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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호황에 또다시 죽어나가는 노동자

noheflag 2024. 3. 6. 21:41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2일(월) 현대중공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이 ‘중대재해 없는 1000일’ 안전기원 행사(1월 25일)를 연지 17일 만에 발생한 중대재해였다. 현대중공업은 2022년 4월 2일 판넬2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가 1명이 사망한 후 680일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없었다. 
2024년이 시작된 지 채 2달도 되지 않았지만 한화오션에서는 2명, 삼성중공업에서 1명, 현대중공업에서 1명의 하청노동자가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자본가들은 조선업 호황으로 축배를 들고 있는 사이 조선소 노동자들은 또다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올해에만 조선 빅3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한화오션에서는 올해 들어 2명의 하청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1월 12일 라다(방향타)공장에서 27세의 하청노동자가 폭발사고로 11미터나 튕겨져 나가 사망했고, 1월 24일에는 선체 이물질을 제거를 위해 잠수작업을 하던 잠수사가 의식을 잃고 발견되었으나 결국 숨졌다.

▲ 1월 12일 폭발사망사고가 발생한 한화오션 라다(선박 방향타)공장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2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 말고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사고사례를 밝히기도 했다. 1월 19일 발판 설치를 위해 블록 벽면 피스에 엥글을 설치하던 중 추락해 다리가 골절된 이주노동자는 사다리를 잡아 줄 동료 한명만 있었어도 다치지 않았다. 1월 30일에는 LNG 운반선 시스템 발판 설치 후 남은 발판을 하부로 이동시키기 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파레트를 권상 중 파레트가 라이프라인에 걸리면서 튕겨 재해자의 머리를 타격해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추락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마와 눈에 깊은 열상을 입었다. 시스템 발판 작업은 대표적인 다단계 하청공정이다. 

지난 2월 12일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 쉐넌도어 상부구조물( 탑재를 위해 스키딩 작업 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대형구조물 이동 및 설치 전문업체인 헤베텍(Hebetec, 스위스) 소속이었던 재해자는 다음날이면 마지막 근무로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스키딩 작업 전 무게중심을 확인하는 웨잉작업 시 로드셀이 튕겨 나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고, 지반이 내려앉아 구조물이 균형을 잃으면서 사고가 났다는 말도 있다. 아직 사고원인이 파악되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미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충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탑재일정을 맞추려다 발생한 사고임은 분명하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중대재해가 있기 전인 2월 7일 이동하는 고소차 바퀴에 화재감시자의 양쪽 다리가 깔린 사고가 있었다. 재해자는 발목과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고소차의 운행을 도와주는 유도자가 한 명이라도 배치되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 

▲ 2월 12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 해양공장 쉐넌도어 상부구조물


삼성중공업에서도 1월 18일 새벽 1시 20분에 컨테이너선 블록 탑재 후 세팅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계단으로 이동하던 하청노동자가 굴러 떨어졌다. 재해자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다음날 사망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불과 두 달 전인 2023년 11월 7일 정규직 노동자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리골절을 당하는 비슷한 사고가 이미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추운날씨에 재해자의 몸이 경직되어 발생한 사고인 것처럼 전파했다. 그런데 블록에 설치된 계단은 철재로 되어 있어 겨울철이면 살얼음이 얼어 상당히 미끄럽다. 미끄럼 방지 장치를 하지 않고 사용하면 누구라도 미끄러질 수밖에 없음에도 엉뚱하게 재해자 잘못으로 몰고 있다.  

▲ 삼성중공업 1월 18일 계단 굴러 떨어짐 사고

조선업 호황과 증가하는 중대재해

▲ 출처 : e-나라지표


전세계 조선산업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후 호황국면에 들어섰다. 신규선박 발주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한국의 대형조선사들은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연일 대규모 수주소식이 들려오고, 신규선박가격은 수년째 고공행진을 지속해 2008년 이후 최고가를 경신할 것이란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의 대형조선사들도 한화오션을 제외하면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했다. 한화오션은 2022년 1조6천억원이 넘는 적자(영업이익)에서 2023년은 -1965억원으로 적자폭을 대폭 줄였고, 당기순이익은 1600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대형조선사들은 그야말로 ‘좋은 시절’이 도래했다. 각 사별로 3~4년치 일감을 확보했고, 슬롯(건조 도크)이 부족해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별수주한다면서 미래의 실적개선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선업에 불고 있는 훈풍과 비례해 조선소 현장에서의 중대재해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중재재해 사망사고가 폭증하다 2022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2022년 1월)되면서 일정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업무상 사고사망자 수는 전년도에 비하면 72.5%나 감소했다. 대형조선소들이 매년 수백, 수천억원을 안전예산을 투입했기 때문에 안전한 현장이 비로소 만들어진 것일까? 

▲  출처: 산업안전보건공단 연도별 「산업재해 현황분석」 재가공


다른 통계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업 시황이 개선되면서 일감이 증가하는 만큼 ‘업무상 사고 재해자’(사고사망자 포함)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공개하고 있는 통계를 보면 2023년 3/4분기까지만 해도 2022년 재해자 수를 넘었다. 즉, 조선소 현장에서는 최근들어 일하다 다치고 죽는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 하나 숨겨져 있는 사실이 있는데 사고성재해만이 아니라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현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도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고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요한 재해로 다뤄지지도 않고 있다. 

▲  출처: 산업안전보건공단 연도별 「산업재해 현황분석」 재가공



도대체 왜?


조선업에서의 사고와 중대재해 증가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꾸준히 경고도 했었다. 하지만 조선사들과 정부는 스마트야드를 구축한다, 안전관리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등 수천억원의 예산을 엉뚱한 곳에 써버렸다. 안전한 현장을 만든다면서 현장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노동자들에게 MDM(Mobile device management) 앱을 강제로 설치하게 했다. 사실상 감시·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조선소 산업재해 증가의 원인을 방치하면서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해 첨단시스템을 구축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인력난을 이유로 물량팀과 외주업체가 증가했고, 조선소 현장과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다. 조선소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다.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물량팀이거나 외주업체 소속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계약한 물량을 쳐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는 이 하청노동자들은 안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무리 위험해도 무리하게 작업을 할 수밖에 없기에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주노동자들도 익숙하지 않은 현장에 무리하게 투입되다보니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중요한 원인이 또 있는데 바로 공정지연에 따른 무리한 작업이다. 인력난은 선박블록업체들이 더 심각하기 때문에 제때에 블록공급이 안 되고 있다. 오죽하면 발주물량을 반납하는 블록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대형조선사들은 사내블록생산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으나 사람이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라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부족한 인원으로 무리하게 물량을 쳐내려다보니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고용유연성(해고와 고용의 자유)과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사들이 선택한 다단계하청고용구조는 현장의 사고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고 심각한 인력난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실상 생산현장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다단계하청고용구조를 유지하고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