 

한국교총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2,8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의 59.3%, 학생의 49.7%, 교원의 38.6%가 교육이 고통스럽다고 응답했다. 학생, 교사, 학부모, 교직원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한국 교육의 현실을 이제는 근본부터 뿌리 째 바꿔야 한다. 더 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


사회 공동체의 일원을 키워내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는 이 사회가 가진 성격과 지향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사회에 있다.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되는 사회, 차별과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 자신의 기득권은 내려놓고 사회적 책임은 기꺼이 감수하는 사회, 경쟁이 아닌 협력이 기본이 되는 사회라면 학교 역시 그러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는 것만이 학교와 공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땜질식 처방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목숨만 위태로워질 뿐.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