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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noheflag 2024. 1. 10. 09:0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다룬 이 기사는 원래 하나의 글로 계획되었으나, 글이 길어져서 세 개의 기사로 나누어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 편집자

 

 

지난해 12월 24일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중재안을 내놨다. 이집트의 중재안은 「◆1단계 : 일부 인질과 수감자 석방, 2주간의 휴전, 구호물품 확대반입 ◆2단계 : 서안지구의 자치정부(PA)와 가자지구 하마스의 통합정부 구성 ◆3단계 : 인질과 수감자 전원석방, 군대철수, 포괄적 휴전협정 체결」로 되어 있다. 
네타냐후 정부와 하마스 모두 1단계에 찬성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부는 종전 이후 가자지구를 직접 통치하겠다면서, 「가자 지구의 비무장화·하마스 파괴·팔레스타인의 탈급진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12월 24일부터 31일까지 ‘알마가지·알부레이·알누세라이트’의 난민촌을 공격하는 등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오히려 강화했다. 
이런 공세가 하마스의 저항의지를 약화시켜 협상 쪽으로 밀어붙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2월 29일 카타르 정부는 하마스가 ‘인질 40명을 석방하는 대신 1개월 동안 휴전하는 방안’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네타냐후 정부에 알렸다. 때마침(12월 31일) ‘이스라엘 타임즈’는 네타냐후 정부가 가지지구에 투입된 460기갑여단, 251여단, 828여단, 14예비군 기갑여단, 511예비군 공수여단 등을 가자지구에서 철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軍의 수석대변인 다이엘 하가리 소장은 “장기전에 대비한 병력 운용상의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주문대로 ‘저강도 작전’으로의 전환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스라엘군의 일부 철수는 하마스의 공격이 어느정도 잦아들었고, 전쟁으로 이스라엘 경제가 침체되는 조짐을 보이자 네타냐후 정부가 동원한 예비군들을 일터로 돌려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의 변화들은 전쟁이 어떤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것이 휴전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이스라엘군의 저강도 공세와 수개월(6개월~1년)을 더 끄는 장기전으로 이어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4차례의 전쟁과 평화협정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해 다수의 민간인을 포함해 1200여 명을 죽이고, 250여 명을 인질로 잡아 갔다. 하마스의 공격을 기회 삼아 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지지구를 봉쇄하고 전기·물·식료품 등의 반입을 차단하면서 가자지구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전쟁 발발 후 근 3개월 동안, 팔레스타인인 2만3천여 명이 사망했고, 6만2천3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죽은 자들 중 하마스 대원은 9000명 정도다. 나머지는 민간인들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공격해 살해한 것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스라엘군의 이 잔혹한 살육전은 어떤 논리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까지 줄곧 가해자는 이스라엘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은 중동국가들과 4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1차 중동전쟁(1948년 5월 15일~1949년 3월 10일)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 70만 명을 그들이 살던 곳으로부터 쫓아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나크바(대재앙)이라 부른다. 
독일 나찌즘의 희생양이었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독립된 국가를 가지기를 원했다면 그것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민족의 생존을 파괴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권 분쟁에 개입해서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의 폭압성을 장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미국·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가 중동에서 휘두르는 잔인한 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치른 전쟁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압제는 제국주의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제2차 중동전쟁은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이스라엘이 영국·프랑스와 합세해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면서 일어났다. 제3차 중동전쟁은 1967년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의 공군기지를 기습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6일 만에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제4차 중동전쟁은 1973년 10월 시나이반도의 수복을 노린 이집트가 시리아와 합세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벌인 전쟁이다. 전세가 이스라엘에 불리해지자 미국이 이스라엘에 당시최신의 무기를 지원해 전세를 뒤집었다. 그러자, 중동의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고 석유가격을 인상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보복을 가하려 했다. 이것이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제4차 중동전쟁 이후 1978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1994년에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2020년에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수단, 모로코’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은 중동지역을 안정화시키고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 평화협정들을 주도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창과 방패 구실을 해왔다.  
국가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그 곳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후 중동국가들과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이후 주변 중동국가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 하에 중동에서 확고하게 자신들의 지위를 굳혔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와 가혹한 탄압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가자지구를 봉쇄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를 강화시켜 왔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987~1993년(1차)과 2000~2005년(2차)에 대규모 민중저항운동인 인티파다가 전개됐다. 하마스는 1차 인티파다 중에 결성됐다.


2008~2009년(1차 가자전쟁)에 이스라엘은 전함과 탱크를 가자지구에 투입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2년,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단체’에서 ‘옵서버 국가’로 승격하려는 것에 반대해 그해 11월(2차 가자전쟁) 이스라엘은 다시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팔레스타인이 UN에서 국가로 인정됐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스라엘의 잔인한 압제도 계속됐다. 그리고 2014년 7~8월(3차 가자전쟁)에 이스라엘은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정부 구성에 반대해 6만의 병력을 가자지구에 투입했다. 이 전쟁들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고 다쳤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난민이 되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국가를 만들고 스스로 통치하는 것을 계속해서 막아왔다. 팔레스타인인들도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세계에 침입한 파괴자들인 이스라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계급 사회의 역사, 곧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2021년 5월에는 이슬람인들과 유대인들 모두가 ‘성지’로 여기는 알아크사 모스크에서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알아크사 모스트는 예루살렘의 한복판에 있는데,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작전명을 ‘알아크사의 홍스’라 붙였는데, 알아크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다시 2022년 8월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공습했는데 무장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테러를 예방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11월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총리였던 나프탈리 베네트가 우파의 표심을 결집시키기 위해, 특히 유대인 정착촌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2023년 7월에도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 제닌의 난민캠프를 공습했는데, 네타냐후 정부는 ‘테러 제거’가 공격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2022년 말 다시 권력을 장악한 네타냐후 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자신들의 법안 개혁이 강력한 대중적 반발에 부딪히면서 실각의 위기에 처하자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극우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목적으로 계획한 것이었다.
이처럼 제국주의의 잔인한 본성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