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되는 혐오, 후퇴하는 민주주의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학생인권 조례 폐지안」이 가결됐다. 이틀 전인 24일에는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고, 광주 역시 조례 폐지 청구가 접수되어 논의를 앞두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조례 둘다 폐지하는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또다시 후퇴한 학생인권
2010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제정된 이후 6개 지자체에서만 겨우 통과되었던 학생인권조례가 14년만에 다시 폐기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해 온 보수세력은 교권추락의 원인이 과도한 학생인권 보장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며 학생인권조례를 끈질기게 공격해왔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교권 보장 요구가 터져나오자 이것을 기회 삼아 학생인권조례 폐기를 밀어붙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교사들의 교권(교육할 권리와 노동권 문제)을 해결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힘 쪽에서 대안이라며 내놓은 학교구성원 조례안은 권리는 모호하고 책임만 강조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자마자 일부 학교에서는 다시 복장 및 두발 단속 등 규제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 교사, 학부모 할 것 없이 모두가 고통스러운 지금의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공격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는 서로 간에 고통과 상처만 남길 뿐이다.
확대되는 혐오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치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혐오의 대상은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만이 아니라, 개근거지, 주공거지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혐오도 존재하며, 여성, 노동자, 노동조합, 청소년, 노인 할 것없이 누구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옹호하는 분위기는 혐오를 더욱 확대시킨다.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 혹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도 이것을 노력하지 않은 개인 탓인 냥 몰아가며 혐오를 더욱 부추긴다.
지배계급은 특정 집단을 문제시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심은 후 낙인찍어 차별하고, 공격하는 혐오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불만과 분노가 지배계급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내부에서의 싸움을 만들어 단결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는 이유는 생산된 부의 대부분을 자본가들이 가져가기 때문인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때문에, 이주노동자 때문에 그런 것처럼 부추겨 노동자들을 이간질시킨다. 청년들의 실업율이 높은 이유를 중년세대들 탓으로 돌리고, 청년남성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들이 여성들 때문인 것처럼 몰아간다. 또한 차별과 억압,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서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혐오세력이라며 낙인찍고 탄압과 정치적 공세로 재갈을 물린다.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인가?
특히 보수세력은 혐오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를 효과적으로 확장해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여성과 장애인 혐오로 유명세를 얻고 정치 거물로 성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여성가족부 폐지, 민주노총 때리기 등 여성과 노조 혐오에 기반한 정책을 핵심기조로 하고 있다. 자신들은 특권을 마음껏 누리면서 ‘공정’이라는 말로 대중들의 피해의식을 건드려 혐오를 부추기는 윤석열정부의 정책은 불평등, 차별, 비인권적인 사회를 확대, 강화하고 있다.
노조 죽이기
이 중에서도 윤석열정부가 가장 열심히 작업 중인 것은 노조 혐오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조직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열을 올렸다. 2022년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에 대해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강도 높여 비난했다. 건설노조에 대해서는 건폭이라고 낙인찍은 후 대대적인 공격과 수사를 남발하여 250일 동안 4천8백 명이 넘는 노동자를 검찰에 송치했다. 또한 노조에 대한 회계 공시 요구, 타임오프 공세를 통해 노조가 부도덕하고 부패한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여 노조에 대한 혐오를 조장, 확대하고 있다.
노조에 대한 혐오는 조직된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 가입자 수가 감소했다. 노조 활동도 위축되었다. 한국노총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326개 사업장 중 60%가 노조 활동이 위축되었다고 답했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되니 노동자들의 임금, 단협,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사측과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노조에 대한 혐오는 미조직된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정규직, 단기 계약직, 저임금 노동자수 는 더 확대되었다. 임금 체불 역시 사상 최대치를 찍어 1분기 체불액만 6천억 원에 육박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재정되었지만 산재사망사고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2년간 산재사망자 수가 1,242명에 이른다.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에게는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없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가 문제? 윤석열이 문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노동 양극화 운운하며 미조직된 ‘노동약자’를 적극 지원하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약자’를 더 많이 만들고 있는 것이 현 정부이다. 노동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로막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유예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심지어 주52시간도 모자라 69시간까지 노동시간 확대를 밀어붙이고, 최저임금은 차등 적용하며, 실업급여도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엄청난 부의 격차는 무시한 채 노동자계급의 일부인 조직된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며 혐오세력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의 결과로 조직 노동자들이 쟁취한 조금 나은 수준의 노동조건을 미조직노동자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투쟁의 역사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다. 즉 경쟁과 착취, 불평등을 전제한다. 경쟁에서 밀려난 다수의 사람들은 소수의 지배계급에게 착취 당하고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차별을 강화하고 우월적 지위를 과시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이 질서를 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들보다 못한 처지에 있거나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더 나은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사회에서 소수자로, 약자로 밀려나 고통받던 이들이 인간다운 삶,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끈질기게 싸워왔다. 왕을 내쫓고, 노동자들이, 흑인과 여성들이 투쟁으로 보통선거권을 쟁취했던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었다. 대중적 힘의 무서움을 알게 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민주적 외피’를 활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자신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중적 힘이 약화되는 순간 놓치지 않고 이빨을 드러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권의 후퇴는 힘의 무게추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혐오가 아닌 단결과 연대로!
혐오는 배제를 통해 불평등과 차별을 강화한다. 공동체성은 무너지고, 본질은 감춰진다. 혐오는 폭력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혐오 이데올로기는 노조 안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노동자의 단결을 말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일자리를 뺏는다며 이주노동자 추방을 요구하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는다.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는 단결된 힘인데 자기 것을 지키려고 오히려 단결을 약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의 혐오와 이로 인한 갈등은 자본가들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다. 혐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을 남길 뿐이다.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만 되돌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 역시 어렵지만 혐오를 퍼뜨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민주주의는, 인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목숨 건 투쟁의 산물이다. 혐오가 아닌 단결로, 혐오가 아닌 연대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