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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noheflag 2024. 3. 6. 21:20

 

윤석열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정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이런 주장에 대해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거부에 들어간 전공의들은 “국민건강”과 “의료비가 늘어날 것” 그리고 “의료시스템의 붕괴”을 염려한다.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할 후배들”과 그에 따른 “의사의 날림 양성”그리고 역시나 “국민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명분일 뿐 그/그녀들은 작아질 자신들의 “밥그릇”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의사수가 많아지면 그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져 그들의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형병원의 전공의(인턴-수련의, 레지던트¹)  9천76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월21일부터 진료거부에 들어갔고, (2월 26일 현재)1만 2527명의 의대생들이 휴학을 신청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 등 일각에서 제기되는 ‘증원 규모를 줄이는 타협’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위원장 등 전현직 주요 간부들을 고발했다. 이어 경찰은 대한의사협회를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진료거부에 들어간 전공의들에게 2월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9천76명의 전공의 중 복귀한 이는 100개 병원에서 294명밖에 되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이처럼 강경하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전문능력을 대체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전공의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1년 동안의 인터(수련의) 과정을 거친 후 3~4년의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다. 그런 이후 전문의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 전문의가 된다. 이 중 소수는 대형병원에 남게 되지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대부분은 개인병원을 차린다.

 

서로 다른 셈법 


의대정원 증원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도 제기되었다. 문정부의 증원 규모는 400명이었는데, 윤정부는 2000명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정부는 문정부가 했어야 할 의대정원 증원이 미루어지면서 시간이 촉박해졌기 때문에 증원규모가 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의사수 증원의 주요 근거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18.4%인 950만명이다. 2022년(901만8000명)보다 50만명 가까이 늘었다. 한국은 2025년 노인인구 비중이 20.6%(1347만7천명)로 초고령사회(20%)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인구 중 노인인구의 비중은 2035년 30%(1520만명), 2040년 33%(1655만명), 2050년 40%(183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인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65세 이상의 거의 모든 노인들이 병을 달고 살아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들 중 89.5% 이상이 치매, 뇌졸중,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을 한가지 이상 앓고 있으며, 2가지 이상 앓고 있는 경우도 73%, 3가지 이상 앓고 있는 경유도 51%나 된다. 
‘노인인구의 증가와 노인들의 높은 유병률’을 고려했을 때 향후 ‘25년~30년’ 동안 의사들이 더 필요하리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의사들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의사수가 늘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수입이 줄게 될 것을 걱정하는 개원의들과 미래의 개원의들인 전공의들은 셈법이 정부와는 다르다. 그들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의 증가보다는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에 무게중심은 두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출생률 저하가 전체 인구를 급속하게 줄이고 있기 때문에 노인인구가 당분간 증가하더라도 현재 의사수 수준으로도 충분히 의료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출생률이 추락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크게 증가하고, 집값이 폭등하고,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출생률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낮은 고용률, 노동시장에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의 높은 비율, 높은 집값과 양육비가 출생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2023년 4분기 출생률은 0.6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2024년 합계출생률을 0.68명으로 추산한다.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은 202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3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5천167만 명인 총인구는 2041년에는 5천만명대 아래로 떨어지고, 2072년에는 3천622만 명까지 쪼그라든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2010∼2020년의 의사 평균증가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래 인구수를 바탕으로 인구 1천명당 의사수를 산출해보면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고 현행으로 유지해도 2063년이면 OECD 평균을 앞지르고, 1천명을 증원하면 2055년에 평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제시했다. 확실히 출생률 저하를 염두에 둔 계산이다. 우봉식 원장이 의사집단, 특히 개원의들을 대변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그의 주장에 참고할 만한 ‘어느 정도의 진실성’은 있어 보인다. 

