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봉착한 조선산업 - 소리없는 책임전가는 지속
코로나19 여파로 추락하는 세계경제
예상대로 코로나19의 영향은 상당했다. 1/4분기 주요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침체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다.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중국이 봉쇄조치를 풀며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미국도 주별로 봉쇄조치를 완화하고는 있으나 세계적 수준의 경제활동은 여전히도 부진한 상태다.
IMF는 경제전망치를 대폭 수정했다. 이제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대다. 2008년 금융위기 때 –2.5%였던 것을 감안하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가파른 추락이다. 영국과 일본은 2분기에 각각 –25%, -33%대까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급감한 해상물동량
공장과 도시가 멈추고 봉쇄조치가 취해지면서 전 세계 무역규모가 급감했다. 클락슨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무역규모는 전년 대비 11% 감소(IMF 전망치)할 것이고, 컨테이너 물동량은 12% 감소(한국해양수산개발원 KMI 전망치)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올 초 컨테이너 물동량이 2.1%(IMF) 늘어날 것이란 전망과 비교하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철광석과 곡물을 담당하는 건화물선도 전 세계의 산업 생산과 소비활동이 위축되며 물동량이 감소했다.
해운선사들은 기존 항로에 투입되는 선박을 줄이거나 항로운항을 철회하는 방법으로 물동량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운임이 소폭 상승함에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해운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다.
다만, 원유의 공급과잉으로 저장소가 부족해지자 유조선과 석유제품 운반선이 부유식 저장소로 사용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저장소가 부족해진 정유사들이 원유 가공 제품을 밀어내기식으로 생산하면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다.
신조선 발주량 급감
2020년엔 IMO 환경규제 강화와 노후선박 교체 주기가 맞물리며 조선산업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와 국제유가 폭락은 앞으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1분기 세계 신조선 발주량은 전년동기대비 71.3%(233만CGT)로 감소했다. 올해 예정된 신조발주 물량과 해양플랜트 발주도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독일의 컨테이너선 전문 해운사인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의 발주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미국의 엑슨모빌(ExxonMobil)이 아프리카 모잠비크 로부마(Rovuma) LNG프로젝트를 연기하며 16척의 LNG운반선 발주도 올해는 사라졌다. 영국 로즈뱅크(Rosebank) 프로젝트는 발주처인 에퀴노르(Equinor)가 설비 발주계획 자체를 취소했다. 봉가사우스웨스트(Bonga Southwest) 프로젝트는 발주처인 로열더치쉘(Royal Dutch Shell)이 발주를 계속 미루고 있다.
2년 후가 문제라는데
올해는 한국조선업이 LNG 운반선이라는 대형호재가 있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4월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QP)이 중국 후동중화조선과 LNG운반선 8척, 옵션물량 8척 분의 계약을 맺으며 충격을 줬다. 이제는 중국에 LNG선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카타르는 LNG생산량을 확대해 경쟁국들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계획을 변경하기 어렵다고 한다. 카타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 발주규모가 80여척까지 확대될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아크틱2(Arctic2) LNG 프로젝트로 추가 발주될 쇄빙 LNG운반선 10척도 남아 있다. 한국 빅3가 군침을 흘리며 기대하고 있는 대형 LNG운반선 발주는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위기상황이 닥칠지 알 수는 없다. 현재 한국 빅3의 수주잔량은 2년 미만이다. 하반기에라도 신조발주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2022년 생산계획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겐 지금 당장이 문제
한국 빅3에서 현재 건조중인 선박들은 1, 2년 전에 수주한 선박들이기 때문에 당장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는 다르다. 빅3 모두 현장에서는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 정규직의 경우 잔업, 특근이 줄어들고, 하청노동자들은 몇 명씩 돌아가며 무급순환유무에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도 각 사업부별 업체수를 줄이고 있다. 원청사는 업체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일감이나 기성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폐업을 유도한다. 업체가 폐업하면 하청노동자들은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임금까지 체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일당, 물량팀이 늘어나면서 언제든 해고와 고용이 자유로운 고용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신규채용 없이 매년 수백에서 천여명씩 정년퇴직자만 나가는 방식으로 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중공업은 여전히 수시 희망퇴직을 활용한다.
코로나19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해도 한국 조선업의 재편(구조조정)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등 조선업 신흥국의 성장은 시간문제고, LNG선과 같은 호재는 몇 년 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조선업에 직접 영향을 미칠 때쯤엔 노동자를 더 쥐어짜는 것 말고 자본가들이 선택할 다른 방법은 없다. 그냥 앉아서 당할 것인지, 싸워서 저들의 공격을 막을 것인지는 노동자들에게 달려있다.
윤용진