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물량에 따른 유연생산체제를 원하는가!
우려가 현실로
작년 11월 18일 이재갑노동부장관은 ‘주52시간제 보완대책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국회 입법이 안 될 경우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확대되는 인가사유는 기존 ‘재난 상황’에서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를 포함한다. 주52시간제는 이렇게 자본가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둘 무너지게 됐다.
결국 올해 1월 31일부로 변경된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시행되면서 언제든 물량 증가에 따라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방역ㆍ검역이나 마스크ㆍ소독용품 생산업체들과 함께 현대차의 부품생산업체 일부도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됐다. 코로나19로 중국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와이어링 하네스’(부품연결 배선뭉치)의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국내생산으로 대체하면서 생산물량이 급증했다는 이유다. 이렇게 시작된 부품업체의 특별연장근로 허용은 이제 현대차 본공장을 노리고 있다.
짜 맞춘 듯한 그들의 팀웍
현대자동차지부는 3월16일자 지부소식지를 통해 “생산량 만회”, “품질력 향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2월 25일에 이상수지부장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용을 보장받고 성과분배를 요구하기 위해는 생산성과 품질을 노조가 앞장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산손실이 10만대에 달한다며, 생산량 만회는 ‘협력사 노동자 살리기’라는 사회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짜 맞추기라도 한 듯이 3월 18일 현대차 사측은 현대차지부에 인기차종을 생산하는 공장(2ㆍ 4ㆍ5 아산공장)을 대상으로 기존 최대 48시간근무에서 일요일 특근까지 포함해 최대 60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제안했다. 그리고 3월 20일 울산북구청장은 38개 자동차부품사의 탄원서를 들고 현대차지부를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8만대의 납품 손실분은 협력사 경영에 매우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완성차의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며 현대자동차가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사측에서 나오던 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사측은 슬그머니 노동시간연장을 들이밀었다. 구청장과 협력사 사장들도 적절한 시기에 원청 사측이 원하는 바를 노동조합에 전달하며 보기 좋은 그림을 완성했다.
그들의 본심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의 많은 자동차공장들이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은 정상 가동되고 있다. 이것은 현대차 사측에게 기회로 보였다. 다른 자동차공장이 멈춘 틈을 타 재고를 쌓아둔다면 코로나19 국면이 진정될 쯤에 회복될 자동차시장에서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3월 25일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제2회 산업 발전포럼’에서 “수요 폭증 시 주당 근로시간을 무제한으로 늘릴 필요까지 있다”며 “이런 행위가 불법이 되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만기회장의 발언은 현대자동차 사측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품질문제 전가
그런데 현대차 사측이 노동시간을 연장해 생산량을 늘리려는 것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바로 품질향상이란 명목으로 노동강도를 높이고 현장통제력을 높이고 싶어한다. 이번엔 노조도 품질향상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 품질개선비용이 3조나 되고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모든 책임을 현장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고전적 수법이다.
반복되는 설계결함으로 대규모 리콜사태가 발생하며 매년 수천억 원씩 털어 넣고 있는데 이를 노동자의 실수에 의한 비용인 것처럼 두리뭉실하게 ‘품질비용’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십수년 잔뼈가 굵은 숙련노동자가 아닌 상시적인 알바ㆍ초단기 촉탁직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자동차의 품질이 좋을 리도 없다.
판로가 막혀 보류하자?
3월 30일 현대차 노사는 간담회를 갖고 “지금 시점에서 특별연장근로는 무리”라며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보류하기로 했다. 하언태 사장은 “해외 딜러로부터 ‘더는 선적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자칫하면 울산공장이 다시 휴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밝혔다. 폭발적 수요증가에 대비한 노동시간연장을 이야기하더니, 불과 며칠 만에 이젠 극심한 수요부진으로 판로가 막혀 휴업까지도 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잠정 보류한 것이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현대차지부가 강조했다는 점이다. 즉, 물량에 따라 언제든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유연한 노동시간의 필요성을 노사가 ‘공감’했다. 현대차지부는 4월 2일자 지부신문 1면에 “코로나19 자동차시장 강타, 유연생산체제 불가피”라는 사설을 실으며 사측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2013년 현대자동차가 주간연속2교대(당시엔 8시간+9시간이었다)를 도입하면서 기존 10시간 주야 맞교대 생산물량을 보전하는 대가로 임금을 보전받는 합의를 했다. 즉, 노동시간은 줄이지만 노동강도를 높여 사측이 원하는 생산량을 보전해줬다. 그런데, 이제는 물량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노사가 추진하겠다고 한다. 만약 이를 방치한다면 현대자동차는 과거로 회귀하여 노동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