그래도 의대정원은 늘려야 

▲ 『OECD 보건통계 2023』, 보건복지부


의협의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의대정원을 1000명 정도 증원해야 인구 1000명당 의사수가 2055년에 이르러서야 OECD 평균인 3.7명을 넘어설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2.6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인구는 4천711만명 정도로 감소하고, 이 중 노인인구는 1830만~1900만 명으로 정점을 찍는다. 이후 노인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런 통계자료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어쨌든 2050년까지는 의사수가 늘어나야 한다. 이후 ‘적절한 시점’에 다시 의사수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정부의 주장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의 주장대로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면, 의대 정원을 2000명 정도 늘려야 할 것 같다. ‘인턴이나 레지던트’ 4~5년 기간까지를 의사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한명의 의사를 양산하기까지 의대 6년에 군대 2년을 더하면, 8년의 시간이 걸린다. 2025년에 의대에 입학한 신입생이 수련의(인턴)가 되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니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의대정원 증원으로 이득보는 이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경쟁사회다. 비록 수입이 많다고 해도 의사들도 그들 사이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의사수가 늘어나면 그 경쟁은 격화된다. 경쟁의 격화되면 수입이 줄어든다. 그런데 의사수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의료수요가 늘어난다면 의사들의 수입에는 큰 폭의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늘어난 의료수요가 대형병원에 집중될 경우 개원의들 사이의 경쟁은 격화될 것이고, 그들의 수입도 줄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형병원들은 의사수의 증가로 이득을 보게 된다. 대형병원들은 지금까지 의료인력에 대한 가혹한 착취로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 냈다. 법적으로 주80시간 이상을 일해서는 안 되는 전공의들은 대형병원은 60%, 전체로는 52%가 주8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인턴(수련의)의 경우는 그 비율이 75.4%나 된다(대한전공의협의회의 실태조사 결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의료인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의사수가 늘어나지 않게 되면 의사를 고용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될 것이 뻔하다. 이는 대형병원 입장에서는 이윤의 감소를 뜻한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노인들의 의료수요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악화를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 건보재정은 2024년에 2조6402억원, 2025년에 4633억원의 흑자를 기록하지만, 2026년에는 3072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2027년에는 7895억원의 적자가, 그리고 2028년에는 적자규모가 1조5836억원으로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세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노인들의 의료수요가 증가하면 건보재정의 적자누적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보재정의 악화를 막기 위해 의료비 지출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과다 입원이나 가짜 환자 단속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고용율 하락,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 건보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무한정 인상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노령화와 의료수요의 증가는 의사의 부족을 낳을 것이다. 의사가 부족하면 의사들의 값이 비싸질 것이고, 이것은 의료비가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의사수를 늘리고, 낙후한 지방에 개원하는 의사들에 대해 정부가 재정지원이나 세금혜택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정부의 이런 조치들로 낙후한 지방의 환자들이 좀 더 쉽게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어차피 낙후한 지역의 주민들도 중병에 걸리면 더 나은 장비와 능력이 있는 의사들을 찾아 대도시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중증의 병자들이 더 많이 생겨날수록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므로 윤정부의 의사수 증원은 대형병원들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울대병원장이 공개적으로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한 것에는 이런 이해타산이 깔려 있다. 다른 대형병원들의 입장도 서울대병원과 마찬가지다. 


결국 정부의 의사수 증원은 전공의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대형병원들의 이윤하락을 방어해주고, 대형병원들의 의료비 인상을 저지함으로써 건보재정의 급속한 악화를 막아보자는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사수를 늘리는 소박한 정책 따위로 건보재정의 악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건보재정의 악화는 자본주의 경제의 만성적인 침체라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가 노령화와 맞물리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사회 


