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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저출산 현상, 사회적 위기의 반증

noheflag 2023. 11. 8. 09:03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산율) 0.78명. 올해 2분기는 0.7명까지 떨어졌다. 내년에는 0.6명대 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8명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만년 꼴지 신세다. 한 해 출생아 수로 보자면 2017년 40만 명 수준에서 작년 24만명 대로 떨어졌다. 통계청은 2041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고령화가 겹쳐 일할 사람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2020년 3737만9000명이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향후 5년간 177만 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다간 2100년 한국 인구가 2400만 명으로 급감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100년 안에 한국 청년인구가 94% 감소한다는 끔찍한 예언도 있다. 

 

저출산의 경제적 영향


먼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출산 감소는 이미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혼인구는 지난해 19만1690쌍이 결혼해 2018년(25만7622건)보다 25.6% 줄었다. 예식장 역시 지난 5년 동안 26.8%(272곳)가 문을 닫았다. 수요가 줄어든 만큼 운영이 불가능해 진 결과다. 이와 더불어 산후조리원,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의 보육시설, 키즈카페나 PC방, 노래방 등 아동과 청소년 대상 시설들이 이미 문을 닫거나 규모 축소, 노동자 수를 줄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미 인구 감소를 체감하고 있는 지방에서는 교육과 병원과 같은 인프라가 사라지고, 상권도 죽고 일자리도 줄어들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제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언발에 오줌누기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화 대책 예산을 편성, 2020년까지 총 380조2000억 원을 투입했다. 육아휴직, 출산휴가 지원, 의료비 지원부터 출생지원금,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현금성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예산을 투입한 만큼의 효과가 있는 듯싶었다. 2006년 1.13명을 기록하던 출산율은 2015년 1.24명까지 올랐다. 하지만 2016년 1.17명으로 소폭 하락하더니, 2017년 1.05명, 2018년 0.97명을 기록하며 1.0명대의 벽을 깼다. 이후 해마다 감소해 2020년에는 0.84명까지 줄었다. 실제로 높은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여 높은 출산율을 찍었던 해남, 강진, 영암, 진안 등도 그 새 출산율이 반토막이 났다. 당장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현금 퍼붓기가 아닌 인프라 개선 등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석열정부의 저출산 대책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 전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저출산의 원인을 수도권 집중화로 보고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인수위에서 인구TF 팀장을 맡은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초저출산 문제는 청년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과도한 물리적·심리적 경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 역시 최근 청년층 인구가 수도권에 몰리면서 국가 전체의 출산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선 경쟁 격화로 결혼과 출산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0.63명에서 2022년 0.59명으로 감소했는데, 2023년에는 0.53명으로 또다시 큰 폭으로 내려갔다. 수도권의 인구증가에는 지방 청년층의 이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리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은 일하기에는 좋은 도시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서 가족을 구성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도시라는 것을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 전국 꼴등이라는 수치가 반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非) 수도권 거점도시에 대형 인프라를 집중시켜 청년층 유출을 막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지방분산은 저출산에 효과가 있을까? 


서울보다 주택가격이 저렴한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대책은 이미 등장했었다. 바로 혁신도시 지방이전사업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방에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2005년부터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409개 공공기관 중 346개 기관(85%)이 수도권에 있었다. 이 중 176개 기관이 이전 대상으로 선정됐다가, 기관 통·폐합을 거치며 153개 기관 이전이 확정됐다. 하지만 정책의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일시적으로는 인구와 고용이 증가했지만 장기적으로 유지되지는 못한 것이다. 또한 세종시를 제외하고는 출산율 하락세는 차이가 없었다. 수도권에 한참 못미치는 교육수준과 낮은 인프라는 가족이 함께 내려오기보다 주말부부를 택하게 만들었다. 지방의 20·30대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비율이 인구유입보다 훨씬 상회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앞뒤가 안 맞는 윤석열 정부의 대책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지방정부가 기업을 유치하고 좋은 인프라를 유치하면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지방균형발전을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정부주도로 한 기업 이전도 쉽지 않았는데 지방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게 뻔하다. 심지어 돈도 없다. 전국 광역·기초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평균 45% 수준에 그친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행정안전부의 지방교부세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세수 부족으로 내년도 지방교부세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기존 사업 유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메가시티 서울’을 들고 나왔다. 김포를 시작으로 양평·구리·하남·광명 등 서울 인접 시들을 서울로 편입해서 인구 1300만의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저출산 원인으로 수도권 인구증가를 들면서 지방거점 메가시티를 만든다더니 서울을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표에 눈이 멀어 자신이 내건 정책과도 이율배반적인 사업을 부끄럼도 없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청년의 삶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경제적인 문제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열심히 일해 대학을 가도 등록금은 빚으로 남고, 일을 구하지 못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취업 빙하기’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통계를 봐도 청년의 비정규직 비율은 40%가 넘는다. 불안정한 고용에 임금은 낮고, 일하는 시간은 길다. 윤석열 정부는 주40시간 노동을 주52시간을 넘어 주69시간 노동도 가능하게 만들어놓았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도 문제다. 월세는 계속 오르는데 전세사기까지 기승이다. 집을 사고 싶어도 높은 주택가격으로 평생을 일해도 자신이 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높은 집값은 청년들을 외곽으로 내몰고 더 긴 이동시간을 감수하게 한다. 게다가 식비, 교통비, 공공요금 등 끝도 없이 오르는 생활비는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1020대 청년(15∼29세)들의 경제고통지수(지난해 상반기 기준)는 25.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30대는 14.4로 60대(16.1) 다음으로 높았다. 그러다보니 만기 2년의 고금리(최대 연 10%대) 상품인 청년희망적금까지 중도 해지하고 있다. 반년동안 해지한 청년의 수가 30만 명에 이른다. 먹고 사느라 청년들의 빚은 더 늘어나고 있다.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수는 전년보다 6만5천 명 늘어난 141만9천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15조4천억원에 이른다. 

