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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됐다던 조선업 인력난,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noheflag 2024. 1. 11. 09:29

지난 11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조선업 생산인력 14,359명 투입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언론들은 이 자료를 받아쓰기 하면서 조선업 인력난이 해소된 것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작년에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서 올해 말까지 조선업에 14000여명의 생산인력이 부족하다고 예측했는데 3분기 만에 초과 충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력난이 해소됐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현실은 여전히 숙련인력 부족으로 공정차질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2월 초에는 조선3사가 인력난에 블록생산이 지연되다보니 중국에서 블록을 조달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던 생산인력을 초과 공급했음에도 인력난이 지속되고 있다는 모순은 현재 조선업이 겪고 있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 2023년 11월 6일 법무부 보도자료, "조선업 생산인력 14,359명 투입되었다" 재가공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조선업


작년 11월 15일 울산상공회의소의 울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에서는 ‘「울산지역 조선업 변화와 과제」 - 재직자와 외국인 근로자를 중심으로’라는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울산지역 조선업 재직자 300명(내국인 200명, 외국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기업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이기에 꽤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조선업 인력난 문제는 가혹한 구조조정 시기부터 제기되어 왔다. 고강도/고위험 대비 저임금 문제, 다단계하도급에 따른 고용불안, 임금체불/4대보험체납/업체폐업 문제 등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경고해왔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상공회의소에서 사측의 협조를 받아 만들어졌음에도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보고서에는 H중공업 4개 사내협력사 인사담당자들의 심층인터뷰 결과가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업무 강도 대비 임금 수준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규입사자의 90%가 1년내에 퇴사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 때문에 입사한 노동자들도 지원금만 받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울산지역 조선업 변화와 과제」 - 재직자와 외국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조사 보고서', 울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2023.11.15.)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는 중요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상당히 부실하긴 하지만 임금과 업무강도 때문에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은 확인이 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직을 원할 경우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무응답이 70%에 달했으나 답변자 중에서는 ‘낮은 임금, 높은 업무 강도’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는 금속노조에서 발간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와 유사한 결과다. 금속노조 조사에서는 420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63.7%가 이직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서’라는 답변이 67.2%에 달했다. 
사측을 대변하는 기관의 조사에서도 노조가 진행한 조사에서도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노동강도 대비 낮은 임금’을 조선업에서 떠나고 싶은 이유로 꼽았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지속적인 인력난의 핵심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 '「울산지역 조선업 변화와 과제」 - 재직자와 외국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조사 보고서', 울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2023.11.15.)

 

▲ 금속노조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2023.10.12.)

 

인력공급에만 혈안이었던 정부 정책


제조업, 농업뿐만 아니라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산업 전반에 걸쳐 이주노동자 투입을 이 정도로 확대한 정부는 지금껏 없었다. 특히, 조선업은 5~6년간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너무나 많은 생산인력을 감원한 결과 경기회복 시기가 도래하자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장 필요한 생산인력을 공급하지 못하면 심각한 공정차질이 불가피했는데 정부가 해결사로 나서면서 급한 불은 끄게 됐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인력공급 정책이 ‘저임금 이주노동자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노동력의 양적 충원에는 성과를 냈으나 질적 수준은 회복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업 자본가들의 이해와 맞닿아 발생한 문제인데, 인건비 증가를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임금 노동력 확보에만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할 때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결정이 경제법칙이라고 가르친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노동력의 가격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강제로 공급을 늘리면 상승요인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조선업 자본가들의 인건비 상승 압박을 덜어주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저임금 노동력을 거의 무한대로 공급하고 있어 조선업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은 저조하다. 
이렇게 보면 정부와 조선업 자본가들의 정책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그러나 조선업 생산인력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인간의 몸에 축적된 숙련도는 단시간에 확보할 수가 없다. 저임금/고강도/고위험 노동으로 이미 많은 숙련노동자들이 이탈한 자리에 저임금/저숙련 이주노동자들을 채운다고 해서 정상적인 생산이 가능하지 않다. 작년부터 정부와 자본가들이 걱정하던 인력부족문제를 양적으로 채웠지만 여전히 ‘인력난’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중국에서의 블록 생산이 대안일까?