지금껏 정부는 대형병원들이 소수의 전문의를 고용하고, 다수의 전공의들을 ‘돌려막기’하는 식으로 값싸게 전공의들을 부려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후 개원의가 되어 대형병원들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10여년에 걸쳐 쌓은 전문능력의 상당부분이 사장되게 된다. 개원의들은 간혹 자신들끼리의 세미나나, 명망있는 의사들의 강의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의료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집단적 지성을 획득하고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그들의 임상 경험은 의료기술을 발전시킬 좋은 자료들이 될 수 있지만 의사들 서로가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임상의 경험을 집단의 지성으로 총화하고 일반화해서 의료기술 전체를 발전시킬 기회로 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대단히 큰 사회적 낭비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이런 낭비를 초래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한다. 
독점적 대형병원의 형태든, 개인병원의 형태든 ‘이윤’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는 과잉진료나 3분진료, 환자차별 등 의료병폐의 원인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병폐의 대부분은 바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행위로부터 발생한다. 그중 가장 큰 병폐는 의료혜택의 차별이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최고의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은 병원가기가 두렵다. 중병에 걸린 가난한 노동자는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된다. 박민수 보건부 제2차장은 “의사수가 늘어나면 의료비 지출이 증가한다”는 의협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의료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고령화와 소득수준’이라고 고백했다. 소득수준이 낮은 이들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 필수과 의사가 너무 부족해서 의료사각지대가 생기는 것보다, 가난으로부터 생겨나는 의료사각지대가 가장 심각하고 큰 문제인 것이다. 이 점에서 아무리 많은 의사를 양성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료사각지대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낙후한 지방에서 병원이 사라지는 현상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의사수를 늘리고 지방에 개원하는 의사들에게 혜택을 주어서 의료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림없는 말씀이다. 의협이나 전공의들은 의사수를 늘리거나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 자신들이 낙후한 지방에 가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공허한 말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윤정부에서는 지방의대의 정원을 늘리고 지방에 눌러앉는 의사들에게 지원혜택을 주어 일정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지방에서 일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의 대도시 편중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상층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자식들의 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재산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들 같은 엘리트로서의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전문의로서 대형병원에 취업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개원을 하려면 대도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약간의 재정지원으로 그들을 낙후한 지방에 묶어두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병원들이 대형화되고 도시에 집중되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들이다. 이를 역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의사수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개원의들이 안과나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의료사고의 부담이 덜하고, 더 많은 수입이 보장되는 곳에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달달 외운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은 결코 천사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능력이 된다면 쉽고, 편안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많은 돈을 벌려는 자본주의에 사는 머리가 좋지만,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일 뿐이다. 그들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고,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자본주의적 인간형들일 뿐이다. 안과나 피부과, 성형외과 등 더 쉽게 돈을 벌수 있는 부문에 의사가 몰리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윤정부에서는 의사수를 늘리면 이런 편중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의사들이 악마라는 말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그렇지만 교육과 소득 수준이 좀 높은 그저 보통의 인간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도 측은지심이 있고, 간혹 남다른 인간애를 가진 의사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히포크라테스의 도덕으로 주문을 외워서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을 강압해서 꺾던지, 떡고물로 회유하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윤정부가 의협의 간부들을 고발하고, 대한의사협회를 압수수색하고,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전공의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윤정부가 의료과실의 책임을 완화해주는 정부지원의 보험정책을 내밀었지만, 전공의들은 꼼짝도 않고 있다. 그렇다고 윤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총선이 1달 남짓 밖에 남지 않았고,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에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쬐끔’ 올라간 것이 이 덕분이기 때문이다. 윤정부는 전공의들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더 강경한 방책들을 동원할 것이다.

 

가능한 사회 


인류는 이미 잘 관리하면 질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장수하면서 살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물질적 부와 의료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도 부의 분배가 편중되어 가난한 이들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질병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거나 삶을 포기해야 한다. 
누구든 언제든 질병을 가진 이들은 제한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백명의 ‘김사부’가 나타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없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의료서비스를 판매하는 사회를 그대로 둔 채로는 불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무상의료’를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나 이상적이기 때문에 실현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무상교육은 가능하다. 복지적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유럽에서 무상교육을 실현한 바 있다. 무상의료는 무상교육을 전제로 한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의사를 양성하고 이후 국가가 관리하는 병원들의 전국적 네트워크에서 수련하고(물론 수련 비용도 국가가 부담하고), 일정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 바로 그 국가가 관리하는 병원에서 일하게 한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서 급여가 지급된다면 굳이 의사들이 개인병원을 차려서 국가의 의료체계에 도전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국가가 관리하는 병원에서 무상으로 진료받고 치료할 수 있는데 굳이 개인병원을 찾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무상의료의 모든 재원은 대형병원들의 이윤과 개인병원 의사들이 가져가는 이윤을 국가로 집중시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의료보험료보다도 더 적은 지출로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국가를 통한 종합적인 의료체계는 불필요하게 중복된 건물과 설비와 의료기기들을 절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전국에 흩어진 개인병원들의 극심한 낭비를 줄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체계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병이 발생한 후에 치료하는 사후적 방식이 아니라, 병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방식으로 전화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후 치료에 들어갔던 막대한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몇몇 의사들이 모여서 조금 더 규모있는 병원을 차리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것이 종합적 의료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중복된 건물, 설비, 의료기기를 절약하게 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대형병원에서 이미 충분히 달성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절약의 결과들이 모두 대형병원의 자본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무상의료의 핵심이 대형병원들과 개인병원들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것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상의료는 그렇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가 더 이상 이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들의 건강유지와 질병치료에 목적을 두는 것으로 전화시키는 데에 달려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의사들은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고, 비로소 히포크라테스의 도덕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를 누가 만들 수 있는가? 이윤과는 무관한 이들, 착취받는 이들, 무상의료로부터 빼앗길 것이 없는 이들, 거기에서 오히려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의해서만 그런 사회는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