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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조선업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선택이 아니다!

noheflag 2023. 9. 18. 22:54

올해만 1만명 이상 증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상반기에만 10,104명의 생산인력을 조선업에 투입했다며 조선업 인력난 해소 성과를 자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로써 올해 조선업에서 부족하다고 전망한 14,000여명 중 약 70%를 충원했다고 한다. 1만 명이 넘는 신규인원 중 정주노동자(내국인)은 1,716명이라고 한다. 약 8,3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정식절차를 통해 조선업에 투입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E-7(대부분 E-7-3비자를 말하며 조선업의 경우 용접/도장/전기 분야 전문인력)과 E-9(고용허가제로 고용되는 비전문인력) 비자를 발급받아 신규로 들어온 인원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미등록 상태로 조선업에서 일을 시작한 이주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규로 투입된 인력의 규모는 밝혔지만, 조선업에서 이탈한 정주/이주노동자의 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와 조선업 자본가들은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또다시 비자정책을 완화해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악화되고 있는 고용구조와 작업현장


조선업 하청노동자 인력이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인력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숙련인력 부족이 문제인데 신규인력 투입에만 집중된 결과다. 조선업을 떠난 숙련인력은 돌아오지 않고 기존에 버티고 있던 숙련인력조차 떠나고 있는 자리를 조선업이 생소한 신규인력이 채우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난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됐던 하청노동자는 이주노동자였고 다음은 물량팀 노동자였다. 이들은 언제든 내보낼 수 있었고 실재 그렇게 했다. 그런데 구조조정 이전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늘어나는 하청노동자는 대부분 물량팀이다. 심지어 기존 본공이라 불리는 상용직은 계속 줄어들고 있어 한 업체의 구성은 물량팀, 아웃소싱 노동자들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업무 자체가 아예 아웃소싱 업체로 넘어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투쟁을 계기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이중구조 개선은커녕 다단계 고용구조는 더욱 심각해졌다. 
작년부터 대규모로 투입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조차 물량팀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다단계 고용구조에 억지로 편입되는 이주노동자가 증가할수록 현장의 위험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안전감시를 강화한다해도 쳐내는 물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물량팀은 무리하게 작업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원청은 공정 중심의 생산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사외 블록 투입 지연(사외에서 생산하는 블록이 인력부족으로 공기를 맞추지 못하고 지연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을 만회하거나, 공기를 단축해 수주물량을 늘리려는 원청의 닦달에 병행작업(공정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용접, 도장, 보온 등 많은 직종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이 늘어나면서 현장의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핵심노동력으로 부상하는 이주노동자

▲ 9월 7일 현대미포조선에서 열린 E-7 특별전환 대상 베트남 기술연수생(25명) 입국 환영 행사


최근 증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조선업 생산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 핵심생산인력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산업부와 법무부는 조선업 자본가들이 지적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련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연수형 E-7 비자’도 시범운영하고 있다. 각 조선사들이 연수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을 기술교육원에서 6개월간 직접 교육시켜 현장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이주노동자는 증가하고 정주노동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정주노동자의 평균연령도 너무 고령화되어 향후 수년 내에 조선업에서 거의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저임금, 고강도, 고위험을 동반하는 조선업은 신규인력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임금과 노동조건은 개선하지 않고 신규인력을 채용하려니 될 리가 없다. 심지어 하청업체들도 정부와 원청의 저임금노동력 유지 정책에 불만이 많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 1인당 평균 100여만 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한다. 정주노동자의 경우 이미 숙련되었거나 의사소통이 원활해 숙련도 형성 시간이 짧지만 이주노동자는 교육도 힘들고 각종 추가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정부와 조선업 원청 자본은 이주노동자를 핵심 생산인력으로 정착시키고 싶어 한다. 최저임금만 주면 오겠다는 이주노동자가 전세계에서 줄을 섰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자본가들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윤의 원천이 저임금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업이 무섭게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아무리 자동화, 기계화를 확대한다해도 결국은 인건비를 누가 가장 절약하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중국은 후발주자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심지어 자동화 생산기술에서는 한국을 앞지르는 분야도 있다. 따라서 한국 조선업 자본가들은 핵심생산인력인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많이 올려줄 생각이 없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상이몽(同床異夢)


