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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없는 총선 - 누구를 위한 총선인가?

noheflag 2024. 3. 6. 21:25

▲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선대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민주연합추진단장, 윤희숙 진보당 상임선대위원장이 2월 2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 합의 서명식에 참석했다.

 

지난 2월 13일 민주당의 주도로 ‘비례위성정당’ 추진을 위한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3월 3일 ‘더불어 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위성정당이 창당되었다. 

기존 양당중심의 정치제도에 변화를 주어 중소 정당에게 의석을 주겠다고 만들어 놓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중소정당의 존재감을 축소시키고 있다. 군소정당에 비례의석을 보장해주겠다고 만든 취지와는 달리 민주당 주도의 위성정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국회 의석을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연합이라고 포장하지만, 그들의 말과 달리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수단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더불어 민주연합’에 일명 진보정당이라고 얘기되는 ‘진보당’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반윤석열’이 가진 함정


2년간 윤석열의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분노한 많은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최대한 떨어뜨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반윤석열 전선을 위해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윤석열이 친노동인가? 반윤석열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는 수단인가? 그렇지 않다. 반윤석열에는 민주당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노동자의 정책을 확대 강화하는 세력인가? 그렇지 않다. 권력을 잃어 야권이 되자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겉모습을 보이는 것 뿐, 속 알맹이는 친자본이다. 

민주당이 진보세력?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하락시키고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온 부르주아 정당이다. 특히 국민의힘이 처리하지 못한 노동악법을 ‘진보의 가면’을 쓰고 통과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김대중은 정리해고법, 파견법을 만들어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제도를 등장시켰고, 노무현은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직제도를 확대하면서 비정규직을 확산시켰다. 문재인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면서 자회사를 만들어 원청의 책임을 축소하고 하청구조를 안정화시켰다.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얘기하는 비정규직 제도만 보더라도 민주당 정권이 주도해 만들어놓은 시대적 악법이다. 그런 민주당이 반윤석열을 얘기한다는 이유로 지지해야할 정당이 될 수 있는가?  

최악을 피한 차악의 비극


‘윤석열’이 너무 싫어서 민주당을 택하는 것은 눈앞의 것만 살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이후 민주당이 권력을 잡으면 또다른 형태의 친자본 반노동 정책들이 등장할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최악보다는 민주당이라는 차악이 그래도 나은 게 아닌가?’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악의 비극을 이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통해 겪을 만큼 겪어왔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중심에 서서 박근혜를 몰아냈지만 그 성과는 문재인이 가져갔다. 대선 당시 문재인은 한국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의 삶만 더욱 악화되었다. 청년실업, 전세사기, 가계부채,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윤석열만의 책임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시기부터 이어온 문제다. 문재인의 반노동정책이 싫어서 윤석열에게 투표한 이들이 다시 윤석열이 싫어서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없다. 부르주아 양당은 서로를 적대하지만 양당정치의 순환굴레 속에 노동자들의 선택을 묶어두고 있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순간 또다른 차악이 반복되는 것이다.

야권연대 -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후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정치세력화가 후퇴한다는 것이다. 당장 윤석열을 막아야해서 민주당을 선택하는 것으로 노동자정당이 제대로 등장할 수 없다. 언제나 최악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악, 차악 구도를 벗어나 ‘자본’ 대 ‘노동’의 구도로 정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야권연대라는 방식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 구도가 핵심이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노동자들은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별점을 확인할 수 없다. 정책과 내용은 뒷전이고 국회의석을 확보하려는 것에 혈안이 된 똑같은 부르주아 정당의 모습으로 보여질 뿐이다. 

진보당의 행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짜놓은 최악 차악 구도에 모든 흐름이 빨려들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진보당’ 역시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를 결정했다. 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진보당 주도 세력은 이미 십수년전부터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를 모색해왔다. 다만 올해는 더욱 노골적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결정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정의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녹색정의당은 위성정당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후보연대를 하자고 하는데 이는 진보당과 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노동자정치를 말하면서 민주당과 연합하는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진보당에 대한 민주노총 정당지지도 철회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2023년 총선방침에는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지침조차 내팽개치고 민주당의 그늘에서 떡고물을 기대하는 진보당 류의 정치로는 노동자들의 제대로된 정치세력화는 결코 만들 수 없다. 

▲  민주노총은 2023년 9월 14일 제77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총선방침을 확정했다.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선방침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당장 의석 하나를 차지한다고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예전 민주노동당 시기 1석의 국회의원만 있으면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얘기했지만, 과연 그러한가? 2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정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현장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투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 과정속에서 자본에 맞서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노동자의식을 확보하고 노동자정치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인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필요성을 납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 한명 한명이 힘을 모아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바꾸고 노동자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노동자정치세력화다. 부르주아 정치제도 중 하나인 의회에 노동자후보를 내보내 의석을 확보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은 부르주아 의회를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정책과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을 반대하느냐 지지하느냐로 모든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노동자들, 비정규직제도에 일회용품처럼 일하는 노동자들,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옵티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국회의석을 둘러싼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다툼만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과 내용을 선전, 선동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돕고, 총선을 노동자의 힘을 확대 강화하는 진짜 노동자정당이 필요하다.

 

권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