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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도박판에선 누가 이득을 얻는가?

noheflag 2024. 3. 6. 21:48

“세상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손실 볼 일 없다!”


세상이 망하지 않았지만(아니 이미 망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큰 손실을 보았다. 홍콩 ELS 투자자들의 얘기다. 지난 1월 19일에는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 주최로 금감원 앞에서 500여명이 모여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악에 받쳐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한 금융상품이 반토막났기 때문이다. 

홍콩 ELS


ELS는 Equity-Linked Securities의 약자로 주가연계증권이다. 말 그대로 주가가 연계된 증권인데, 애플, 삼성전자 등 개별 기업의 주식이 아니라 코스피, 나스닥, 홍콩H지수 등 ‘주가지수’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내용을 알 수 있다. ELS는 일종의 도박이다. 증권이 만기되기 전에 주가가 일정 범위를 넘어설 것인지 아닐지를 놓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다. 가령 1년 뒤 코스피가 지금보다 4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투자자가 20% 수익을 받고 반대로 그 밑으로 추락하면 40% 손해보는 식이다. 
홍콩 ELS는 21년 가입 후 3년 뒤 만기가 됐을 때 홍콩 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를 넘으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을 수 있지만, 70% 밑으로 떨어질 경우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을 보게 되는 증권으로 문제가 없으면 높은 이자를 얻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원금에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초고위험 파생상품이다. 그런데 홍콩 H지수는 3년 전인 2021년 상반기에 최고 1만2228.63포인트를 찍었는데 24년 1월 5000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현재(24-02-26) 5723포인트를 기록중이다. 원금 손실의 기준이 되는 70% 선(8500포인트가량)을 한참 밑돌고 있다. 원금 손실율이 50%에 달한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5000만원을 손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홍콩 ELS 투자 손실을 본 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소연한다. ‘원금손실이 없는 예적금인줄 알았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괜찮다고 해서 가입했다’, ‘은행을 믿고 노후자금으로 가입했다’ 일부에선 투자는 손실을 감수하고 하는 것 아니냐며 손실을 본 이들의 잘못을 얘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개인의 문제로 한정될 사안인가? 실제 금융사들이 초고위험의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입을 시킨 부분이 논란이 되어 ‘불완전 판매’로 일부 배상을 논의 중에 있기도 하다. 

어쩌다?


21년 코로나 시기 천문학적 금액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식은 매일매일 상한가를 치고 주가지수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너도나도 주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안하면 벼락거지가 된다고 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국내 금융기관들이 파생금융상품을 내놓으며 높은 수익을 미끼로 투기를 유도했다. 높아지는 이자를 보며 많은 이들이 도박과 다름없는 파생금융상품에 손댔다. 
홍콩 ELS 상품의 총 판매액은 2023년 11월 기준 19조 3000억원에 달한다. 그리고 그 중 80%인 15조 4000억 원의 만기가 2024년이다. 현재 ELS 손실액은 1조원에 달하고, 올해말까지 5-6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 손실은 대부분 개별 투자자들이 떠안게 된다. 

이렇게 될 줄 몰랐나!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경제위기 역시 파생금융상품으로 촉발되었다. 당시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든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악마의 증권’이며 이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 파생금융상품은 사회적으로 사라지거나 최소한의 제재장치가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순간이었고, 또다시 투기는 계속되었다. 선물, 옵션, 스왑은 여전히 기초적인 파생금융상품으로 투기가 이뤄지고 있고, ELS(주가연계증권), DLS(파생결합증권) 등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돈이 몰리고 있다. 
특히 19년 홍콩 ELS 사태와 똑같은 일이 이미 있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서 판매한 DLF 상품이 최대 –98.1%, 평균 손실률은 –52.7%한 것이다. 당시에도 불완전 판매와 고위험성에 대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이 사태로 2019년 11월 은행의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가 금지되고 고위험 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기업들의 반대로 12월 내놓은 최종안에서는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조건으로 허용으로 바뀌었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문제는 정부도, 금융사도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은 이를 중지시키지 않는다.

 

왜?


파생금융상품은 사회에 어떤 새로운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주가가 오를까요? 내릴까요?’를 맞추는 돈놓고 돈먹는 도박에 불과하다. 누군가 100원을 벌어들인다면, 누군가 100원을 잃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런 비생산적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위에 수천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세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누가 이런 도박판을 운영하는가? 은행, 투자회사 등 금융자본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주식, 파생상품 등 다양한 게임을 만들어서 도박판을 열고,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수수료를 빨아먹는다. 최대 6조원 가까이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홍콩 ELS 상품을 통해 5대 은행이 2021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얻은 수수료 수익이 1866억원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막심한 가운데, 은행들은 정작 거액의 수수료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투기자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손실을 보는 대부분은 노동자, 자영업자, 학생, 은퇴한 이들 등 개인이다. 복잡한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고급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이들이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내기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노동으로 벌어 한푼두푼 모아둔 개별적인 돈이 도박판으로 들어간다. 작은 기업부터 거대 자본까지 기업들이 가진 자금도 투기판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큰 손들인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 자금도 투기에 참여하고 있다. 
생산적인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자본이 금융투기자금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부채, 즉 빚을 이용한 자금이 중심이 된다. 금융기관에 개인, 기업할 것 없이 너도나도 빚을 내서 주식, 부동산 투기에 몰두한다. 생산적인 일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투기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큰 시기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각국 정부는 돈을 찍어내고, 금융기관에 풀면서 이런 투기를 조장하고 확대한다. 코로나시기 양적완화로 시중에 풀린 자금은 노동대중들의 생존을 위해 쓰이지 않고 상당부분이 투기자금을 빨려들어갔다. 홍콩 ELS도 그 중 하나이다. 

거대한 도박판을 멈춰야


실체가 없는 거품은 언젠가 터지고 가라앉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매번 거품을 키우고 또한 거품을 터뜨려왔다. 2000년 초반 IT버블, 20008년 부동산 버블이 터졌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시기 만들어진 버블이 하나둘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건설사 PF문제에 이어 홍콩 ELS 파생금융상품 문제도 하나의 신호일 뿐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직접적으로는  노후 자금, 금융대출로 투기에 참여한 이들이 큰 손해를 볼 것이다. 나아가 버블붕괴로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이에 따라 임금삭감, 해고,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먼저 고통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소 자본가들이 몰락하기도 하지만, 거대 자본은 대마불사라며 정부지원을 받아서 생존해가고 오히려 무너지는 중소 자본을 흡수하며 덩치를 더 키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활황과 불황을 오가며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적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도박판은 뒤엎어야 한다. 월급만으로 생활을 지켜가기 어려워, 부동산, 주식, 파생금융상품 등 투기에 몰두하는 사회에 희망은 없다. 땀흘려 일하는 이들이 제대로 그 대가를 받고 운영되는 사회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정부적으로 위아래로 널뛰는 불안정한 경제를 안정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도박의 끝은 파멸이 있을 뿐이라는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