 

너무나 비싼 결혼과 출산비용


이런 현실에서 결혼과 출산은 힘든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인식된다. 결혼정보회사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남 500명, 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총 결혼비용은 3억 3,050만원이었다. 게다가 자녀 한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려면 평균 4억이 든다. 아무리 일을 해도 개인의 생계조차 해결할 수 없고, 긴 노동시간과 출퇴근시간으로 쉴 시간도 부족한데 가정을 꾸리고 출산과 육아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불안정한 직장, 불안정한 주거로 인한 빈곤을 자녀에게 대물림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더욱 출산을 주저하게 만든다. 고용과 복지후생, 보육환경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출산율이 높고 전세나 월세보다 자가 주택을 보유한 가정의 자녀 수가 많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들리는 정상가족


자본주의 사회에서 (1부1처제에 기반한) 가족은 개인이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도 새로운 노동력을 창출하는, 즉 이 사회의 유지, 발전에 필수적인 노동력재생산이라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의 심화, 착취의 증가는 여성들도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개별 가정에 떠넘겨진 양육과 부양의 부담은 저출산, 가족의 해체 등 기존의 질서를 흔들며 오히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차별 


노동시장 내 성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녀 간의 임금격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출산’이라고 꼽았다.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서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일자리에 주로 남성이 남고, 여성은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 사무실을 떠날 수 있는 유연한 일자리(일정 조정이 자유롭고 보수는 적은)에 머무는 ‘분업’을 하게 되면서 소득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 남녀 임금격차는 31%로, OECD 평균(12%)의 두 배가 넘는다. 성역할 고정관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가사·돌봄은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부담한다’는 응답이 68.9%로 가장 높았다. 맞벌이 응답자의 60% 이상이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한다’고 답했다. 이런 현실 역시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업의 인식이 바뀌고,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고 해서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가 존재하듯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차별을 통해 노동력의 비용을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경쟁이 계속되는 한 출산은 여성의 임금을 깎는 핵심적인 사유가 될 것이다. 따라서 남녀간의 임금격차를 줄여 출생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자본가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사회적 공감대 형성, 가사 분담이 출산율을 끌어올린다며 형식적으로라도 양성평등을 중요하게 다루었던 이전 정부들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들고나오더니 과도한 남녀평등이 출산율을 낮췄다며 양성평등을 위한 사업예산을 삭감하는 등 과거로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출생율을 높일 방법


출생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별가정에게 전가되는 사회 경제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바로 돌봄과 양육, 가사를 사회화하는 것이다. 지금도 복지라는 이름으로 일부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몫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택문제, 방과후 돌봄문제, 아픈 가족에 대한 부양문제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것들은 여전히 개별 가정에게 떠넘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다 빼먹고 남은 일부만을 이용하여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는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도 문제다. 높은 물가를 따라갈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으로 내몰린다. 최근 투잡 쓰리잡을 뛰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시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연애를 할 시간도, 자녀를 낳고 키울 여력도 없다. 노동시간 단축 역시 출생율을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본가들의 대안


출생률 저하는 이미 자본가들에게도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없다. 한쪽으로는 사회적 위기를 들먹이며 윽박지르고 다른 쪽에선  미끼로 당근책을 쓰며 출산을 장려하고자 애쓰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출생률을 높이는 게 여의치 않으니 경제활동시작연령을 낮추거나 이주민을 확대하는 등 노동력확보를 위한 현실적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독신세를 걷어 줄어든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수 세력은 동성애를 불법화하고 낙태를 금지시키는 방식으로 정상가정을 유지할 수 있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으리라 믿으며 발악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면피용 정책으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자살’로 대응중인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체제를 바꿔 미래를 바꾸자


인류의 역사는 모순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과학발달은 세계인구의 비약적인 증가를 촉진했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는 출산율의 감소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인구수는 증가추세지만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낡은 체제의 위기는 새로운 체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일을 포기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과 확신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끔찍한 미래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만이 새로운 방식의 가족관계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인류를 키워낼 수 있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