조선업은 확실히 호황국면이다. 2023년 실적전망만 봐도 좋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조선3사 중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은 압도적인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수주목표를 이미 141.8% 초과 달성했고 수주잔량, 영업이익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수주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즉, 한국의 대형조선사들은 모두 일감이 넘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 인력을 초과해 충원했음에도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는 정작 필요한 숙련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재 현장에서는 공정지연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선행공정과 사외에서 블록생산이 지연되면서 후행공정으로 갈수록 일감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의 블록 생산이 공정지연을 막을 대안으로 나왔다. 물론,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현대미포조선은 오래전부터 해외 공장에서 블록을 만들어 공급했다. 현대중공업이 중국에서의 블록생산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의 블록생산은 세 가지 측면에서 대안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첫 번째는 중국에서도 조선업은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로 인식되어 노동력 공급이 부족하다. 숙련인력 구하기가 힘든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인건비가 상승해 ‘저렴한 인건비’는 예전 이야기다. 두 번째는 품질이다. 아무리 관리를 한다해도 중국 생산 블록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하부설비(Hull) 제작이 끝나 싱가포르 케펠사로 출항한 P78 FPSO(부유식 생산 하역 설비)은 2023년 9, 10월이면 작업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중국 CIMC Raffles 사와 공동생산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부설비의 절반을 중국에서 생산해 현대중공업에서 조립하면서 각종 품질문제가 발생했고, 수개월의 공정지연이 발생한 것이다. 도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갈아내고 도장을 해야 했고, 각종 파이프 등 기자재가 맞지 않아 재작업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CIMC Raffles사의 직원들이 작년 봄부터 현대중공업으로 파견 나와 수정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해외 생산의 가장 큰 약점인 운송비와 시간 또한 문제다. 국내생산의 경우 운송비가 상당히 절감되는데 중국생산의 경우 바지선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와야 하기 때문에 운송비 상승과 제때에 납품되지 않았을 경우 대안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가장 취약점인 품질문제를 이미 겪고 있는 조선사들이 중국에서의 블록생산을 확대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건비가 상승했다해도 국내생산보다는 저렴하고, 국내에서는 블록을 공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대안을 찾고 있다.

자본의 방향과 노동자의 방향


조선업 자본의 방향은 분명하다. 갈수록 낮아지는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협동로봇을 개발하면서 노동력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블록의 해외 생산은 물론 현대중공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와 합작 조선소(IMI)를 건립하고 한화오션이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추진하는 등 생산기지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생산량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는 벌써부터 중국에 밀리고 있는 한국조선사들은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기술력의 핵심인 숙련인력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공정지연, 품질실패비용 등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설령 그들이 추진하는 방향으로 갈수 있다해도 이는 장기적으로 생산능력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탈한 국내 숙련인력을 포기하고 이주노동자를 대거 고용한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발주량이 줄어들면 손쉽게 해고가 가능한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자본의 입장에서는 가장 써먹기 좋은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조선업 호황국면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업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객관적인 토대는 성숙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토대가 좋다해도 이를 기반으로 노동자를 조직하는 문제는 자동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 이전 시기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량팀과 아웃소싱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고, 상용직(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중 이들을 본공이라 부른다)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상용직의 임금이 너무나 더디게 올라가다보니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물량팀이나 아웃소싱, 인력파견 업체 등으로 노동자들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조선소보다 사외 블록공장들이 임금이 높고,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다보니 사외블록공장에서도 일자리 경쟁도 시작되고 있다. 정주노동자/이주노동자, 물량팀/본공, 사내협력사/단기업체 등등 복잡한 고용구조가 확대되면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조선업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에는 하청노조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여전히 소수이고 미약한 조직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불과 4~5년 전만해도 이 정도의 조직기반조차 먼 미래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다만 미약한 조직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직종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력 확대라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국적과 직종, 더 나아가 지역을 넘어 조직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