조선업 내(물론 한국의 노동력이 필요한 산업 전체가 마찬가지지만) 이주노동자 증가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선택사항이 될 수가 없다. 
이주노동자보다는 정주노동자 조직화가 우선이다는 편견이 여전히 노동조합 내에 존재한다. 특히 정규직노조에서 이 편견은 고착화되어 있다. 조선하청노조 간부들은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정규직노조는 또 다른 이방인, 외부인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본다. 노동조합이라는 틀 내로 조직하고 함께 할 대상은 내국인까지라는 조합주의가 ‘내국인도 조직 못하면서 무슨 이주노동자를 조직한다고 하냐’는 비아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 노동조합 교육을 받게 되면 ‘모든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배운다. 간부급이 되면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를 배우고 매년 5월 1일 메이데이와 11월 전태일열사를 기리는 노동자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는 그 의미가 퇴색한지 오래다. 
조선업 자본가들은 수십년간 철저하게 조선하청노조를 짓밟았다. 부르주아 법률에서 명목상 보장되어 있는 노조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 자본가들의 태도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보여진다. 하청업체에 조합원이 있다면 원청은 폐업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사용한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고용이 순식간에 뿌리째 뽑히는 상황을 수없이 목도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노조가입조차 인생을 건 큰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조선업 하청노동자 조직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조선업 자본가들이 이렇게까지 완강한 이유는 하청노동자가 이윤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황금거위이기 때문이다. 이윤체제가 흔들려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면 자본은 정규직노동조합도 가차없이 공격한다. 시장이 회복되어 생산량이 증가하기 시작하면 정규직노동조합은 관리대상이 되고 허울뿐이지만 동반자로 대접해준다. 대신, 하청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통제권을 조금이라도 빼앗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미 하청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직접생산직에서 압도적으로 많다. 즉, 소수의 정규직을 관리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하청노동자를 착취하는 편이 이윤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된다. 
자본의 이윤체제를 흔드는 일은 할 생각이 없는 노조관료들에게 하청노동자 조직화는 당사자가 할 일이고 가능하면 조직되지 않는 편이 좋다. 안정화된 노조의 조합원들도 상당히 보수화되어 보여주기식 파업과 적당한 힘겨루기로 원만히 합의하는 집행부가 유능한 집행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조선업 정규직노조들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소극적인 이유가 이해된다. 조선업 고용구조가 변화하고 있고 이주노동자가 핵심노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들을 조직하면 자본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올해 초 금속노조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를 조직한다고 하자 보수언론들은 큰 위기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조선업은 아니었지만 금속노조 모지부의 지회장들이 이주노동자까지 조직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으니 조직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한 것으로도 확인된다. 

이주노동자를 조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조선업은 자동화와 기계화를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도크와 야드에서의 작업은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숙련된 정주노동자(하청노동자)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해졌고 그 대안이 대규모 이주노동자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서든 이주노동자의 숙련도가 높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평화’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형식적이라도 정규직노동자들의 파업은 심각한 공정지연을 발생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주노동자는 미래의 중요한 노동력이다. 그것도 저임금에 효과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노예노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업 원청사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당히 공을 들인다. 과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자들이 각종 체육/문화행사 등을 진행하고 애로사항 해결(임금, 노동시간 등 정말 필요한 문제는 제외)에도 적극적이다. 당장은 숙련도가 떨어져 활용도가 떨어져도 그 공백은 기존 숙련노동자들에게 메꾸게 하면 된다. 그들이 최근 빠르게 늘어난 물량팀과 아웃소싱업체들이다. 비록 높은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지만 언제든 퇴출이 가능하고, 장시간/고강도 노동도 감수하는 물량팀 노동자들은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강제노동이 가능하도록 강화되고 있는 비자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본국에서 약속받았던 임금을 못 받고 최저임금을 받아도, 편하게 쉴 수도 없이 잔업/특근에 시달려도, 다치고 아파도 치료조차 제대로 못 받아도 불평조차 제대도 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너무나 ‘훌륭한 근로자’다. 
이를 역으로 뒤집어 이주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할 수 있다면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처지는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조직화의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조직하지 않으면 조선업 노동자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